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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나무 Oct 26. 2019

2주간의 인도 기행문

처음 세계 속의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2001년 겨울을 기억하며..

글을 정리하게 된 과정

 

2001 잊혔던 한글 파일을 정리해놓은 것을  2019년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그 당시 회사에서 인도로 IT 교육을 보내주어 처음으로 해외에 다녀왔던 설렘에 작성했던 기행문이다.

20년 전인 2001년 인도는 현재와는 차이가 있다.

2001년 당시는 현재와 같은 실리콘밸리 인도 CEO 돌풍이 있기 이전이다.  그러나 현재 인도가 IT 소프트웨어 개발자 강국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이유중 하나로 2000년 밀레니엄 버그 사건을 계기로 전세계 IT아웃소싱 시장의 강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밀레니엄 버그 사건이란  1999년에서 2000년이 넘어갈 때 컴퓨터 시계가 000년이 되어 전 세계적 서버 오류가 발생하게 되고 전산시스템 문제로 금융 및 통신 등 사회 전체 혼란이 발생한다고 하여 전 세계는 불안에 휩사여 있었다. 통신회사에 근무하는 필자 역시 2000년 되는 새벽에 혜화전화국에서 PC통신서버와 함께 밤을 새우면서 새천년을 맞이 했다. 이 시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수많은 서버를 원격으로 업데이트하는 일을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 회사에 아웃소싱 했다.


인도는 밀레니엄 버그를 원격으로 서버 유지보수를 하면서 수많은 IT 콜센터와 인력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기업에서 2001년 IT교육 비용이 저렴한 인도에 가는 일이 많았다.

그 시절 인도에서 IT교육을 받았던 2주간의 기억을 글러 남겼고 지금은 철지난 오래된 글로 당시 내 생각을 만나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 당시 나의 생각은 지금 생각과 비교하면 다소 이분법적인 생각을 한 것 같다. 

특히 선진국, 후진국 등 구분하는 등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과거 식민지를 겪으면서 미화된 부분을 담았던 이야기를 현재 관점에서 주석을 달아 표기했다.

 

시간이 지나서 나의 글을 보면서도 세상의 가치 변화와 함께 내 생각이 많이 변화되었음을 느낀다. 그렇게 된 계기도 짧은 인도에서 겪은 시간 동안 조금씩 세계와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 스스로 많은 각성을 했었던 시기가 있어서 인 것 같다.


 -2019년 10월





1. 인도로 떠나는 길


떠나기 전날.. (2001.12.)


내일이면 인도로 간다. 사람은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기대가 있는듯하다. 어딘가 떠남으로 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싶은 마음은 모든 사람의 공통점일 것이다.

누구나 우물 안에서만 머물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인도라는 곳으로 해외여행을 처음 한다. 사실 선진국과 다른 어떤 특이한 삶을 볼 것으로 기대도 된다.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여행의 소득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 후진국은 후진국대로 그들의 문화와 삶을 보고 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인 듯싶다.

이제 내일의 여행의 시작을 위해 짐을 정리해 볼까 한다.



인도에 대하여..


비틀스의 멤버인 조지 해리슨이 타게 했다고 한다. 흥미 있는 것은 조지 해리슨이 생전 인도의 신비주의에 빠져서 장례식을 인도의 갠지스강에 유해를 뿌리는 식으로 한다고 한다. 분명 인도는 흥미 있는 나라인 듯하다. 종교라는 관점도 매우 흥미 있을 듯하다. 언제나 인간은 종교에 의지하고 또 싸우고.. 그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





떠나는 날


서울을 떠나기 전 300$를 환전하여 가져 가기로 하였다.

일요일 오전 이래서 돈을 환전하는지도 걱정되었으나, 공항이라는 특수 사항으로 환전소는 어디나 있었다.



인도의 첫날..


인도의 첫날은 무척 긴 하루였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27.5시간..

인도와 3시간 30분 차이로 인하여 처음 도착한 인도는 우리에게 하루의 보너스 시간을 제공하여 주었다. 시차적 응이 안되어 아침에 눈을 뜨니 5시 ~ 6시.. 한국시간으로 8시 9시이다.




인도의 국제공항

인도의 국제공항인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은 우리나라의 70년대 분위기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인천 국제공항과 비교하여 본다면 많이 낙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도의 특유한 문화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공항에 그려진 흰두의신, 부처의 모습에서 여기가 인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간디 공항에 도착하여 활주로를 내려오는 순간 인도의 모습이 안개에 싸여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안개가 아닌 스모그였다.


그리고 처음에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인도의 특유한 냄새이다. 이 냄새는 공항에서부터 느끼며 인도의 곳곳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냄새인듯하다.

그 냄새는 마치 타이어 타는 냄새와 향신료가 섞인 냄새로서 나중에 알고 보니 인도 사람들이 항상 피우는 향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게다가 인도의 12월은 건기라고 한다. 그로 인해 물이 부족하고 먼지가 많다. 그것도 밤이 되면 공기가 가라앉아 더욱 공기를 탑탑하게 한다.


감기

서울에서 독감에 시달리다 인도에 오니 의외로 기침이 멎었다. 아마도 인도 사람들은 겨울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초가을 날씨 같은 기후 덕분인듯하다. 그러나 새벽은 약간 춥고 또 건조한 기온과 스모그로 인해 기관지는 별로 좋지 않게 만드는 환경인 듯하다.


인도의 교통


인도는 영국, 일본처럼 좌측통행 차로이다. 그리고 신호등이 없는 거리와 로터리를 통해 4거리를 진행하도록 만든 구조등은 영국의 교통구조를 본떠 만든 것 같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무단횡단이 일반화되었다는 것.. 또한 운전습관이 매우 거친 편이다. 클랙슨을 수시로 누른다.


하지만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매우 인상적이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들의 차에는 백미러가 없는 차들이 많다, 그리고 사람을 한 사람 더 고용하여 나누어 먹고 산다고 한다. 또한 백미러가 없기에 클랙슨으로 앞지르기를 하라고 허용하거나 서로 간의 신호를 한다. 그래서 차 안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차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주로 산 토즈란 이름의 현대의 아토스 그리고  엑센트, 소나타, 대우의 마티즈 등으로 매우 낯익은 차를 쉽게 볼 수 있다.





그 당시 나의 시각은 선진국 후진국을 구분할 정도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다소 편협하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영국 비틀스 조지 해리슨이 식민지 국가인 인도식으로 장례를 한다는 것에서 인도는 영국인들의 삶 속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 또한 이해하게 되었다.(2019년 10월)






2. 인도의 일상 속으로.


인도의 호텔 환영식

인도에서 호텔은 참으로 인도 속에 떠있는 상류층 사람들의 섬이다.

처음 호텔에 와서 환영식을 받았다. 인도 전통복장의 여인들이 화환을 걸어주고 이마에 붉은 점을 찍어주었다, 이곳의 전통 환영식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인도의 여인들(상류층)이 참으로 미인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겠지만 인도의 상류층의 경우 미인과 미남이 상당히 많게 느껴진다.





일상에 대하여

일상의 반복이란 때론 지겹게 느껴지기도 하고 의미를 모르기 십상이다.

하지만 다른 문화의 체험은 색다른 의미를 통해 자신이 사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분명 우리가 고민하던 문제가 이곳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경우 도 있는 것이다.

즉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어버리거나 보다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인도의 결혼식


인도의 결혼식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 점에서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인도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곳이 인도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이를 보게 되는 이유는 인도는 결혼을 거의 같은 날 하는듯하다. 12월 중순쯤 인도의 델리 시내 곳곳은 결혼식 행사로 시내가 떠들썩하다. 특히 인도의 결혼은 우리와 달리 밤에 결혼을 한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저녁에 했다는 것 같다.  이들의 결혼하는 방식은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가는 것인지? 하여튼 말을 타고 가는 것 같다. 그리고 주변에 군악대 멤버들과 같은 들러리가 연주를 하며 간다. 그리고 특히 형광등으로 장식한 마차를 끌고 간다.

 

또한 호텔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매우 부자인 듯하다. 내가 묵은  타지 팰리스 호텔(Taji Place Hotel)의 경우는 5성급 호텔(Five Star Hotel)로서 고급 호텔이다. 이곳에도 3개의 홀이 결혼하는 쌍으로 붐비고 있었다. 같은 날 이렇게 하는 데는 아마도 결혼하기 좋은 계절과 날짜가 이들에게도 있는듯하다. 호텔에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분명 부자이거나 브라만 계급의 사람일 듯하다. 이들의 경우 보기에도 무척 고상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결혼식은 즐거워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지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성스러운 결혼식이 아닌 댄스장을 만들어 춤을 추게 하고 있다. 가령 미니 디스코장을 만든다든지 전통 춤을 추는 연예인들을 초청한 무대를 만든다든지는 이들의 결혼 습관인듯하다.


그리고 가이드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인도에서 결혼을 하려면 여자가 다오리라는 지참금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것도 남자의 능력에 따라 다오리 수준은 바뀐다고 한다. 그리고 다오리가 많으면 그만큼 고생하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에 딸 가진 부모는 참으로 돈이 많이 부담된다고 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전거를 준비하고 돈이 좀 더 있으면 오토바이를 그리고 돈이 많은 집에서는 자동차를 준비하여 간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는 연애결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신분이 다른 경우 결혼이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브라만의 여인과 수드라 계급의 남자가 결혼 시 가장 천민인 불가촉 천민 보다 낮은 계급이 된다고 한다.



인도의 경우 술을 찾아보기 힘들다.

호텔에서는 술을 어렵지 않게 구하겠지만, 실상 인도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또한 술에 대한 판매를 정부에서 금하는 듯했다. 허가제로서 술을 판매한다니..

일종의 술을 제한하는 종교적인 관습 인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택시, 릭사 왈라 오토릭샤.


인도의 경우 서민층이 이용하는 릭샤, 오토릭샤와 우리나라의 모범택시 격인 엘로 캡 택시가 있다.

인도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오토 릭사는 우리나라의 과거 삼륜차와 비슷하며, 흥정을 잘하여야 한다, 또한 인원수 제한은 없다. 실제는 3명밖에 못 타지만 4명까지 탄 적도 있다.



특히 인도의 경우 릭사로는 호텔 출입이 불가하다. 그만큼 호텔은 인도에서 상류층의 생활 무대인듯하다.

엘로 캡 택시로의 시내 관광 시 250 Rs를 주었는데, 상납금으로 400 Rs를 준다고 하니 큰돈인 듯싶다.

그리고 이들의 말로는 엘로 캡 택시 운전사는 중상층에 속한다고 한다.

엘로 캡 택시를 타고 호텔에 오니 전통 무사 복장의 호텔 안내인이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운전사는 이들에게 약간의 돈을 주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였다고도 한다.



인도에서 겪은 다양한 문화 경험은 우리와 비슷한 부분 또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그런 차이를 통해 문화를 이해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인도라는 사회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신분적 차별이 원천적으로 존재한다. 한국사회 역시 신분제도는 과거 존재했지만 이제는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도 또 다른 차별이 존재한다.

한국사회 변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일반적으로 변화가 많지 않을 결혼식 및 장례식 문화마저 빠른 변화를 겪고 있다. (2019년 10월)



3. 인도에서의 수업 후 나들이


인도의 소프트웨어 교육기관으로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었다. 영국식 발음의 영어가 매우 낯설었지만, 금방 친숙해졌다


12/6일 메인 바자르에서..


오늘은 안개가 무척 낀 날이었다. 아마도 스모그인듯하다.

우리는 메인 바자르의 전통춤을 보여주는 극장에 들렀다.

그곳의 모습은 큰 저택을 개조한듯한 극장으로 다소 비싼? 150 Rs를 받는다.


그러나 전통문화를 상품화하는 데는 조금 모자란 듯싶다.

즉 아직까지 외국인을 위해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보여주지는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곳에는 우리나라의 장구 같은 전통악기를 치는 노인이 있는데, 신명 나게 치는 것을 보았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장구로 가락 맞추고 춤추거나 사설을 읊는 비슷한 구조로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농악을 하는듯한 동작이 많이 눈에 익었다.

또한 씨 뿌리는듯한 동작은 이들이 농경을 하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는 길에 Main Vazar에 대한 거리 설명을 들었는데 언론사가 밀집된 중심가인 듯했다.

나중에 그 노인과 이곳의 단원을 호텔에서 하는 인도의 한 재력가의 결혼식장에서 다시 봤다.

아마도 이들은 델리에서 꽤 유명한 악단인 듯하다.



12/12일


오늘은 India Gate와 CP(코네씨티)에 들렀다.

CP는 원형의 시가지로서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로는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라고 했다.

야경도 다른 곳에 비하여 화려했다. 어쩌면 가장 인도적이지 않은 곳인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여러 노점과 관광객을 위한 상점이 있었다.



그곳의 상인들의 흥정하는 모습은 가히 수준급이다. 아니면 우리 일행이 순진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관광은 원형 시가지를 모두 돌면서 마치었다.

역시 가난한 사람이 많은 곳 이래서인지 동냥을 하는 소녀에게 일행이 10루피를 주었다.

계속 쫓아와서 다시 10루피를 주었더니 나중에는 많은 아이들이 몰려왔다..

한편으로 연민이 가면서도 난감했다.


10 루피


50 루피


100 루피


그곳에서 급히 우리 일행은 오토릭샤를 타고 India Gate에 다다렀다. 밤의 India Gate의 조명은 꽤 멋있었다. 마치 파리의 개선문에 온듯한 기분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인도의 전사자를 위한 Gate라고 한다. 그곳과 가까운 곳에 대통령궁이 있는데, 가지는 못하고

보금자리인 Taji place 호텔로 돌아왔다. 오는데 3명이 60 Rs로 흥정했다.


우리를 안내하는 분은 인도에서 박사과정을 맞고 게 신분으로 안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그런 만큼 인도에 대한 시각이 무척 긍정적이었다. 또한 한국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이 인도의 계급적 문화를 무조건적 비판으로 일색 하는데 아쉬움도 있는 듯했다.

사실 문화라는 것은 그 나라의 특수성을 모르고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아주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개고기 문화에 대한 서구의 비판적 시각 역시 그들도 아직 문화의 이해에 대한 미숙한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곳은 자이프르의 호텔이다. 타지마할 호텔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세 심 한 곳까지 정성을 들인 듯하다. 그런데, 음식이 안 맞아 걱정이다.


City palice


인도라는 나라는 알면 알수록 흥미 있는 나라이다.

다양한 종교, 그리고 종교 없이 못 사는 사람들, 그리고 종교가 없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

인도는 종교, 철학의 나라인 듯하다.


낮에는 City palice의 천문학 관측소를 들렀다. 그곳을 보니 인도의 문학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함께 점성술 또한 발달되었다고 한다.


기술도 그렇지만 그것을 형상화하여 건축물로 만든 것도 높이 살만하다.

그곳의 안내인은 인도가 수학에 대하여 원조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0의 개념을 그들이 찾아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인도는 현재도 수학이 꽤 발달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인도의 네루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는 유학생을 만났는데, 그 또한 인도 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하였다.


자이푸르의 City Palace 안내책자와 Jantar Mantar 소개 사진



인도가 수학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것은 수학의 개념을 만든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아라비아 숫자라고 하는 것도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앙아시아에 확산된 것으로 인도의 수학 철학은 대단한 것이다. 오늘날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종종 인도계 IT 기술자들을 만나게 된다.


얼마 전 "무한대를 본 남자"라는 영화 속 라마 루잔은 식민지 시절 1887년 인도 빈민가에서 태어났지만 영국 하디 교수는 라마누잔의 이런 천재성을 발견하고 27세에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데리고 와 함께 연구했다.

그는 자연수의 분류 연구로 명성을 떨쳤다. 수리분석, 정수론, 무한급수, 연분수 분야 등 3900개에 달하는 수학 공식과 이론을 증명해 ‘제2의 뉴턴’이라고까지 불렸다. 



4. 인도에 대한 단상


인도의 단상


인도의 자존심이란 게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도는 분명 전체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잘살거나 높은 계급의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나라

이면서도 기회와 역할이 주어지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최소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인도의 특징이다.

인도는 어쩌면 미국과 닮은 점이 있다. 다민족, 다종교 그리고 지배계급의 인종이 있는 나라. 지배 인종은 그들의 정책으로 나머지 계층을 지배하고 있다.


종교적으로 또는 사회적 방법으로..

종교의 시작은 정치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고대국가는 정치와 종교가 일치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면 종교의 성지인 인도를 통해서 종교의 허상도 느끼게 된다.



인도라는 곳에서 일주일을 머무르다 보니, 인도의 관습이란 것이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 사실을 느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듯이 지역마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경우 넓은 지역을 이루었고, 종교의 다양성과 인종의 다양성이 있는 나라이다.


가령 남부 쪽에는 불교가 북쪽에는 힌두교가 그리고 이슬람 유적지가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도의 델리 지역과 달리 지방 쪽의 지역 모습 또한 색다른 것 같다.

또한 델리 시내를 따진다고 하더라도 북쪽의 올드델리와 남쪽의 뉴델리는 도시구조의 차이가 있다.

즉 뉴델리는 영국 식민지 형태의 도시이며, 올드델리는 전통적인 도시형태라고 할 수 있다. 뉴텔리의 도시 구조는 신호등이 없는 로터리 방식으로 각 시가지의 길로 갈 수 있다.


신호등이 없다 보니 무단횡단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안 하는 무단횡단을 이곳에서는 수시로 하며 다녔다.

인도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모습은 장단점이 있다. 자존심을 갖고 외교를 하는 모습은 실이 되기도 하고 이득이 되기도 한다. 인도의 국민들은 빈국에 속하지만 인도는 빈국임을 표명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자존심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가난한 국민의 절대다수가 하층의 계층이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인도의 경우 참으로 특이한 사회복지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는 전선이 벗겨져있기에 마음대로 연결하여 쓸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또한 물가 및 서비스도 차별화되어 있기에 가난한 사람도 다 먹고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돈이 있는 사람에게 많은 세금을 걷는다. 자동차의 경우도 우리나라의 자동차인 아토즈등이 600만 원이라 한다면 이것의 두배인 1200 만원을 주고 이곳 사람들을 차를 구입한다. 즉 나머지 금액은 모두 세금인 것이다.



인도의 일정


인도의 일정은 참으로 빡빡하게 돌아간다. 수업과 동시에 관광을 남는 시간 해야 하는 부담으로 모두들 많이 지친듯하다. 나도 좀 지친듯하다. 몸이 피곤하니 감기가 낫지 않는다.

그래도 오기가 쉽지 않은 나라다 보니 다들 열정적으로 구경하러 다니는 듯하다.

인도는 공기가 안 좋다. 자동차 경적 소리, 매연, 모래먼지... 이것이 델리의 모습이다.


그중 좀 나은 곳은 마르거라는 영국인 전용도로가 있는데 그나마 상태가 좋다. 예전 영국 식민지 시절, 이도로는 수례 등이 못 들어오도록 통제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도의 건축양식 중 아파트는 그나마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인듯하다. 그러나 겉보기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못 미친다.  또한 호텔 주변에도 천막 속에 일가족이 사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 데나 살아도 인도에서는 철거하거나 제지하지 않는 듯하였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


그러나 내가 알게 된 인도에서 다국적 기업의 CEO 집에 가보니 매우 엄청난 규모였다. 입구는 경찰이 지키고 있었고 그 길로 꽤 오래 들어가서 보니 곳곳에 거대 주택이 보였다. 다들 인도에서의 거부들의 집인 듯하였다. 이렇게 숲 속에 집이 있는 이유는 델리의 공기가 좋지 않기에 개발이 되지 않은 숲 속(델리는 원래 정글지대를 개발한 도시라고 한다.)에 집을 지은듯하였다.

 

그 집의 구조는 거대한 풀장과 지하에는 스쿼시 연습장 그리고 지하실에는 수영장 바닥과 유리로 막혀 있어 여름에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듯하였다. 그리고 식당도 2개는 있는 듯하였다.


인도에 대한 느낌은 인도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도의 수많은 인구를 통치하는 방법인듯하다. 이와 유사한 형태는 미국과 중국일 수 있다. 이러한 다민족 거대 인구 국가의 특징으로는 소수의 엘리트 집단의 교육인 듯하다.


모두에게 주기에는 적은 파이를 나누는 방법. 그러나 이 방법을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하다.

경제, 문화는  규모에서 시작한다. 만일 이것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인구가 적은 인구의 일부 계층만 육성하는 결과가 되어 성과를 얻기에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와 같이 적은 인구의 나라는 전체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더 낳을 것이다.


인도는 우리의 40배 인구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많은 뛰어난 사람이 나올 듯하다. 또한 많은 불구자 및 인간의 역할을 못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다양성을 유지하고 조화시키는 방법을 인도는 알고 있는 듯하다.


인도의 유적지


인도의 거대한 유적지에 많이 놀랐다.

타지마할은 왕비의 무덤으로 수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통해 완성한 화려한 무덤이다. 왕은 이들의 기술이 다시 다른 곳에서 발휘되지 못하도록 타지마할을 지은 모든 기술자의 손을 잘랐다고 한다. 이러한 것이 어떻게 가능하였나를 생각해 본다면 수많은 노동력과 절대군주의 힘이 있기에 가능하였던 것 같다.


또한 이들은 이러한 관광지로 후손들이 먹고살고 있는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의 종교는 힌두교인데 대표적인 유적지는 타지마할과 무슬림의 유적지인 것도 매우 흥미롭다.  종교상으로는 탄압 대상일지 모르지만 UN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기에 관리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인도에서의 흥정


인도에서는 도대체 얼마가 정가인지 알  가 없다.

흥정을 하면서 물건을 사는 재미도 있다. 자칫하면 큰 바가지를 쓸 수도 있지만 그런대로 재미가 있다.

하다못해  릭샤 및 택시도 그렇다. 정가라고 붙인 정부 직영 마켓이라 곳 역시 마지막에 남은 사람에게 하나래도 더 팔려고 안간힘을 쓴다.



인도의 장점 영어


인도의 장점으로는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두들 흰디어는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주 잘하는 영어인지는 모르겠다. 단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점수가 많이 못 미치면, 아예 영어를 못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또 영어로 대화하려 하지 않지만,

이들은 이것이 생활이다 보니 못하는 영어로 서로 통하는듯하다.

그래서 듣다 보면 흰디어 식 영어도 많이 듣게 된다.


우리가 교육받는 NIIT는 국제적인 IT교육기관이다.

NIIT가 인도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영어이다. 그리고 뉴델리 대학이 아시아의 두 번째 좋은 대학인 이유도 바로 영어 사용 때문인 듯하다. 인도의 교육비는 상당히 저렴하다. 1년에 우리나라 돈 3만 원 정도라니..

그러나 계급이 더 중요한 사회인만큼 사회적 성장에는 계급 문화적 제약이 있는 듯했다.


정치


카스트의 상층부로는 브라만과 크사 트라가 정치를 주도한다. 다른 계층 역시 정치에 입문할 수는 있도록 법적 제한은 없지만 기반이 약해서 거의 불가능하다. 또 만약 시도한다고 해도 기존 세력과 대응 시 죽음을 당한다고 한다. 따라서 선거 때가 되면 거의 500여 명의 후보자가 선거 때 암살당한다고 한다.


인도의 대통령 궁 주변 도로 : 이곳에 다녀온 다음날 테러로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 당시 인도가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던 것 같다. 이러한 불안한 갈등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식민지를 겪은 나라에서 공통적 현상으로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상이 되는 국가를 갈라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도의 경우는 종교를 통해 갈라놓았다. 갈라놓아야만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고 견제하기에 식민지를 유지하기 수월해진다.  사실 이슬람인 파키스탄과 힌두교 인도는 영국인들이 종교인들을 통해 분리했지만 그전에는 인도에는 많은 종교가 혼재되고 함께 잘 지냈었다.


영국 식민정부는 파키스탄과 인도를 갈라놓기 위해 종교 간 갈등을 부추겼다. 현재의 파키스탄 쪽에서 내려오는 비이슬람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서북청년단처럼 극우테러집단 역할을 했고 힌두교와 이슬람 간 갈등을 없애려는 간디가 죽였다. 마치 이승만 정권에서 김구 선생을 죽인 것과 유사하다.

근본적으로 보면 한국, 인도의 비슷한 역사는 식민지에서 비롯되었다. 근원적 문제를 생각하면 우리들의 갈등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임을 알 수 있다.(2019년 10월)




인도의 차  짜이.


인도에서 경험한 차 중에서 짜이가 가장 맛있는 차인 것 같다. 그것도 고속도로변의 휴게소에서 만든 걸쭉한 짜이 맛이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데자와란 상품으로 나온 것과 비슷한듯하다.

호텔에서는 홍차에 우유를 타서 준다.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의 짜이는 우유가 더 많이 들어있기에 더욱 진한 맛을 느낀다. 또한 인도에서는 소다수를 파는데 영국식이라고 한다.


먹는 법은 소다수에 레몬즙을 타서 설탕을 섞어 먹는다. 이것 역시 자연 탄산음료로 먹을만하다.

인도의 홍차는 먹는 법이 또 하나 있다. 인도 홍차에 레몬( 인도 레몬은 금귤 같이 작은형 태이다 )을 반으로 쪼갠 것의 즙을 홍차에 타서 먹는다. 맛이 향긋하다.

  타지 팰리스 호텔에서 투숙객에게 준 선물 홍차로서 로고가 중앙에 있다.  아직도 이통을 10년째 쓰고 있다.



Taji Place호텔


인도에서 우리 일행이 묶은 곳은 Taj place hotel로서  five star hotel이다. 상류층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저녁에 현관에는 4명의 연주자가 낯익은 팝송과 클래식을 연주한다. 그리고 식당에는 저녁때 가수가 라이브로 노래를 부른다.


음식 맛 역시 국제화되어 불편함이 없다. 그리고 조그만 골프연습장과 수영장이 있어 여가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도시 내에 있어서인지 공원은 넓지 못한 듯하다. 이에 비하면 JP호텔은 무척 큰 정원이 있는 호텔인 듯했다. 또한 자이 풀 호텔은 작지만 정리가 잘된듯하였다.




타지팰리스호텔은 타타그룹이 소유한 호텔이다. 타타그룹은 인도에서 한국의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다.

타타그룹은 우리나라 대우자동차 트럭을 비롯하여 영국, 재규어, 랜드로버등을 인수하여 제철 및 발전소 사업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인도에서의 살인 소를 죽이는 경우.


인도에서 소를 죽이는 경우 브라만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찾길에서도 소가 지나가는데,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도 정부도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그런 전통이 시골을 가면 더욱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안도에서는 소를 죽인 경우(고위든 과실이든) 처벌받는 것을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분이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전해 들은 내용은 어떤 시골에서 아이가 소를 몰고 가다가 소가 말을 듣지 않아 머리를 쳤더니 소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가족이 모두 집을 나와서 마을 어귀에 천막을 짓고 지내야 했고, 6개월 동안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한다.


우선 아머지와 아이는 강가강(갠지스강)에 죄를 사하는 의식을 치루어야 했고, 그곳에서 제사장에게 죄를 사하는 의식을 치루어야 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계급이 불가측 천민신분이 되어 가장 낮은 계급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한다. 이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가장 아래 신분으로부터 순차적으로 밥을 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인도에서의 전통으로는 항상 신분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게는 밥을 살 수는 있어도 얻어먹지는 않는다.


따라서 신분이 낮아진 상태에서 밥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밥을 사게 되면 6개월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따라서 많은 돈과 사회적 자존심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도시에서 소를 치는 경우 뺑소니를 친다고 한다.



인도의 특산물


외국인이 보기에 인도는 상징이 타지마할이라고 느낄만하게 타지마할은 무슬림의 유적이지만 웅장하고 아름답다. 타지마할은 무슬림의 유적지로서 현 인도의 종교인 힌두와 배치된다.

그러나 타지마할은 인도의 국제적인 유적지로서, 지역 재정에 크게 이바지하는듯하다.

반면 같은 무슬림 유적지인 아그라 포트는 비교적 관리가 안된 듯하다. 이것은 인도의 종교적인 문제와도 연관이 있는듯하다.


인도의 15~16세기 건축물들은 대단히 크다. 아마도 큰 규모의 국토와 자원, 그리고 많은 인력과 강력한 신분제도 등이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한 듯하다.


인도에서 가져온 관광책자와 종교 철학 및 간디 서적


인도의 생명가치


인도 관광 중 강렬하게 느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물건 하나 팔기 위하여, 매달리는 것이다.

이들을 따돌리는 것은 물론 귀찮은 일이다. 거지들도 , 상인들도 이들은 장사 이전의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졌다. 그것은 이곳에서 이 나라의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가치가 그렇게 다를 수 있는가?

 

내가 호텔에서 생활할 때와 나와서의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다른 세상과 차원의 벽이 존재하는 듯하였다.

아마도 예전 이곳의 석가모니가 그토록 풀고자 했던 문제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관광지를 둘러보면서 안내원의 설명에서 그 당시 왕족의 생활이 얼마나 화려한지 알 수 있었다.

더위를 흡수하는 차가운 대리석, 마블과, 물이 흐르는 커튼과 건축물 속에서 왕은 호화로운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의 신분은 확고하다.



인도는 영국을 좋아한다?


식민지 통치 국가를 좋아할 수 있는가? 인도에서는  갤커타라는곳이 있는데 처음 영국인이 어떤 나무꾼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자 나무꾼은 갤커타라고 했고 영국인은  이를 본국에 보고하면서 갤커타라는 도시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인즉 나무꾼은 언제 나무를 했냐고 물어보는 것으로 알고 어제 한 나무라고 이야기한 것이었다. 이렇게 영국의 인도 진출은 진행되었고, 영국은 인도의 상류층을 지배함으로써 국민들에게는 별다른 탄압이 필요 없던 것이다.  오히려 여러 혜택으로 서민들은 반겼는지도 모른다.


과거 인도에서 안내원들에게 들어서 전한 이야기는 마치 한국에서 일부 학자들(일본에서 지원 학자)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유사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국이 인도를 지배 시 상류층을 지배했고 수탈해 갔다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별다른 탄압이 없다는 것은 현실을 모르고 한 이야기다. 인도에서 1943년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시기 영국 처칠은 인도인 700만 명이 굶어 죽도록 수탈하고 방치했다. 식민지 겪은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식민지 시절을 미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도의 경우도 친영국계 학자들이 인도 사회에 지배층에 있었을 것이다. 2001년 이미 해방된 인도지만 여전히 식민지 시대 미화된 이야기는 남아서 이곳을 방문했던 외국인에게까지 전해진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지 모른다 (2019년 10월)



인도에는 한국 승용차가 많다.


인도에서는 수입차 가격이 2배라고 한다.  그래도 많은 상류층은  차를 가지고 있다.

초기에는 대우차가 인도에서 가장 선호하는 차였다. 그러나 최근은 현대차가 선호되고 있다.

가이드의 이야기로는 인도 사람들이 한국을 알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올림픽과 한국의 대기업이라고 한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곳에서 이토록 많은 한국 승용차와 삼성 LG 등 대기업 광고를 볼 수 있을지는 미처 몰랐다.




인도의 교민


인도에는 교민이 2명이 있다고 한다.

초기에는 6명의 교민이 있었는데 , 이들 모두는 반공포로로서 인민군 장교 출신이었다. 그들이 인도에 정착한 후 현재 4명은 행방불명되고, 2명의 교민만 크게 성공하였다. 그중 현 회장이라는 분의 이야기는 드라마적이다.

초기 정착 시 무일푼이던 현 회장은 그곳의 인도의 고위 관료의 집압을 매일 청소를 하였다.

 

2년째 청소하던 어느 날 장관이 현 회장에게 사연을 듣게 되고, 그 후 장관 집의 하인으로 일하게 되었다.

일을 열심히 하여 신임을 얻은 어느 날 장관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광물 특허권을 요구해서 한국과 거래되는 모든 거래를 관장하게 되었다.

그분 덕에 한국대사관 및 한국기업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분 역시 사업으로 성공하신 분으로 인도에서 한국인의 이야기는 참으로 극적이다.


인도의 반공포로는 우리나라 남북 분단의 아픔이다.

반공포로에 대한 영화로 스윙 키즈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속 포로들의 삶이란 어떨까? 마음 둘 곳 없는 사람들이 반공포로 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 중 일부 반공포로들의 경우 제3 국을 가는 경우들이 있는데 인도로 간  6명의 마음 역시 그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필자 역시 실향민 가족으로 실향민들은 많은 친척들이 해외에 떠나 사는 경우가 많다. 이들 역시 마음 둘 곳 없어서 일 것이다.




인도는 흥정의 나라.

인도에서 느낀 것은 이들이 참으로 흥정에 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물건 파는 모습도 그렇고 기업인에 이르기까지 장사꾼 기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꾼의 흥정하는 모습 그리고 NIIT의 스텝의 자사 소개에서도 이들의 사업수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기업인의 경우 그들은 아직 우리나라와 같은 브랜드 파워가 없다고 하기는 하지만, 비즈니스 마인드는 상당한 듯하였다.


인도의 유적지


인도의 유적들은 300~400년 전  그리고 최근의 유적이 많은듯하였다. 아무래도 무굴제국 그리고 영국 식민지 시대까지 유산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많은 곳을 다니지 못해서 다양한 시대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인도의 화장실 그리고 팁 문화

인도를 제대로 알기는 참으로 어렵다. 인도는 에누리가 있는 사회이면서도 팁으로 돌아가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서 팁 문화는 서구 유산이면서도 이곳에 토착된 문화인듯하다.

항상 오전에 20 Rs씩 침대에 놓아준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세수한 후 손수건을 접시에 바쳐주는 호텔 직원에게 10 Rs씩, 그리고 짐 들어주는 호텔보이에게 20 Rs씩..

이곳 생활에 젖어들면 젖어들수록 팁에 대한 부담이 생긴다. 그러나 관광지에서도 외국인에게는 항상 1Rs 이상을 받아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경우에 따라서 10 Rs를 요구하기도 한다.


호텔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인도의 잔돈을 구경하기 힘들어진다.

생활의 단위가 모두 10루피 단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민들의 시장에서는 1루피 그리고 그 이하인 파이사 (paisa)까지 다룬다. 즉 인도는 돈의 가치가 계층별로 생활수준별로 다른 듯한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도 마찬 가지 인듯하다.


우리나라의 기업 TV

내가 가본 인도의 호텔에는 TV가 필립스 또는 삼성이었는데 삼성은 인도의 컴퓨터 부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것은 아리랑 TV를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외국에서도 영어로 된 한국방송을 볼 수 있었다.


인도에서의 일상인들의 모습


인도에서 관광지만 접한 모습을  인도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을 느꼈다.

관광지에서는 온갖 상술 및 걸인들의 접선에 시달렸는데, 인도의 일반인들이 사는 거리에서는 관광지의 이런 모습과 달랐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관광객에게 돈을 요구하거나, 매달리지 않았다. 의외로 차별적이지도 않았다.

다만 영어가 통하지 않아 힘들었다. 그러나 숫자는 아는 듯하였다.

인도에서 영어는 상위계층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들이 아무리 영어를 많이 사용하지만 그들의 말인 흰 디어가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를 강의하는 사람들 역시 그들 간에 말을 할 때는 힌디어를 더욱 자연스럽게 쓰는 것을 확인했다.


인도의 길거리 음식


인도에서 길거리 음식의 시도는 용기가 필요했다.

우선 그들이 영어를 하지 못해 힘들었고,  혹시 먹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어쩔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먹어 본 후 그런 걱정이 없어졌다.

어떤 삶은 계란을 주는 곳이 있는데 삶은 계란을 2개를 신문지 종이에 언어서 반을 쪼갠 뒤 여기에 향신료와 소금을 넣어주었는데 맛이 꽤 괜찮았던 것 같다.


그리고 감자를 으깬 뒤 나뭇잎 접시에 넣어서 여러 향신료를 섞어 먹는 것도 괜찮았다. 그리고 인도의 비스킷 과자 또한 5~6 Rs면 먹을 수 있다.

또한 호텔이 아닌 서민들의 식당에서 먹어 보는 탄두리 치킨의 맛이 정말 괜찮았던 것 같다. 붉게 익은 닭에 레몬을 뿌려서 수프를 찍어 먹는 것도 괜찮았던 것 같다.



한국의 유학생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한국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한국의 유학생으로서 인도의 네루대학의 대학원에서 컴퓨터를 공부하고 있었다.

네루대학은 대부분의 인도 대학이 영국식 1년을 1학기 제로 하는 구조가 아닌 미국식 대학 형태이다.

그 친구들은 이곳을 졸업하고 미국의 실리콘벨리로 진출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안내하던 분 역시 델리대학의 대학원생이었다. 그는 불교 관련 힌디어등 전공하는듯하였다.

인도에서 공부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비용으로, 국제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국제화를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외국인 교수가 많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인도는 힌두의 나라라고 한다. 힌두란 인더스강 우측 마을 사람을 말한다.


아리안족은 브라만 교를 전하였는데 범이라는 유일신이 땅과 물 , 불, 바람(지수화풍)을 만들고, 일체 만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범아일여 사상은 매우 흥 모은데, 범이라는 신이 일체 만물 생성하였는데 움직이지 않고 있자 , 자신의 육신을 모두 쪼개어 일체 만물 속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이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인도의 독특한 신분제도가 발생했고, 이후 불교, 자이나교가 강성하면서 브라만교는 위축되었다. 그 이후 이러한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힌두교가 태동하였다.


인도 사람들의 종교관은 2가지로 나누어 분류하는데, 하나는 인도 발생 종교와 인도가 아닌 곳에서 발생 종교로 나눈다. 인도 발생 종교로는 힌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로 나눌 수 있고, 비인도 발생교로는 기독교, 천주교, 유태교 등을 말한다.

인도의 수행자 중 특히 한 수행자로서 나체 수행자를 들 수 있는데, 나체 수행교로는 힌두와 자이나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중 자이나교는 나체파와 백이 파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아리안의 전통으로 일만만 자 혹은 나치 기호를 볼 수 있는데, 이 기호는 아리안족이 전통적으로 태양을 상징하던 방식이다. 이마크는 독일의 나치당의 마크였는데 이는 히틀러가 아리안의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인도에서 만난 기업가가 있는데, 인도의 경우 반 이슬람이기에 교역이 이스라엘과 많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유럽의 아리안에게 핍박받고, 인도 아리안과 교류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힌두의 신화를 보면 3가지 신이 있는데, 브라만(창조), 시바(파괴), 비 슈드(유지)로 나누어진다.

힌두 사원중 남부지역에는 성행위를 표현한 사원이 있는데, 이러한 행위 묘사는 완전 한신이 남자와 여자로 변하여 다시 하나가 됨을 묘사하는 것이라 한다.

또한 시바신을 묘사한 것을 보며 한쪽은 남자의 가슴을 다른 쪽은 여자의 가슴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남인도와 북인도

인도의 경우 남인도와 북인도의 문화 차이가 있다고 한다.

가령 글자 쓰는 방식도 다른데, 북인도는 남인도에 비해 문명이 발달해 펜을 사용함에 따라 글자 형태가 정자체로 보통 빨랫줄에 빨래가 널린듯한 글자체를 보이고, 남인도의 경우 나뭇가지 등으로 글자를 쓰기에 둥근형 태이다.


또한 식생활도 북인도는 난이라는 호떡 같은 형태의 밀반죽을 많이 먹는 반면 남인도는 쌀이 주식이다. 또한 역사적인 이유로 남인도는 비교적 불교 유적지가 많고, 북인도는  힌두 , 무슬림 유적지가 많은듯하다.



인도 힌두교의 시바신은 뱀을 상징하며, 갠지스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도의 영화산업


인도에 느 봄베이에 영화산업이 발달되었다 한다. 이른바 불리 우드라는 곳으로 실상은 마피아들이 돈세탁을 목적으로 투자했지만,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는 인도에서 성공한 경우이다.

인도의 종교는 다양하다. 그중 머리에 두루마리를 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시크교도라고 하여 브라만교와 달리 평등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장사 및 생활력이 강해서 많은 시크교도들은 부자라고 한다.

실제로 호텔의 엘로 캡 택시의 운전사가 자신의 회사 주인은 시크교 도라고 하였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유학생들이 서로 시크교도를 이야기하는 말로 두루마리라고 한다고 한다.

최근 젊은 시크교도들을 보면 머리에 상투를 앞으로 틀은 형태의 머리를 하고 있다.

인도의 교육 여정이 마무리되는 시점 인도의 하층민부터 상층민까지 많이는 못 만나보았지만 두루 만났다.

인도에서 느낀 것은 인도는 계급이 존재하는 나라이고, 그 소에서 질서를 찾는다. 또한 상층민의 문화가 발달되었다. 또한 문화의 발상지답게 자존심이 강하다. 또한 이들은 다수에 대한 통치방법을 잘 알고 있다.


인도에서의 2주 동안 느낀 점은 세상은 각각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인간의 근본적인 심성은 마찬 가지인듯하다. 오는 길에 인도의 NIIT의 강사진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을 포장해 서주고 왔다. 이들도 정성을 알고 받아주었다.


그리고 이들도 아쉬워함을 알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정이 많은 사람들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인도를 떠나오면서 이제 세상의 또 다른 한 점을 확인한 것 같다.

이미 내가 생활하던 대한민국 그리고 서울이라는 곳은 세상의 전부가 아닌 한 점에 불과했었고, 이제 그것을 인식한 것이다.


자이푸르의 석양


인도의 재래시장


인도의 소녀



간디의 비석



인도의 전통의상 사리 입는 법



인도신문의 펩시 광고





현재 인도와 20년 전 인도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인도에서의 2주 동안 경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부분적이지만 그 이후 IT업계소식을 통해 알게 된 인도는

화성 탐사선을 만들고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기업인 구글 등 많은 인도 출신 CEO의 이야기들이다.

또한 애플 CEO 였던 스티브 잡스에 대한 삶을 생각해보면 인도 순례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을 비즈니스에 접목시켰고 스마트폰은 세상을 많이 바꿨다.


인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간디라는 인물은 정치가, 사상가이자 발명가였다. 그는 옷을 직접 만드는 문래 및 화장실 변기 등을 만들어서 식민지 인도인들의 경제 자력을 이루려 했다.

이처럼 무언가 직접 만들려는 정신을 주가드 정신이라고 한다. 이처럼 인도는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고 서로 세상은 연결성을 가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 있다.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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