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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나무 Sep 25. 2021

탈근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

네속에길들여진 획일성과결별하라!!

한국사회 친일 문학이 만든 폐해.


문학이란 그 시대의 정신을 담은 그릇과도 같다.

우리는 이미 미디어 세대로 활자화된 문학을 넘어 많은 미디어 세대로 변화되었지만 학생들의 교과서에는 여전히 과거 유물이 지배하고 있다.


이제는 교과서 속 친일 문인들에 대하여 평가를 해야 할 시기이고 현대문학도 지금 우리 시대의 문학을 가치 있게 담아야 한다. 사실 교과서 속 알려진 서정주, 이광수, 최남선 등의 작품이 아니어도 우리 시대의 글과 표현으로 언어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작가들은 넘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 속 문학인들은 일제와 전체주의 성향의 군사 정권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인들로서 현재 우리 미래세대가 본보기를 삼아야 하는 필연성과는 거리먼 사람들이다. 오히려 일제 강점기와 군사정권에 아부나 떨던 나약한 지식인들의 성공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언론과 자본 권력 눈치 보는 비겁한 지식인을 양성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이후 반세기 넘은 세월동안에도 청산 못한 과거는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전히 기성세대 지식인중에는 일본제국주의를 숭배하며 스스로 보수라고 칭하는 모순이 버젓이 벌어지는 곳 또한 대한민국이다. 심지어 조중동류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은 대놓고 친일 색체를 드러내기도 하고 한국에서 보수 타이틀을 붙인 정치집단 역시 그렇다.


비록 친일기반의 자본은 청산하기 어렵더라도 최소한 정신적 청산만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우리시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시민들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 중심의 사고관을 뛰어넘고 세계와 소통하고 변화를 이끌어왔던 세대로서 많은 경제적 성공과 시대 정신적 변화를 이끌어 왔지만 우리 시대정신에 대한 구체적 기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를 기록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시대 사람들의 글과 문학은 식민지 과거를 대체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지켜야 하는 시대정신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 세대의 책임은 식민지 과거를 청산하고 새시대를 열려고 하던 정신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엄혹하던 시절에도 등불처럼 시대정신을 이끌던 정신적 유산들은 우리가 지켜내야만 하는 현재진행형 역사이다.


사상계라는 잡지는 여전히 한국사회 주류 교육계에서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시대정신을 담았던 그 시대 지식인들의 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장준하 선생이 만든 사상계(思想界)는 1953년 4월 창간하여 남북통일 문제, 노동자 문제 등 당시 공산주의자로 몰릴 수 있는 논쟁부터 시, 소설 등의 문학작품까지 폭넓은 분야의 글을 실었다.


1954년 4월 창간  ~1970년 5월 폐간


이처럼 한국사회를 진실된 언어로 표현하던 사상계와 같은 문학 운동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민주화를 위해 수많은 젊은이가 싸우다 죽어나갔지만, 스스로를 불태운 노동자 전태일에 대해서도 기억해야 한다.


식자층도 아닌 노동자 전태일이 지킬 수 없던 노동법을 끌어안고 불길에 뛰어든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현실과 괴리된 허상뿐인 기득권 중심 법치주의에 대한 비판목소리였고, 부품화된 노동자들을 위한 싸움을 통해 그 당시 서구사회 68 혁명 정신과 같은 인간은 부품이아니고 평등해야 한다는 본질을 전태일은 스스로 깨우치고 독자적으로 이끌어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태일은 본질적으로 공정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최근 청년세대가 공정에 대하여 잘 못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기성세대 책임이 크다.

기성세대는 자식인 청년들에게 몇 등을 했는지 물어보며 학교에서 상대적 평가를 중시해 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게임과 학교의 상대평가를 통한 실력이 전부인 것처럼 느끼며 살아 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게임규칙내에서 공정만 생각한다.


문제는 그러한 규칙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하는 우물안 개구리 신세인데 아무도 사회구조 즉 누군가가 만든 규칙자체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자각이 없다.


그러나,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전태일은 오히려 근본적인 사회 구조에 대해 문제 제기한 것이다. 그당시 서울대 학생들 조치 이러한 문제제기를 못할 때 그는 도움을 줄 대학생 친구를 바랄정도로 그의 사회변화의 욕구는 컷다.

즉 우리는 인간을 정해진 틀에 가두는 평가행위 자체모순 속에서 본질을 놓쳐온 것이다.



포스트모던  지향점


포스트모던의 지향점은 먼저 용어가 나온 배경과 시대정신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서구사회에서 포스트모던 정신이 시작된 1960년대는 급속한 근대화로 인간을 도구화하고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로 팽창하던 국가 간 대규모 세계전쟁이 일어난 직후이다.

세계 대전 이후 세상은 전쟁 특수로 빠른 산업발전과 생활수준도 높아졌지만, 인간에 대한 도구화는 정점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대 전후세대를 중심으로 1968년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68 혁명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 세대를 모더니즘 시대라고 하고, 그 이후를 포스트모던 세대라고 구분한다.


포스트모던은 근대화된 서구사회 인간성 말살의 폐해를 뛰어넘기 위한 진보적 관점이라고 한다면, 한국인은 이미 동학사상 속 인간 존중을 담았었고 포스트모던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추구해온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68 혁명 이후 서구사회처럼 이러한 세계사적 가치 변화에 대한 배우거나 논쟁을 치열하게 한 적이 없다. 


여전히 한국의 기득권층은 교육과 미디어를 중심으로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힘과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할 사법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대중들이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권력이 아닌 영구적 권력으로 큰 자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는 여전히 권력의 주체만 바뀐 채로 남아있는 전체주의 시대의 선전선동 미디어와 검찰, 사법 권력 힘을 보며 체감하고 있다.


대중들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포스트모던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기득권이 대중들을 다스리는 방법을 이해하고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한다.


기득권이 대중을 다루는 가장 알려진 방식은 갈라치기로 분열하여 다스리는 것으로 그러한 예는 너무 많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선전 선동에 넘어가기 쉽다. 


과거 메카시즘(빨갱이/종북 타령)이 난무하던 시대 이념을 통해 갈라 치기를 했고, 영남 호남 갈등으로 갈라 치기 했고,  최근에는 남자와 여자로 갈라 치기를 한다.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획일성을 강요한다. 교육을 통해 줄 세우고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된 가치를 미디어에서 선전 선동하는 것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을 전체주의라고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획일성이 남아있고 포스트모던정신은 우리 속의 길들여진 획일성과 결별하여 새로운 시대 맞이를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양성을 통해 좀 더 넓은 가능성을 찾아야 하고 무엇보다 누군가 만든 틀거리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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