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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우주 Jul 19. 2020

#0 - 30대 중반에 시작한 게임 업계 생존기

타 업계 영업 사원의 시선에서 본 게임 업계의 감상. 그리고 생존기

어느 날 문득, 물 흐르듯 흘러가는 내 인생이 너무 서글프게 느껴졌다.


 나는 유명 외국계 기업에서 자동차 업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남들이 들으면 놀랄 정도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어느 정도냐면, B와 A로 시작하는 해외 유명 자동차 메이커의 엠블럼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를뿐더러(업무와는 크게 관련이 없기에), 흔히 남자들이 가지는 고급 자동차에 대한 로망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30대 중반이 다 돼가도록 '서울은 역시 지하철이 최고지!'라며 자동차를 구매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내 맘대로 몰고 다닐 수 있는 유일한 자동차는 영업용 법인 차량과 8년 된 가족 소유의 경차뿐이었다. 그러니 최근에 어떤 차종이 잘 팔리는지는 관심 밖인 게 당연한데, 일을 위해서 협력사가 가진 판매 정보를 얻기 위해 대단한 관심이라도 가진 것처럼 "와, 진짜요? 대박이네요!"라고 맞장구를 내뱉던 스스로의 말이 내 속에서 울려서, 어느 날 갑자기 새삼스럽게도 무척이나 서글프게 느껴졌던 것이다.


< 새삼 갑자기 서글펐던(?) 내 인생 >


 그렇다고 회사 생활에 큰 불만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기술영업이라는 무로 일을 하면서, 오히려 다른 회사의 영업 사원이면 꿈꾸지 못할 정시 출근과 정시 칼퇴의 생활을 하고 있었고 재직 중인 회사 자체가 크게 맘에 들지 않거나 하는 일이 가진 능력에 비해 버겁다는 느낌도 없었다.


회사에서의 내 입지도 나쁘지 않았다. 동등한 입장의 협력사와 회의를 할 때면 나름의 논리로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었으며, 작지만 외국계 회사의 과장이나 그 이상의 직급을 단 상사와 업무적 협의를 통해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다. 덕분에 주임이라는 직급을 달고 나쁘지 않은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며 다닐 수 있었다. 연봉은 대기업 수준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큰 욕심 없는 30대 중반의 남자가 먹고 살기엔 충분했다.


 갑자기 웬 자화자찬이냐고? 자화자찬은 아니고 내가 기술영업 사원으로 누렸던 것들을 적은 것이니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앞으로 풀어낼 게임 업계에서의 삶이 더 극명한 반전으로 느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30대 중반의 나이에 갑자기 게임 업계로 이직한 거야?"
"배가 불렀네. 요즘 누가 관심사에 맞춰 일을 한다고!"
"철이 없네."


 아직까지 주변에서 직접적으로 저 말들을 들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 내게 저런 말을 한다면 나로선 딱히 반박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그래도 30대 중반에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났을 뿐이에요'라고 말해 납득이 될 정도로 우리의 삶이 호락호락 하진 않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관심 분야만을 쫓아 게임 업계로 가려고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내가 재직 중인 업계와 외국계 본사의 불투명한 비전이나 영업이라고 하는 직무에 대한 나름의 회의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게임 업계라고 해봐야 뭐 어마어마한 비전이 있겠냐만은, 마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처럼 적어도 내가 속해 있던 업계보단 더 나아 보였고, 무엇보다 내가 관심을 가진 분야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기존 경력을 다 버리고 게임 업계로 가기를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러 번의 도전을 통해 나름 규모가 있는 중견 게임 개발사(직원수 100명 정도)에 입사할 수 있었다. 몇 번의 도전과 좌절을 경험하면서 살짝 마음을 놓았던 시기에 합격했던 터라,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는 기쁘다기보다 '와, 정말 이게 되는구나'라며 놀라움이 더 컸다. 한편으로는 뒤늦은 나이에 새로운 업계에서 내가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복잡한 심정을 안고 쓸데없이 일찍 집에서 나와, 회사 근처 스타벅스에서 초조하게 출근 시간을 기다렸던 입사 첫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입사 후 현재는 사업부 소속으로 해외 개발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업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사내 개발 부서나 기획 부서, 마케팅 등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직무의 업무 내용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내가 여기에 글을 적는 이유는 새로운 업계에 도전하는 과정에서의 반성과 복기의 목적도 있지만, 타 업종에서 일을 해왔던 사람의 시선에서 보는 게임 회사의 감상을 전하고자 하는 것도 있다. 교육적인 내용이나 게임 회사 입사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거의 없을 예정이지만(쓰고 싶어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타 업계에서 일을 하다 뒤늦은 시기에 게임 업계로 이직을 꿈꾸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내가 경험한 게임 회사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물론, 내가 겪은 것이 모든 게임 업계의 회사 생활을 대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or 내가 부지런하다면) 앞으로 적을 내용이 꽤 많을 거 같다. 왜냐하면 다른 업계에 속해 있던 영업 사원의 시선에서 본 게임회사는, 나름 독특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 내가 볼 땐 자유로운 복장도 장점이다 (출처 : 게임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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