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문화의 원류 이스탄불 탁심광장에서
문명은 정체되지 않고 순환한다. 어떤 문명은 다른 문명에 영향을 주고 그렇게 영향받은 문명은 또 다른 문명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순환하면서 각자의 문명의 특성이 섞이고 연결되면서 문명은 한 단계씩 발전하고 진보한다. 우리는 그런 문명의 순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연결 고리 같은 역할을 한다. 필자나 혹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그런 문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사람들이고 그런 문명 변화에 기여한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터키에 온 이유는 이곳에 바리스타 로봇을 수출하러 온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점점 많아지고 흔해지고 있지만 이곳 터키에서 최초가 아닌가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터키는 최초의 카페 문화가 시작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은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 걸친 국가로서 커피의 유통과 소비를 통해 문명을 키워왔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이곳 오스만의 후예의 국가에 최초의 바리스타 로봇을 판매하고 온 사람 입장으로 커피라는 매계체는 나에게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사실 커피와 커피 문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다녀보고 싶은 곳도 많았지만 일을 하러 온 입장에서 하루하루 빠듯하다 보니 이곳의 전통방식으로 커피를 마셔보는 기회조차 갖기 어려웠다.
마침 이곳 국경일이다 보니 발주처가 쉬는 날이어서 호텔 앞 탁심광장 길거리 카페에서 카페 문화를 접하면서 못다 한 일과 함께 글을 써보기로 했다. 이곳 이스탄불 탁심광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광화문 광장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사람들은 광장에 모인다. 그리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여러 행사를 만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노래를 들려준다. 그런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광장이 가진 기능이란 마치 포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이곳 탁심광장에서는 연일 행사가 있는 시끌벅적한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침 터키의 국경일로서 청년과 스포츠의 날(2022년 5월 19) 국가 행사가 있나 보다.
이곳 광장의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더니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외국인이지만 나 역시 얼떨결에 일어서서 그들의 행사에 경의를 표했다. 과거 한국사회 전체주의 정권 시절 보아왔던 모습이었다.
다른 이들 눈치 보며 서있는 동안 나는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의 사회변화 흐름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겪은 많은 변화들을 목격하면서 사람들은 소통을 통해 변화되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주로 내가 겪은 소통의 변화는 정보통신의 발전이었다.
소통 없고 무뚝뚝한 한국사람들이 PC 통신을 통해 수평적으로 소통하게 되었고 그 이후 급격한 사회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아왔다.
사실 소통의 측면에서 정보통신과 커피는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우리 인류는 커피를 통한 소통으로 문화가 발전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정보통신의 발전은 오늘날 사람들의 소통을 확대하여 또 다른 큰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자각이다.
여기 탁심광장도 그런 소통을 위한 광장이고 나 또한 이곳 광장에서 다른 문명과 소통을 경험하고 있는지 모른다. 탁심광장에는 또 한 큰 모스크가 있고 내부에는 커피숖이 있다. 일요일 아침시간 사람들이 많지 않은 모스크 내에 꽤 인상적인 커피숖을 찾았다. 이슬람 문화 속 모스크와 서적들이 있는 마치 도서관 같은 커피숖은 어쩌면 내가 찾던 곳이다. 비록 17리라(1,400원) 터키 커피지만 정말 큰 행복감을 주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터키 커피(커피가루를 끓이는 형태 커피)와 함께 차이(홍차)를 많이 먹는다. 사실 주로 차이를 더욱 많이 먹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커피의 시작은 에티오피아라고 한다. 최초 발견은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되었는데 목동이 염소가 커피 열매를 먹고 날뛰는 것을 보고 이슬람 사제에게 알려줬고, 이슬람 사제는 이것을 태워보면서 맛을 보게 되었고, 커피를 통한 각성효과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커피는 밤으로 상징되는 이슬람 문화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카타르 및 이곳 이스탄불의 밤 시장을 지나가다 보면 무척 활기 넘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코로나로 인한 봉쇄와 통제는 모두 지난 이야기처럼 활기 넘치는 밤 풍경을 만나게 된다.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이 위치한 중앙아시아 및 사우디 등 사막지역은 낮 기온이 뜨겁고 덥기에 오히려 밤이 활동하기에 편하다. 그런 문화에서 밤에 서로 교류하고 커피를 마시며 물담배를 태우는 관경은 어느 곳이나 익숙하다. 이곳 터키의 경우 술이 허용되지만 그렇지 않은 이슬람 국가들은 커피와 물담배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 일상이다. 커피의 각성 기능으로 인해 사람들은 밤에 잠을 이겨낼 수 있었고 밤이 더욱 화려한 이슬람 문화를 만들어 냈다.
이슬람의 시장인 숙에는 밤에 더욱 활기차다. 시장을 들어서면서 맡게 되는 향신료와 함께 물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볼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이슬람의 문화는 과거 밤늦게 토론하며 과학기술이 발전되는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본격적인 카페 문화는 이슬람의 중심국가인 오스만 제국에서 시작되었고 본격적인 커피 하우스(Kahve Khane)는 1555년 이스탄불에 열렸다.
터키에서 본 오스만 커피 먹는 방식은 좀 다르다. 커피를 곱게 간 커피를 작은 주전자에 넣고 끓이는 방식이다. 이를 위한 주전자로 이블릭(Ibrik) 또는 체즈베(Cezve)가 있다. 이를 통해 끓여진 커피를 마시고 나면 찌꺼기가 남는데 컵을 뒤집고 나며 나온 모양을 보고 점을 치기도 한다고 한다.
특히, 유럽 사회에 확산된 카페 문화는 형태적으로 오스만 커피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 에스프레소와 같은 커피일 수 있다. 추출방식은 달라졌지만 작은 크기의 에스프레소 잔은 오스만 커피를 답습한 것 같다.
급격한 기술 발전 및 문화의 급변기를 살고 있는 현대의 형성 과정을 보면 인간들의 문명이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는 생체적인 변화도 문화적 변화에 영향을 미쳤음을 일수 있다.
민주적인 자발성은 문화적인 변화와 혁신은 인류사회 문화 전분야에 미치는 구조적 변화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작을 시대적으로 본다면 인류의 정신적 변화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이를 위한 향정신성 음료가 알코올과 커피일 수 있다. 알코올은 감정을 고조시킨다면 커피는 이성을 깨운다. 특히 근대 지식산업시대 커피는 인류의 지적 능력을 최대로 이끌어 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을 시기적으로 본다면 9세기~11세기 이슬람 문화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슬람 문화는 이슬람을 기초로 그리스, 로마의 고전, 페르시아, 인도의 문화를 받아들인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리스 문헌 번역이 되면서 철학, 수학, 과학이 발전한 이슬람 문명권은 오늘날의 유클리드 기하학, 대수학, 삼각법, 사인 코사인, 탄젠트 개념을 확립했고 천문, 물리, 화학, 의학, 건축 등 발전을 이루어 냈다.
커피는 사람들을 모이고 소통을 하게 한다. 그리고 아주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게 한다.
그런 반면 술은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만든다. 감정적인 것은 사람들의 관계를 좋게도 만들지만 감정의 기복에 따라 싸우게 만들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커피와 술은 모두 인간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허가된 향 정신성 음료라고 할 수 있다. 커피가 확산되기 전 유럽사회의 경우 술의 문화였기에 사람들은 감정적이었다면 커피 문화의 도입과 함께 사람들의 성향이 바뀌게 된다. 커피 문화가 시작되었던 이스탄불에서 카페를 중심으로 활발한 소통이 있어왔고 다양한 커피 문화가 만들어졌다.
십자군 전쟁은 중세 유럽 사회가 커피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무역로 봉쇄로 전쟁은 유럽 사회 큰 충격을 주게 되었다. 어쩌면 오늘날 서구의 기독교 중심 사회가 이슬람에 대한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 계기일 수도 있다.
무역로를 찾던 유럽은 바다를 통한 무역로를 만들기 시작했고, 대항해 시대를 열 게 되었다. 결핍은 또 다른 길을 만든다.
그런 반면 이슬람의 커피 문화는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좀 더 다른 사회를 맞이한다.
프랑스 카페 문화는 사람들이 토론을 통해 사회 불만을 이야기하게 되면서 유럽이 왕정을 무너트리고 공화제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혁명이란 변화하려는 갈증이 폭발하는 과정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 역동성이 커지고 있다. 어쩌면 과거와 같은 변화 임계점에 서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은 커피와 카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큰 맥락에서는 정보의 이야기이고 권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카페 문화 발전이 문명에 영향을 미친 이유는 정보의 유통이 얼마나 많은 가에 따라 인류문명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되었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특정 엘리트 계층에 의해 정보가 독점되거나 인위적으로 차단되는 경우 문명이 멈추거나 야만 사회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서구사회에서 종교권력이 막강했던 서구사회는 암흑시대라고 하였고 종교를 중심으로 하는 권력을 유지하고자 성경에 대한 해석하는 것조차 권력화 했다. 따라서 성경을 널리 알리는 것은 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독일 루터의 종교개혁과 이보다 앞서 체코 얀후스의 종교개혁은 모두 대중을 위해 정보 권력을 해체한 것이 중요한 핵심이다. 체코의 얀후스는 라틴어 성경을 체코어로 해석하여 알려주는 등 교회 권위에 도전한 대가로 화형 되어 삶을 마감해야 했다.
우리의 경우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의 경우도 왕스스로 정보 권력을 해체를 설계한 위대한 사건이다. 그 당시 한자 정보 독점 권력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고 오늘날에야 세종의 뜻을 이어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남과 북의 발전 양상은 다르지만 모두 세종 이도가 만든 한글을 기반으로 발전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커피 문화는 인류 진화의 매개체가 되었다면 오늘날의 변화 매개체는 바로 정보통신이다.
현재도 과거 같은 정보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우리가 교육, 언론, 사법 갈등을 따지고 보면 기득권 엘리트 집단의 기득권 지키기와 관련이 많고 본질적으로 정보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과거 카페와 같은 역할을 오늘날은 포털이 그 역할을 대체하면서 이를 자본이 지배하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미래에도 정보의 소통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기득권 구조를 지키려는 엘리트 집단의 반발과 갈등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인류는 세상을 조금씩 진화하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