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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나무 Feb 25. 2022

구조에 대한 각성 2019

한국사회 사회구조문제에 눈을 뜬 2019년 검찰개혁 촛불집회

한, 중, 일 민주주의


대한민국은 한, 중, 일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성과를 이룬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 민주주의가 이식된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구조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대중들(People)이 사회를 이끌어가려는 의지가 한, 중, 일 3 국가 중 가장 높다. 이러한 배경으로 우리 민족의 기질이라고 밖에는 설명 안 되는 오랜 역사 동안 민중들의 끊임없는 피의 항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시절 많은 농민군, 승병 등 다양한 의병의 등장과 항쟁은 봉건주의 형태로 영주만 바뀌면 대중들은 모두 따라가던 왜병들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홍길동전, 임꺽정 등 부패한 권력에 대해 응징하는 의로운 도둑들은 우리 민중들의 기질을 설명해주고 있고 현재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남아있다.

그에 비해 다양한 소수민족 국가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중국의 경우 인민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공산주의 전체주의를 통해서 통제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는 명치유신 이후 변동이 없는 군국주의 정치세력과 사무라이 시대부터 길들여진 일본 국민들은 사회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 진화 모델로서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볼 때 일종의 진화 현상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유럽 사회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비록 기존 인디언들의 땅이었지만 새로운 땅 아메리카를 약탈하면서 그들은 새로운 기회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세계의 정치체계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1760년대부터 유럽 사회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류는 대항해 시대를 맞이하며 인류의 행동 범위가 넓어졌고 막대한 자본 축적한 계층중심으로 정치제도 변화 역시 나타났다.


인류의 큰 정치적 진보는 공화정으로 왕이 없는 정치체계를 만들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1789년 4월 조지 워싱턴이 대륙군총사령관으로 등장했고, 프랑스는 1789년 5월 5일 프랑스혁명을 시작으로 왕을 몰아내고 선출직 시민대표가 왕을 대신하는 공화제로 변화가 시작되었다.


즉 새로운 시대로서 변화는 기존 체계의 붕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22년 우리는 인공지능 및 항성 간 우주시대를 눈앞에 둔 새로운 기술혁명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마치 1789년대 유럽 사회 변화처럼 새로운 정치 시스템과 구조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지 모른다.

수많은 역사의 반동을 인류 역사에서 봐왔고, 비록 기득권의 반동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역사적 전진을 막지 못한다.



전체주의 시대


이후 세계는 수많은 공화제라는 정치 체제를 택한 국가들이 늘어나지만 이와 별개로 그 당시 존재하던 공화정 국가, 왕정국가, 공산주의 국가 등 다양한 형태의 국가들이 모두가 공통된 전체주의 국가로 변화한다.

이렇게 된 원인은 그 당시 모든 국가는 식민지 영토확장을 위한 제국주의, 군사력으로 침략을 목적으로 하는 군국주의 국가들의 관점에서 힘을 통한 국가통합이 중요한 시대였다.

따라서 이러한 군국주의 국가는 대부분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주의와 개인을 희생하고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이념을 강조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의 국가 이념 체계를 전체주의라고 한다.


흔희들 착각하는 것이 한국사회와 같은 민주주의 국가는 전체주의를 해본 적이 없고, 북한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만이 전체주의 국가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본질은 한국사회도 산업화 시기였던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정권 시절은 전체주의 국가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현상은 미국, 유럽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우리가 역사상에서 배워온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 무솔리니, 일본 제국주의 국가 등에서 그런 전체주의 국가의 특성을 보여준다.




유럽 사회 각성과 68 혁명


유럽의 전체주의 국가시대에 많은 지식인들이 고민한 지점은 어디였을까?

그 시대를 대표로 하는 소설가로 조지 오웰을 들수 있다. 이 시대 정치 풍자 소설인 동물농장과 함께 1984는 전체주의 시대의 정치 시스템을 풍자하기도 했지만 기술이 더욱 발전된 시대에 얼마나 무서운 통제가 될 것 인가 걱정했던 것 같다. 1984 소설 속 빅브라더는 대중의 인식을 지배하는 텔레스크린이라는 오늘날 포털과 같은 미디어와 함께 대중을 탄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비밀경찰로 인한 대중 지배를 소설 속에 표현했다.


그가 쓴 소설을 보면 지금 우리 현실과 놀랄 만큼 닮아 있다.

다음은 소설 속 어떤 장면이다. 빅브라더는 대중들에게 거대한 텔레스크린을 통해 체제의 반대자에 대한 증오를 부축 인다. 대중들은 자신들이 분노하는 원인도 모른 채 습관적인 분노를 한다.

 오늘날 미디어 횡포와 닮아있는 조지오웰 소설 "1984"의 장면

 이러한 장면은 애플 광고에서 눈이 풀린 채 않아 있는 대중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주입하는 빅브라더에게 애플 전사가 쇠망치를 던지는 장면이 있다.  
https://youtu.be/2zfqw8nhUwA


사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한때 히피족으로 68 혁명의 영향을 받은 기업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전체주의적 사고관을 반대하는 세대라는 것을 알수 있다.


이러한 장면이 상징하는 것처럼 전체주의 시대는 대중들에 대한 선전선동을 위한 미디어와 자유를 통제하는 사법권력이 주요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생각하지 않는 대중을 만들기 위한 전체주의 교육방식이 작동한다.


유럽 사회는 이러한 집단주의 체계에 대한 비판의식이 1968년부터 나타나면서 들불처럼 번지게 되었다.


이때 나온 것이 차별받지 않을 평등, 여성해방, 인권과 공동체주의, 생태주의와 같은 진보적인 가치들이 사회의 주된 가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때 프랑스는 대학교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오늘날 이야기하는 파리 1,2,3.. 등 대학 이름조차 평등을 위한 구조를 만들었다.  또한, 대학입시시험을 없애고 무상등록금 등과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전체주의 교육구조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명박 정권 시절 좀 더 강화되었다. 이에 대한 사회 고발 소설이 조정래 소설가의 "풀꽃도 꽃이다"가 있다.


한국사회가 매우 역동적인 사회로서 경제와 정치적 변화가 있어왔다. 특히, 민주화운동을 통한 정권교체를  통해서 IMF와 같은 국가적 파탄을 이겨내고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왔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시민들의 힘은 한국사회발전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


그동안 나를 포함한 대중들은 구조에서 나오는 권력문제가 아닌 정치적 수권정당의 도덕성과 정치적 문제에 집중했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있던 2017년까지만 해도 한국사회는 민주냐 독재정권, 무능함에 대한 심판이었다. 즉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싸움이었다고 한다면 과거 유럽 사회에 불어닦친 68 혁명과 같은 구조에 대한 물음이 없었다.


그러나 2019년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집회를 계기로 한국사회는 구조에 대한 첫 번째 물음을 던졌다.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집회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전 2019년 검찰개혁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와 관련으로 검찰총장 출신 대권후보로 나온 윤석열 후보는 얼마 전 2019년 검찰개혁 촛불집회에 대하여 '불법 집회', '사법처리 대상'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날 많은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http://newstapa.org/article/nbaqD


문제는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그는 검찰의 입장에서 개혁의 촛불이 달갑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더욱더 그런 개혁 목소리에 대하여는 단속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상 수많은 시민들의 피 흘림이 있어 왔지만 2019년 검찰 개혁 촛불집회는 시민들이 구조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혁을 위한 목소리였다. 사실 과거에는 군에 의한 폭력 또는 국정농단 등 분명히 눈이 보이는 권력의 탄압이었지만 검찰 권력이 행하는 선택적 기소와 봐주기 수사와 같은 권력남용에 대하여는 대중들은 특히 언론 등에서 다루지 않는 다면 현실로 직감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계기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먼지 털이식 수사에서 촉발되었다.

대중들은 표창장 위조라는 프레임을 무리하게 조장하는 검찰과 언론, 그리고 평론가로 불리어지는 지식인 집단의 매우 편향적 모습에서 나타났다. 또한, 미디어의 어머어마한 보도량을 통해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하기도 했던 많은 사람들은 검찰개혁 서초동 촛불집회에 나오게 되었고 또 다른 다수는 검찰의 주장을 잘 받아 주는 언론의 이미지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당시 언론의 주장과 달리 조국 전 장관의 검찰개혁 의지는 검찰 기득권과 결탁된 언론에 의해 왜곡되었고 조국 전 장관 가족은 여전히 말도 안 되는 형을 확정받고, 딸의 경우도 병원에 취업이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많은 젊은이들과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의 젊은이들 조차 검찰과 언론이 만들어준 분노 지점에 분노하여 정의로운 검찰로 인식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 이면 속에 있는 검찰 집단이 왜 조국 가족에 대해 모질게 했는지는 구조에 대하여는 알지 못했다. 아마도 기득권 구조의 문제를 몸으로 오랜 세월 체험해온 세대와 미디어와 커뮤니티, 그리고 여전히 경쟁위주 교육을 통해 현시대를 받아들인 세대와의 인식 차이일 것이다.


이 부분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심지어 실제 대통령 후보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 씨의 음성에서 확인된 것처럼 조국이 검찰개혁 등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면 가족까지 건드리며 모질게 할 생각은 없었다는 취지 발언이 녹취록에서도 확인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서초동 법원 앞에 모였고 거대한 촛불 시위가 열렸다. 검찰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그전에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시위는 오히려 검찰과 언론 기득권이 단합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해외언론에서는 한국 방역에 대하여 칭송하지만, 한국 언론은 우리 방역이 문제 있는 것처럼 보도하거나, 일본이 앞선 방역을 하고 있다고 언론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확산등으로 우리사회는 생각보다 개혁의 움직임은 빠르지 못했다.

현재까지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로 인한 혼동기에 더 이상 대중들은 집단 집회를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극우집회와 종교집회는 벌어졌다. 그러나 민주진영 시민들은 코로나로 인해 자중하는 분위기 때문인지 검찰에 대한 개혁 목소리는 잦아들어 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중들은 코로나로 인해 뜻밖의 엘리트 집단 문제를 보게 되었다.


엘리트 집단의 인식을 확인하게 된 대표적인 사건이 의사들의 집단 파업 상황이었다.

코로나 및 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라 공공의료영역을 확대하려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시위에서 나온 문구들을 보면서 시민들은 한국사회 엘리트 집단의 인식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게 되었다.


삐뚤어진 엘리트주의 사고관에 빠진 의사 집단


이러한 문제는 구조로 형성된 엘리트 권력을 인정해 오던 한국사회의 병패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어쩌면 생각보다 오래된 한국사회 관념일 수도  있었다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합격한 사람이 관직을 얻던 조선시대의 관념에서 확장된 개념일 수도 있다.


또한 언론에도 나왔지만 검찰총장 추린 대권 후보는 검찰개혁을 하려는 현정권에 대하여 "임기 5년짜리가 건방지게 겁이 없다"는 표현으로 검찰 권력은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성역처럼 이야기했다.

즉 그들 스스로 동질성을 만들어온 사법, 언론, 교육 의료계의 교체할 수 없는 권력집단은 엘리트 의식으로 선민의식을 가지고 선출 권력의 무시하며 개혁 움직임을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 스스로 철옹성 같은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기에 세상의 변화와 상관없이 어떤 면에서는 세상 변화를 감지 못하는 무능한 엘리트 집단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능한 검찰을 띄워주고 대권후보에 나서게 만든 것은 사실상 언론의 힘이다.

한국 언론사의 카르텔은 기업광고로 먹고살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 자본의 손발 역할을 한다. 언제나 자본과 검찰, 언론이 원하는 것은   가지다. 생각하지 않고 자본과 기득권  잘듣는 선출권력을 원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무능해도 언론은 지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을 통한 선거운동을 해주고 있기에 대중들은 현혹되기 쉽다. 이러한 현상이 현재 전쟁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에서도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코미디언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었지만, 아무런 경험도 전략도 없고 위험한 발언과 외교적 무지에 의해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며 러시아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무능한 배우가 대통령이 되고 방송인들에 의한 내각이 구성된 배경은 우크라이나의 유대계 금융재벌인 이호르 콜로모 이스키(Ігор Валерійович Коломойський)에 의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인다.


한국사회도 유사하게 자본이 언론과 함께 지속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근본적 이유는 한국사회가 식민지였고 과거 식민지 권력이 청산되지 않고 친일 자본과 친일 엘리트층이 사회근간을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는 과거 100년 전 일본 제국주의는 3.1 혁명에 의한 식민지 조선인들의 투쟁을 마주하게 되었고,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한문 신문인 조선, 동아를 만들고 식민지 지식인들을 통해 조선 민중들을 여론을 호도하기 시작했던 것이 현재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그들의 영향력은 종편을 가지게 되어 더욱 커졌고, 교육 또한 차별과 계급화를 시켜왔고 작은 기회를 쟁탈하는 구조로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중들의 시각은 지속적으로 왜곡되어 왔다.


하지만, 변화의 시작은 현재의 구조를 알고 변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 부터 시작한다.

청년들이여 대중들이여 누군가 만든 구조에서 벗어나서 누군가 만든 갈등의 고리를 끊어내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라.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구조를 만든 주체와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글을 쓰는 2022년 2월 25일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시기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어떤 세상이 될지 알수 없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오늘을 진단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마치 조지 오웰 소설 1984에서 언급된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과 닮아있다.

왜냐하면 언론과 검찰과 같은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사회구조에서 기득권의 모습은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통해 현재 나타나고 있는 많은 기득권자들의 행태를 분석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사회 언론 및 지식인 집단은 이러한 소설과 연구가 진행된 거의 100년 전 서구사회 지식인 그룹이 논의하는 주제 만큼도 고민하지 않고있다. 반면 한국사회 시민들은 스스로 구조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다. 시민사회는 검찰, 언론과 같은 비선출 권력 존재에 대해 인식을 하고 비선출 권력에 대한 감시자로서 시민 참여권 확대를 위한 구조를 요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빅인빈부익부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에 대해 분배정의를 위한 구조에 대해서도 논의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결국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이 민주주의라는 엔진을 돌리며 미래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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