서사를 어떻게 바라볼것인가?
서사는 사유의 형식이다
인간은 세계를 단순히 ‘보고 듣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이야기로 구성함으로써, 그 사건의 인과를 추론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서사는 삶을 해석하는 프레임이자, 타인의 내면에 접근하는 인지적 구조이며, 미래를 설계하고 과거를 해석하는 시간적 사고의 틀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사의 방식은 곧 사유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 사유의 방식은 우리가 어떤 형태의 서사를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소설: 내면을 향해 침잠하는 언어의 서사
소설은 서사 중에서도 가장 내면 지향적이며 느린 형식이다. 문장을 읽는다는 것은 단어 너머의 맥락을 상상하고, 사건의 이면에 있는 감정과 동기를 구성하며, 타인의 의식에 잠입하듯 천천히 들어가는 행위다. 이 과정은 타자의 사유와 감정을 구조적으로 상상하는 훈련이며, 그 속도는 독자의 감정 리듬에 따라 조절된다.
그래서 소설은 단순한 문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인의 내면을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윤리적 장치이며, 자기 삶을 내면화하고 재구성하게 해주는 자기서사 형성의 장이다.
이를테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는다는 것은 혁명 시대의 사회적 억압과 인간의 고통, 구원과 용서의 복합적 감정을 체험하는 것이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배신과 복수라는 격렬한 드라마를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분노와 용서 가능성을 탐구하게 한다. 이런 서사는 독자에게 ‘삶의 복잡성’을 견디는 사유력을 요구한다.
넷플릭스: 감각의 밀도와 몰입의 구조
넷플릭스는 현대 디지털 서사의 지배적 형식이다. 빠른 전개, 시청각 자극, 극적인 반전과 클리프행어 ( 예상치 못한 반전이나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하여 긴장감을 유발하는 연출 기법)
이 모든 요소는 인간의 주의력과 몰입 욕구를 정밀하게 겨냥한다.
이런 영상 중심 서사는 감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깊은 사유보다는 감정의 반사 신경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리하여 시청자는 '이해하려는 자'가 아니라, '경험하는 자', 혹은 '반응하는 자'가 된다.
넷플릭스형 서사는 감각의 시대에 특화된 서사이자 소비 가능한 이야기다. 인간의 사고 구조를 점차 속도화하고, 단편화하며, 내면보다는 외부 자극에 민감한 구조로 재구성한다.
다만, 영상 서사 자체가 단순하거나 피상적인 것은 아니다.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나 <오징어 게임(Squid Game)> 같은 작품은 오히려 복잡한 인간 심리와 사회 구조를 드러내며, 관습적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 중요한 것은 그 서사가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느냐이다.
결국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그 형식을 수용하는 인간의 태도에 있다.
글인가? 영상인가? 더 중요한 것
서사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곧 인간이 사유하는 능력, 느끼는 깊이, 타자와 관계 맺는 구조를 드러낸다.
소설은 해석의 서사다. 넷플릭스는 즉시성의 서사다. 어느 쪽이 우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구조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가
우리는 내면의 복잡성과 시간성을 감내할 수 있는가
우리는 서사를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프레임으로 받아들이는가
서사를 수용하는 방식은 곧,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고자 하는가의 선언이다.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이느냐는, 어떤 존재가 되기로 스스로를 구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발전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수용의 구조
기술은 진보하고, 매체는 진화한다. 이야기 전달 방식도 끊임없이 바뀐다. 그러나 발전은 단지 기술의 업그레이드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진정한 발전은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해석하고, 감정을 이해하며, 타자를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그 점에서 서사의 미래는 감각적 혁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서사를 수용하는 인간의 사고 구조와 정서 구조가 어떻게 진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영상이든, 텍스트든, AI가 생성한 이야기든, 그것이 철학적 사유의 매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수용자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살고 있고, 마주하고 싶은가?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 질문 앞에 선다.
나는 어떤 서사 구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가?
어떤 이야기 형식이 내 사고를 자극하고, 감정을 정제하며, 삶을 구성하게 하는가?
소설이든, 넷플릭스든, 인공지능 픽션이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 삶을 다시 구성하려는 태도다.
감각의 시대에 사유의 이야기를 붙들 수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