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칼리의 하루

무지개가 뜨는 곳

by 우주 작가


“칼리! 어서 나와봐!”


이른 아침부터 파이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잠을 청하고 있던 나는 파이쿠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더 잠을 자고 싶었다.


“칼리!!!!!!!”


하지만 너무 시끄러웠다. 무시하기엔 파이쿠의 목청이 너무 컸다. 엄마와 아빠도 나에게 어서 파이쿠를 데리고 나가라고 눈치를 주고 있었다.


하아.. 더 자고 싶은데…


“무슨 일인데?’


문을 열고 하품을 하며 파이쿠를 맞이했다.



“칼리!! 내가 찾아냈어!! 그거!!!”


파이쿠가 흥분해서 뭐라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암~뭘 알아냈다는 거야?”


“오늘 공주님 생일 말이야! 내가 가까운 데서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냈어!”


파이쿠가 흥분해서 말하자 그제야 나도 눈이 커졌다.


“진짜? 어디로 가면 되는 건데? 아니다 잠깐만!!”


나는 문을 닫고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킬리, 오늘은 공주님 생일이니깐 괜히 쓸데없이 돌아다니면 안 된다. 늦기 전에 꼭 들어와야 해”


엄마가 잔소리를 했지만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 늦지 않게 오겠다고 말하며 파이쿠를 만나러 갔다.



“어딘데? 어딘데?”


“황궁 근처에 큰 시계탑이 있잖아? 거기로 가면 된다고 하더라고”


“하더라고? 누가 그런 말 했는데?”


어딘가 파이쿠의 말이 미심쩍었다.


“지쿠 있잖아? 내가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는 녀석이야. 걔네 아버지가 말해줬데. 공주님의 생일잔치를 하는 곳이 살짝 보이는 곳이 시계탑이라고 하더라고”


“결국 확실하게 보는 것은 아니네.. 에휴…”


나는 파이쿠의 말에 실망하며 말했다.


“그..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이게 어디야? 황궁으로 직접 들어갈 수도 없고 이게 최선이지 뭐…”


“그래 좋아! 공주님의 생일이라니 공주님은 또 얼마나 예쁠까?”


나는 그래도 공주님의 생일잔치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시계탑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칼리! 같이 가!!!”


파이쿠도 뛰기 시작했다.


시계탑은 우리 집에서 꽤나 먼 곳에 있었다. 덕분에 공주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는 성 안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나이 어린 공주님의 생일이 있는 날이었다. 해마다 황족의 생일이 있는 날이 되면 황궁뿐만 아니라 성 안 마을도 분주해졌다. 특히 나중에 황위에 오를 황족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미래의 황제가 무사히 자라는 모습을 반기기 위한 목적도 강했다.

실제 행사는 황궁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 같은 신분은 황족의 행사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대신 황제께서 내려주시는 맛있는 음식들이 있었고 이날 하루만큼은 서로 즐겁게 놀 수 있는 일종의 축제 같은 날이었다. 1년에 딱 4번 이런 날이 있는데 황제의 생일, 황태자의 생일, 황손의 생일, 그리고 공주님의 생일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황제께서 장수하셔서 증손녀인 공주님의 생일까지 챙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오늘은 공주님의 12번째 생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황궁의 생일을 직접 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같은 계층이 직접 볼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오늘 파이쿠가 찾아와서 시계탑에서 성 안을 살짝 볼 수 있다고 하니 오늘 내 평생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계탑… 진짜 멀다…”


어느새 지친 나는 저 멀리서 기어 오고 있는 파이쿠를 보며 말했다.


“…하…하…처..천히 좀 가…”


“어.. 얼마나 더 가야 해?”


“여기서 …. 방… 금 달린… 만큼 더……. 달… 리면….”


파이쿠가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파이쿠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뛰어가기 시작했다.


“키. 칼리…같……ㅇㅣ…”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이제 드디어 시계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누군가가 보인다.


“어이~~~ 여기야!!”


손을 흔드는 누군가가 보인다.


조금 더 달린 나는 시계탑 앞에서 쓰러졌다.


“네가 칼리구나? 난 지쿠야”


지쿠가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 녀석이 지쿠구나…


“그래, 반… 가워… 넌 언제부터 여기 있던 거야?”


“어? 파이쿠가 말 안 했나? 그러고 보니 파이쿠는 안 오나 보네? 난 이 근처에서 살아서 아침에 일찍 왔지.”


“아? 그….래? 파이… 쿠는…오… 고 있어…”


나는 숨을 고르면서 지쿠에게 말했다. 그때 지쿠는 다시 어딘가를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파이쿠가 오고 있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파이쿠는 곧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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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야? 이게 지금 보이는 게 다야?”


시계탑 위로 올라온 나는 정말 콩알만큼 보이는 황궁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그래도 여기가 제일 잘 보일 거야. 망원경으로 보면 그래도 조금은 더 보여. 이걸로 봐봐”


지쿠는 나에게 조그만 망원경을 건네며 말했다.


망원경을 들고 성을 관찰했다. 아주 약간이지만 더 잘 보이긴 했지만… 이대로는 축제를 잘 볼 수는 없었다.


“너무 잘 보이면 황궁에서는 오히려 걱정되겠지…이로서 공주님도 안전한 게 증명되었군.”


지쿠는 실망한 나를 보며 말했다.


“칼리, 여기서 조금 쉬다가 마을로 돌아가자. 축제를 즐겨야지!”


파이쿠가 말했고 나는 잠시 파이쿠를 째려봤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한숨을 크게 쉬고 주저앉았다.


황족을 보는 게 그리 쉽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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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에서 내려온 우리는 시계탑 근처에 있는 거대한 나무 밑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엄마가 태어나기도 전, 할머니가 태어나기도 전, 그 위의 모든 할머니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던 나무였다. 황궁 근처에서 황궁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나무였다. 가끔 우리처럼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고마운 나무였다.


“앗.. 차가워!”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감기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나무 밑으로 누군가가 찾아왔다. 우리처럼 비를 피해 들어온 것 같았다.


작은 체구의 여자 아이였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고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살며시 보이는 모습에서는 기품이 묻어 나왔다.


비를 피하고 한참을 하늘만 보던 소녀는 우리의 존재를 뒤늦게 눈치채고 고개를 돌리더니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누..누구세요?”


“아… 나는 지쿠야!”


“나는 파이쿠!”


“저는. 아니 나는 칼리라고 해”


소녀는 우리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안 하고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다.


서로 간의 침묵이 길어지자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아.. 미안해요. 인사를 해야 하는 거죠… 안녕하세요. 저는 네스카라고 해요.”


소녀는 공손하게 우리를 향해 인사를 했다. 얼떨결에 우리도 공손하게 다시 네스카에게 인사를 했다.


“네스카? 공주님 이름이랑 똑같은……어??????”


지쿠가 네스카의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다는 표정으로 생각하다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나자빠졌다.


“고.. 공주님??”


나도 크게 놀라 입을 막으며 네스크를 쳐다봤다.


“네. 저는 네스카 공주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네스카는 다시 우리를 향해 인사를 했고 우리들은 네스카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엎어져서 다시 인사를 했다.


“공주님! 저희가 죄송합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일어나세요.”


네스카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공주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만나 뵐 수 있게 되다니… 내 꿈이 이루어진 정도가 아니었다. 나는 기뻐서 웃어야 할지 눈물을 흘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저.. 공주님. 오늘 생일이신데 이렇게 밖에 나와계시면 찾지 않을까요?”


네스카는 잠시 비가 오는 모습을 보더니 이내 나를 쳐다보며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10살 언저리 꼬마 아이의 모습이었다.


“밖이 궁금해서요. 그냥 나왔는데 칼리와 지쿠, 파이쿠를 볼 수 있어서 좋네요!”


네스카는 비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가끔 이렇게 나올 때가 있어요. 나와서 나무 밑에서 잠도 자고, 위장해서 마을도 돌아다니고 그러고 있어요. 궁 안은 너무 답답해요. 혹시 오늘 나랑 놀아주지 않을래요?”


네스카의 제안에 깜짝 놀랐지만 나는 네스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하루 네스카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했다.


물론 지쿠와 파이쿠는 공주와 함께 있는 것을 반대했지만 결국 그들도 같이 놀고 싶어 하는 네스카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잠시 후, 드디어 비가 그쳤다.


네스카는 마을로 가고 싶지만 그러면 들킬 수 있어 자기가 가끔 가는 뒷산으로 가자고 우리에게 제안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네스카는 달렸다.


자.. 잠깐 그만 달리고 싶다고…


네스카는 무척 빨랐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나 싶을 정도로 빨리 달려 나갔다.


한참을 뛰어간 곳은 황궁 뒤에 있는 작은 산이었다. 산은 그리 가파른 곳은 아니었다. 이름만 산이지 평지보다 약간 힘든 정도 지 오르기에 어려운 곳은 아니었다. 다만 네스카가 여기에서도 뛰어다녀서 문제지…


중간에 동굴이 있었는데 무서운 짐승들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곳이라 나와 지쿠는 벌벌 떨면서 조심스럽게 동굴을 건넜다. 파이쿠는 작은 막내기 하나 들고 누가 나오면 자신이 공주와 우리들을 지키겠다며 큰 소리를 쳤다. 물론 네스카는…여전히 뛰어다녔다. 겁이라는 게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다행히 동굴에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절벽이 있었는데 그 너머로 황궁 밖의 거대한 자연의 풍경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네스카는 절벽 앞에 서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공주님, 위험해요. 이리 안 쪽으로 오세요!”


나는 네스카가 걱정되어서 말했다.


그러자 네스카는 나를 쳐다보더니 손짓을 하며 어서 자기 쪽으로 오라고 말했다.


“비가 오는 날이 되면, 비가 그치면 항상 여기로 와요. 여기가 무지개가 정말 잘 보이는 곳이에요! 예쁘죠?”


네스카는 나를 보며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순수한 미소였다.


네스카의 말대로 아름다운 무지개가 저 너머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무지개라는 것을 처음 본 것도 같았다. 무지개가 뭔지는 알았지만 그리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내가 황제가 된데요. 그런데 궁 안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그래서 가끔 밖에 나와서 무지개 저 너머를 봐요. 저곳이 내가 언젠가 다스릴 언젠가 내가 보듬어줘야 하는 세계예요.”


12살짜리인 네스카였지만 지금 모습은 우리 중 그 누구보다 더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이 작은 아이는 지금 어떤 무게를 견디고 있는 것일까? 나는 무지개 너머와 네스카의 모습을 반복해서 쳐다봤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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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랑 놀아줘서 고마워요! “


산을 내려온 네스카는 이제 궁으로 갈 시간이라며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잠깐이지만 네스카를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언제 또 같이 놀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끔 저 나무로 갈게요. 공주님도 궁이 너무 심심하면 가끔 오시면 저희가 놀아드릴게요!”


나는 네스카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쿠는 나에게 너무 건방진 소리 하지 말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네스카는 정말 기뻐하며 나를 안아줬다.



“생일 축하드려요, 공주님!”


이제 정말 작별을 할 시간, 우리는 네스카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네스카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궁으로 향했다.



언젠가 공주님과 다시 만나 놀 수 있는 날이 오게 되기를 바라며


비가 오는 날에는 항상 수호신 나무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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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제 마을의 축제를 즐길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정말 나에게 특별한 날이 되었다.


밖에서는 공주님의 생일을 기념하여 불꽃놀이가 한참이었다.


불꽃이 터질 때, 소원을 빌면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었다.


나는 터지는 불꽃을 보며 공주님의 미래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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