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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나무 May 16. 2020

활자 정보시대 정보 권력의 태동

산업화 글자,  민주 글자,  전체주의 권력

정보는 권력이다.


정보는 권력이다. 정보를 가진 자는 오래전부터 권력을 독점해왔다.

일찍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과 인쇄술이 발전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책을 통한 지식 축적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그런 증거로서 이 시기부터 과거시험을 통해 권력을 나누는 제도를 가지게 되었다. 결국 권력은 지식층을 가까이 두고 지식을 사유화한 권력이 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도 한자 기반으로 지식을 독점하던 권력층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반대했다. 그 시절 권력자들 역시 쉬운 한글로 인해 모든 계층으로 정보 확산에 따른 권력 누수를 두려워했고, 한글에 대해 반대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로 대중으로 흐르는 정보를 통제하려고 했다.


따라서 한글은 기존 한자 지식 기득권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대접받지 못했고, 무너진 조선 일제의 탄압을 이겨내고 해방 이후 분단된 두 국가인 남한과 북한문화의 기반을 이루는 공통분모가 되었다.

비록 남북 분단되었지만 한글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히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전체주의 시대 정권은 통치를 위해 미디어와 언론을 움직인다. 이들은 언론은 그들의 프로파간다를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라디오와 TV 등을 통해 대중을 움직인다. 그러나 대중이 과거 미디어에 의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은 대중이 얼마든지 온라인 미디어 매체를 소유할 수 있게 된 이후부터 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의 등장과 스마트폰의 등장은 누구나 미디어의 주체가 되어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정보통신의 발전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기존 미디어의 진실 왜곡을 발견하고 관심 가지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과거 단방향 언론시대에는 더 많은 가짜 뉴스가 있었지만 우리가 인식하고 비판할 수 있는 비교대상이 없었기 때문 언론의 이야기를 무조건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가짜 뉴스가 부각되는 이유는 우리가 언론의 실체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반면 위협이 되는 것은 디지털 정보는 추적 및 조작 등이 가능하기에  디지털 언론들 역시 많은 오류와 검증이 안된 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들은 여러 상반된 정보 속에서 맥락을 찾고 본질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 대신 다양한 언론을 보는 시각 속에서 단일 언론 시대보다는 더 많은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시민들이 언론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언론을 소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짜 뉴스라고 판단하는 여러 사건에는 분명 과거부터 이어온 패턴과 정파성이 존재한다.

그러한 본질을 이해하려면 언론이 국가 및 시대별로 초기 태동된 형태와 그 근본인 활자시대부터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한국사회는 과거 중앙정보부와 국정원, 경찰, 검찰, 언론, 학자들이 이러한 정보의 왜곡을 통해서도 권력이 유지될 수 있기에 권력자들은 정보기관을 중심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이슈를 돌리거나 왜곡된 판결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은 사건과 그 배경을 보면 정치적 반대파에게 메카시즘 선전선동과 빨갱이로 몰아 죽이면서 대중들이 본질을 알지 못하도록 언론조작을 했고 북한 역시 마찬가지로 체제 선전을 위한 도구로서 당기관지 등 획일화된 언론을 통한 대중 선전선동을 해왔다.

메카시즘,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

이러한 한국사회 언론 문제와 사법문제는 한국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과거 서구 전체주의 사회가 시작되면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미래에 대한 예측은 1948년 만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잘 나타나 있다. 소설이 발행된 시기는  이미 독일 유럽 등 전체주의 국가 시대로서 이러한 전체주의 사회가 발전된 기술을 만나서 더욱 강한 통제사회가 되는 것을 가정으로 써졌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그런 전체주의를 계승하는 정권 속에서 영화 속 실제 현실 속에서도 경험하며 겪어왔고 지금은 그런 현실을 변화시키고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



산업의 글자에서 민주의 글자로


세종대왕의 애민 사상이 담겨있는 한글은 조선시대를 넘어 패망한 식민지 조선에서 한글학자인 헐버트 선교사와 주시경 선생에 의해 체계화되고 근대 한글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때 조선어학회 사건 등 일본 제국주의 권력으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지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이후 신흥공업국가로 진입하던 시절 남과 북 두 정권 시대에 활성화되었다.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탄압받던 한글을 더욱 활성화된 이유는 산업화와 전체주의 정권의 필요성에 의해서이기도 했다.  60~70년대 당시 북한에 비해 산업화가 뒤늦은 남한사회에서 한글은 근대국가 산업 노동력을 가장 빠른 시간에 공급할 수 있기에 이 시기 남과 북 권력자들은 모두 한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산업 인력의 확보를 통한 경제성장이 남과 북 전체주의 정권의 기반이 되었기에 한글을 통한 문맹률을 낮추는 것은 체제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증거로 과거 박정희 정권 시대 여전히 기득권층은 한자문화 중심으로 기득권 유지를 하려는 관성이 있었음에도 정작 박정희는 한글을 전용을 지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25일하오『1970년 1월 1일부터 행정·입법·사법 3부의 모든 문서뿐 아니라 민원서류도 한글을 전용케 하고 국내에서 한자가 든 민원 및 모든 공용서류는 접수치 않을 것이며 이날부터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애도록 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출처: 중앙일보] 각급 학교 교과서 한글전용 박 대통령 지시 70년부터 공문·민원서류도 한글전용 기사


지금도 광화문에서 한글문화운동을 하시는 이대로 선생님은 진보, 보수 인사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한글운동가로서 과거 박정희 시대 학생대표로서 한글전용을 위해 제안했던 이야기와 이를 받아들였던 당시 분위기를 생생히 기억해 내셨다. 그 시기에는 한글 확산은 산업생산 확대 목적이었고 산업화를 이루는데 기여했다.


또한, 이대로 선생님은 김근태 의원, 노회찬 의원과 같은 분들과도 한글운동을 확산하는데 협력해 왔는데 보다 현실적인 영역(예를 들어 어려운 용어가 있는 헌법 등을 쉬운 말 헌법으로 개편, 국회의원 뱃지 한글화, 국회의원 한글명패 사용 등 )에서 많은 대중들이 정보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한글 운동을 했다. 이처럼 민주 진보 정치인들이 한글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쉽게 이해하는 한글 문해력은 대중들이 기울어진 언론의 프로파간다에도 올바른 정치적 관점과 비판할수 있는 힘을 가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기에 기술적으로도 공병우 선생은 한글 타자기를 만들어서 한글 확산과 함께 한글운동에 힘을 썼다.

한글타자기 보급은 한글 기계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하게 이끌었고 이후에 한글 전산화에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공병우 타자기 신문광고


한글이 확산되는 시절 전문가가 되기 쉬웠던 이유는 외국을 따라기기 급급한 시대이기에 외국서적 특히, 일본 책을 번역하여 한글로 책을 만들거나 혹은 번역이 어려운 경우 일본식 한자는 그대로 남겨 놓고 출간하여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과거 내가 다니던 대학교 교수님 중 꽤나 연세가 많은 분으로 일제강점기를 경험했을 세대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교수님은 자신 이름으로 된 전자기학 책으로 수업을 했는데, 사실은 일본식 한자가 군데군데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 책을 번역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그 책의 원저는 일본이 아닌 미국의 원서를 일본어로 번역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국 지식사회는 새로운 지식을 체계화하기보다는 지식을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기에도 벅찬시대였다.


사회적으로 한글 전용이 산업화를 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힘겹게 산업인력들이 키워지고 있었고 산업현장 최전선의 노동자들은 글을 읽고, 문화계에서는 대중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유럽 사회는 68 혁명을 통해 평등을 부르짖는 대학생들이 있을 때 한국사회 대학생들 조차 침묵할 시점이었다. 이시절 평화시장 노동자로서 전태일이 특별한 이유는 스스로 노동자로서 권리를 자각하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노동법에 적혀있는 권리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조직화했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벽에 부딪혀서 마지막으로 남은 자신을 불살라 노동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그가 생전에 만들어 놓은 사업계획서는 공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혁신적인 사업계획서였다.

그는 강도 높은 노동으로 혹사되어 죽어가는 어린 직공들을 위한 사업체를 만들어 보려고 했던 것을 보면 그는 최선을 다해 노동환경을 개선하려 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정권차원에서도 산업화를 가속하는 촉진제로서 한글 보급은 교육과 통치시스템을 강화시켜왔지만 역설적으로 노동자 스스로 각성하게 하였고 그 시대를 대표로 하는 대중음악, 소설 등 그 시대의 문화 또한 싹트게 했.




식민지에서 탄생된 전체주의 선전도구


올해는 조선, 동아가 100 주년 된 해이다. 이들 신문들은 식민지 시대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 조선의 여론 감시와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한글신문을 만들었다.

이들은 이시절 부터 친일 지식인을 형성하여 여론을 움직이고 일본과 조선의 내선일체를 통해 독립의지를 꺽는일을 해왔다.


이당시 동아일보의 일부기자들에 의한 일장기 말소사건이 일어나자 김성수 사장은 몰지각한 행위라고 하고 무려 13명을 모두 해고 했다. 또한 방응모는 수차례 강연에서 일제의 침략전쟁이 평화를 위한 활동이라고 왜곡·미화하는 글을 남겼다.  또한, 여성 지식인이라는 김활한(이화여대 초대총장)은 매일신보에 정신대 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글을 수백 편 쓰는가 하면 내선일체 찬양글도 엄청 많이 썼다. 이시대 신문은 친일권력을 추종하는 지식인 양성 매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 신문은 해방 후에도 친일정권이 들어서면서 과거 친일 인사들과 함께 친일 정권을 위한 국민여론 감시와 형성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특히 대부분 한국사회 지식인 집단은 조선, 동아와 같은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한국사회 주류 지식권력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 동아는 일본 제국주의 기관지였다.


최근 이들 신문이 마치 공정한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정파적이라는 것이 증명된 사건이 있다.

얼마 전 선거가 있기 얼마 전 채널A 이동재 기자는 여권 지지자들의 분열을 만들 목적으로 유시민 작가에게 불리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검찰 피고인을 취재 협박을 하면서 검사과 유착된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것이 한국의 권력 간 서로 공생관계를 증명하는 녹취록 증거를 통해 드러났다. 채널A 이동재 기자를 통해 채널A와 같은 종편이 매우 정파적인 언론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어떤 면에서는 과거나 현재나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하면서 일본 군국주의 전쟁에 청년들을 몰았던 신문 사설과 함께 해방 후 독재자들에게 칭송을 보내고 시민들에게는 본질을 왜곡시키는 표현을 하던 수많은 과거의 사건들은 것은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의 미디어가 대중을 선동하는 방식과 닮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속 선전도구에 의해 사람들의 의식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1등 언론의 프로파간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조정해 왔고, 정치적 영향력도 매우 크기에 밤의 대통령이라는 별칭도 있을 정도다.


박근혜 정권의 비서실 장인 김기춘의 메모 속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 라면의 상식화 는 이러한 선동을 하는 집권층의 전체주의 의식세계를 엿볼 수 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메모


이러한 의식세계는 오웰리언(OWELIAN) 사회라고 불리는 조지 오웰의 소설 속 전체주의 사회와 맥이 닫는다.

조지 오웰이 소설을 쓰던 1940년대 전체주의 사회 시대였고 그 시절 전체주의의 주요한 특징을 잘 이해했고 그것을 소설 속에 담았다.


1984라는 소설 속에서 빅브라더는 사람들에게 전쟁은 평화라고 하고, 자유는 구속,  무지는 힘(War is Peace. Freedom is Slavery. Ignorance is Strength.)이라고 반어법적인 용어로 선동하면서 진실을 호도한다.

우리도 과거에 보수정권이 이야기한 경제 민주화한다고 했지만 기업중심으로 혜택을 주고, 보다 과거에는 민정당(민주정의당)은 광주에서 학살을 통해 정권을 획득해왔던 정의가 없는 당이었다.

 

한국의 보수정권과 정보기관, 언론은 빅 브라더식의 정권 숭배와, 빨갱이, 종북이라는 용어로 자신의 정권과 반대되는 움직임을 차단해왔다. 이들 용어로써 상대를 지목하는 언어적 선동에 의해 실체를 이해하기 전 심리적 중압감에 합리적 판단과 토론을 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이러한 체제 속 나타나는 불만에 대하여는 소설 1984의 오세아니아의 반역자로 알려진 '골드스타인'과 적국에 저주를 퍼붓는 '2분 증오'로 체제불만을 해소한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도 TV조선과 같은 방송에서는 북한 관련 증오를 담은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이러한 프로에는 북한에서 온 탈북자들이 많이 참여한다. 시청자들은 북에서 탈북한 사람들의 말이기에 신뢰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적으로 탈북한 사람들이 하나원을 거처 남한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북한 체제에 대한 문제점등 선명성을 강조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심리가 존재하게 된다.


과거에도 이승만 정권 시절 북한에서 내려온 기독교 청년들이 있었고, 특히, 이념적인 갈등이 심한 시절 이들은 보수의 전사로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남한 내에서 이승만에 정치적 반대가 되는 제주도민들에 대해 많은 잔인한 학살을 저지렀다. 이것이 제주 4.3 및 보도연맹 사건으로 그들 조차 선명성을 보여주어야 생존하기에 저지른 비극일지 모른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심리를 볼 수 있는 사건들이 있다 보수정치세력은 두 명의 탈북자 국회의원을 만들었고, 이번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확실히 죽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TV조선, 채널A 등 에서 많은 인터뷰 보도를 했지만 거짓 뉴스임이 드러났다.


기술에 의해 소통의 방식이 변화되고 있지만, 전통적 매체의 속성은 쉽게 변화되지 않고 있다.

조선, 동아와 같은 활자 정보시대 매체는 일방향성 매체로서 조선의 청년들에게 일본 제국주의 전장에 나가도록 부추겼고 일제시대부터 전체주의 국가 시대를 지나 현재까지 존재하다 보니 여전히 전체주의 권력 친화적인 모습, 친일본적인 모습과 일반 대중을 마치 전체주의 식민으로 보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부터 이어온 활자 권력이 여전히 힘을 가지는 이유는 역사적 단죄를 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독일 나치에 침략된 역사를 겪었던 프랑스의 경우는 나치에 부역한 언론인에 대한 처벌과 함께 언론사를 문 닫아 버렸다.


지금 한국사회의 언론 문제는 기술 발달로 인해 다양한 자발적 미디어 매체 형성과 언론을 파악하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여전히 전체주의 시대에 머물고 있는 주류 언론의 생존 방식의 충돌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시민들은 과거처럼 언론에 의해 순진하게 선동되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과거 전체주의사회로 다시 돌아가지 않게하기 위해 어린학생들 교육과정부터 저항하고, 분노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킨다고 한다.

한국사회의 언론환경은 여전히 전체주의 언론형태로 남아있기에 우리는 저항하고 분노하고 약자들에게 공감을 통해 전체주의시스템의 남은 잔재를 청산할 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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