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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여자들 Feb 21. 2021

평일 오후 세 시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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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아기가 깼다. 물을 많이 먹어서인지 밤중에도 꼭 두세 번씩 일어난다. 눈을 끔뻑거리며 비몽사몽간에 “무-무-” 하고 물을 찾는다. 빨대컵에 따뜻한 물을 채워 손에 쥐여주고 축축한 기저귀는 갈아주었다. 물 한 통을 다 먹고도 도로 잠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 뒤척거리며 멍멍이, 야옹이를 찾는다. 멍멍이랑 야옹이는 코 하러 갔대. 효과가 없다. 별 수 없이 안아서 재웠다. 슬그머니 방문을 닫고 나와 식탁 앞에 앉았다.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이다. 오전 5시. 오늘은 정신이 맑다. 매일 잠을 끊어 자니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 이사한지 한 달이 되었으나 이제껏 내 방 짐정리도, 싱크대 상하부장과 베란다 정리도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 정리도 하지 못했다. 정리를 끝내면 마음이 정돈될까.


봄부터 미뤄온 편지를 쓸지, 집안에 필요한 물건들을 인터넷에 뒤져볼지, 새로운 글을 쓸지. 마음을 정돈하기엔 편지를 써서 보내버리는 게 좋겠고, 집안 정리 차원에선 장바구니에 일주일째 담아놓은 물건들을 구매 결정하는 게 낫겠다. 부엌 휴지통은 어떤 걸로 나. 쓰고 싶은 걸 찾지 못해 종량제봉투만 사용한지 2년째다. 욕실 귀퉁이 선반은 내다 놓아야겠다. 맨발로 들어갈 수 있게 나무타일을 깔고 싶었는데. 아기 있는 집에 건식욕실은 꿈도 꾸지 말아야겠지. 노트북은 식탁 위에 꿔다놓은 듯 화면이 꺼진지 오래다. 드물고 귀한 새벽시간, 결국 머릿속에서 해야 할 일들을 늘어놓고 어제와 똑같은 고민에 몰두하고 있다.


그저 가만히. 가만히 있고 . 차 한 잔 끓여놓고 지난 여름 사둔 심보선 산문집이나 읽으며 기대있고 싶다. 햇볕 아래 앉아 마음 놓고 책 읽던 날이 기억나지 않는다.


“거기 몇 시간이고 앉아 있곤 했다. 때로는 책을 읽었고 때로는 책을 덮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과거를 생각하기도 했고 미래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 현재는 엉덩이 아래 말없이 눌려 있는 하나의 고요한 장소였다. 누군가가 애타게 그리웠는데 그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심보선,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중에서)


그 벤치.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그가 뉴욕 유학 시절을 회상하면서 유일한 그리움이라며 떠올리는 벤치 얘기다. 저자에겐 이미 과거가 된 시간이지만 부러웠다. 쓸쓸한 타지의 어느 공원에 반나절씩이나, 그저 앉아만 있는 오후가. 이 책은 서점에서 ‘심보선 산문집’이란 문구를 보자마자 충동적으로 사버렸다. 스물한 살 때 처음 읽은 의 시집은 날선 세계에 관해 환상적인 언어로 중얼거리는 편지 같았는데ㅡ아니 환상처럼 엉망인 세상을 날선 언어로 중계하는 것 같았나. 둘 다인가ㅡ 아무튼  쪽잠을 자며 그를 읽었다. 사회학자의 눈이 써낸 긴 글도 분명 좋았다.


어느 날 보니 책장에 새로 꽂히는 책들이 죄다 산문집 또는 비문학뿐임을 깨달았다. 언제부턴가 소설, 시집은 멀리하고 수필과 산문집만 읽게  것이다. 소설의 경우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상을 쫓아가기엔 나의 일상이 피로해 읽는 에너지가 부족하다. 독서가 쉼이 되지 않는다. 그저 남의 생각, 일상 얘기를 들으며 공감하거나, 몰랐던 사실을 배우는 소소함이 내겐 휴식처럼 기능한다. 그런 독서는 현실과 분리되어도 크게 죄책감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산문집을 읽는 건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라고 생각되었다. 은밀하고 우연한 만남. 책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그들과의 대화가 좋아서. 요즘은 담백한 글, 정갈한 문체를 원하는 걸 보니 조용한 사람과 마주앉아 별 말없이 쉬고 싶은 것도 같다.


그런데 문득 이런 마음이 바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당장의 할 일은 놓아버리고 싶다. 일상의 고민이 쓸모없는 것도 같고 그 속에 서 있는 내가 지긋지긋하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짬이 나면 책을 들춘다. 책장을 펼친 순간만큼은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난 시간이며 작가를 따라 어디든 멀리 갈 수 있다. 그런 자유로움이 일상이 되길 바란다. 책을 읽으며 매일의 고단함을 지탱하'일탈'을 꿈꾼다면 이게 바람 같은 마음 아닐까.


지금은 종영했는데 ‘평일 오후 세 시의 연인’이라는, 불륜 소재의 드라마가 있었다. 주인공 남자와 여자는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고 일하는 시간에 만나 숲을 걷는다. 일상이 벅찬 그들에게 두 시간의 만남은 일탈이자 휴식이 된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들의 숲속 산책은 아름답게 그려졌다. 햇살 좋은 오후에, 바로 저런 숲과 공원에서 책 읽고 싶단 생각 들게끔. 평일 오후 세 시에 나는 보통 집안일을 한다. 혹은 아이 낮잠을 재우느라 애쓴다. 졸려 하지 않으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 놀게 한다. 집 앞 화단과 천변 산책길, 살 것 없는 마트에서. 아이가 논다고 나도 놀 순 없다. 그 아이의 놀이는 내게 수다와 살핌의 시간이다. 아직은 말귀를 반만 알아듣는 아이에게 “뭐가 좋아?” “저기로 갈까?” 물어보며 아이가 뭘 좋아하고 뭘 바라보는지 관찰한다.


내 또래 성인이라면 대개 밥벌이를 위해 일하는 시간. 평일 오후에 일도, 바람도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직장 근무나 낯선 사람과의 데이트를 꿈꾸진 않는다. 직업적 불안은 끝이 없기에 괴롭고, 주부로서의 일탈은 밀려오는 죄책감을 견딜 자신이 없다. 육아하는 돌쟁이 엄마에게 가장 달콤한 일탈은 혼자 있는 시간이다. 그마저도 오십분에서 한 시간이 넘어가면 아이 생각에 안절부절 다.


언젠가 지금의 쉼 없는 날을 돌이키게 될 줄 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고, 학교에 가고, 성인이 되어 일을 하고, 나도 나의 일을 하고 있을 때. 겨우 단어 몇 개와 서툰 몸짓,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무언갈 이야기하는 저 두 살배기가 보고 싶어질 것이다. 나도 우스꽝스럽고 서툴게 대답하느라 진이 다 빠진, 그런 오후에 있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므로. 불안을 안고서라도 딱 한 시간의 쉼을 바란다. 책을 봤다가, 가만히 앞을 내다봤다가, 아무 생각이나 했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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