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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만화가 Oct 26. 2024

짧은 이야기 2. 탄산수소나트륨과 나

탄산수소나트륨. NaHCO3라고 쓴다. 


정식명칭은 탄산수소나트륨이지만, 화학 실험실에서는 소듐 바이카보네이트라는 멋스러운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명칭은 역시 ‘베이킹 소다’이다. 


탄산수소나트륨을 이루는 원자들을 살펴보면, ‘이 녀석만큼 혈통이 좋은 놈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탄산수소나트륨 분자는 하나의 나트륨, 하나의 수소, 하나의 탄소, 그리고 세 개의 산소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탄소 원자를 중심에 두고 세 개의 산소 원자가 이등변 삼각형 형태로 탄소를 둘러싸고 있다. 그중 하나의 산소에 수소가 붙어있고, 다른 산소는 음전하를 띄면서 나트륨 양이온을 잡고 있다. 남은 또 하나의 산소는 탄소에 껌딱지처럼 단단하게 달라붙어 있다. 


수소와 나트륨은 불 같은 반응성을 갖는다.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횃불을 치켜드는 활동가다. 탄소는 견고하고 단단하면서도 조화롭다. 산소는 안정과 자유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팔방미인이자 주기율표계에 사랑을 불어넣는 로맨티시스트이다. 


수소와 나트륨, 탄소와 산소가 모였으니 범상치 않은 존재가 탄생할 법도 한데, 탄산수소나트륨은 실상 어중간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분자다. 베이킹 소다 역시 정말이지 어중간하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첨가제다.


베이킹 소다가 유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베이킹 소다는 원래 제빵 과정에서 필요한 물질이지만, 종종 국자 위에서 설탕을 녹일 때도 사용된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나는 빵을 굽지 않고, 달고나를 먹지도 않는다.

 

그래서 주방 찬장 속에서 다른 조미료들 사이에 끼여 있는 베이킹 소다 봉지를 보면, 모두가 즐거워하는 포크 댄스 시간에 혼자 스텝을 못 맞춰서 난감한 웃음을 짓고 있는 학생이 떠오른다. 


설탕은 달다. 소금은 짜다. 파마산 치즈는 밀가루 위에 늘러 붙기 위해 존재하고, 허브잎은 촛불이 켜진 식탁 위에서 접시 위로 우아하게 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베이킹 소다는? 집에서 베이킹 소다로 빵을 구워 먹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찬장에 들어있는 베이킹 소다를 버릴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평생 내가 쓸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탄산수소나트륨을 보면 이따금 슬퍼진다. 마치 위대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평범하디 평범한 아이를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산수소나트륨이 빛을 발하는 때가 있다.


화학반응을 진행시키고 나면, 필수불가결하게 생기는 여러 부산물들을 물로 씻어 없애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산성 용액이 필요하면 염산 수용액을 쓰고, 염기성 수용액이 필요하면 탄산나트륨이나 암모니아수 등을 쓴다.


그런데 때때로, 어중간한 녀석이 필요할 때가 있다. 산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강한 염기성도 아닌. 그럴 때 사람들은 종종 탄산수소나트륨에 손을 뻗친다. 녀석을 꾸역꾸역 물에 말아 넣고 수저로 휘저어주면, 물이 따뜻하게 달아오르면서 어중간한 pH 용액의 대명사 탄산수소나트륨 수용액이 만들어지게 된다. 


때때로, 탄산수소나트륨 수용액으로 씻는 과정을 거친 유리 용기들은 눈부시게 깨끗해진다! 


주방용 베이킹 소다도 비슷한 능력이 있다. 그릇이나 욕실의 묵은 때를 베이킹 소다 용액에 불려 놓으면, 청소가 한결 편해진다. 세척제를 쓸 때도, 베이킹 소다 용액을 함께 쓰면 세척력이 배가 된다.


어중간하게 여기저기에서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탄산수소나트륨은 더러운 것들과 엉겨 붙어 하수구 속으로 씻겨 내려갈 때에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다.


화려하지 않다. 


그 자체로는 별 쓸모도 없다. 


쓰임새는 어중간하고, 실상 주인공이 될 능력도 변변치 않다. 


하지만 비록 사소할지라도 꼭 필요한 자리에서, 위대하진 않지만 착실하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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