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기억
주말을 맞아 모처럼만의 휴식을 즐기며 연우는 책을 읽고 있었다.
연우가 좋아하던 작가가 최근에 새로운 작품을 냈기 때문에 연우는 온전히 오늘은 책을 읽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연우가 읽는 책은 소설이었다. 예전에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었지만 어느 날 친구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책을 집었는데 그 책이 바로 연우가 평생 좋아하게 되는 작가의 책이었다. 연우는 그 자리에서 책을 다 읽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기 때문에 바로 계산대로 가 책을 구매했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그리고 씻고 잠이 들기 전까지 연우는 책을 놓을 수 없었다. 흡입력 있는 문장, 그리고 연우가 좋아하는 스타일, 무엇보다 작가의 글에서 느껴지는 묘한 위로가 연우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연우는 그 후에도 작가의 다른 책을 사서 읽었고 그제야 작가가 꽤나 주목받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자신도 좋아한다며 한참을 책과 작가의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모임 같은 것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작가의 책을 주제로 책 이야기를 한다는 말을 인터넷에서 보고 바로 신청해서 독서 모임에 간 적도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관점과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연우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연우는 단순히 책과 모임에 참석하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작가가 직접 참여하는 강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연우는 그곳을 찾아가서 작가의 평소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작가의 싸인까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연애를 하면서, 집안일, 그리고 여러 다른 일들이 생기면서 연우는 다시 책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작가가 책에 대한 이야기는 그거 과거의 저편으로 밀려나갔다. 그냥 좋아하는 책이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제야 연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며칠 전, 연우는 우연히 자신이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났던 서점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프라인 서점이 없어지는 시점이라 그런지 꽤나 큰 규모의 서점이었지만 다음 달이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있던 곳이었다.
연우는 옛 생각을 하며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신간 코너에서 예전에 자신이 좋아했던 작가의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는 연우의 방 한 구석에서 먼지만 남아있는, 옛 기억의 소설들이 연우의 머릿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연우는 잠시 서서 작가의 신작을 천천히 읽었다. 여전히 흡입력 있는 문장과 독특한 아이디어로 가득했다. 연우는 오랜만에 다시 책이 읽고 싶어졌다. 그날, 연우는 작가의 최근 책들과 몇몇 베스트셀러 책들을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연우의 삶에는 여유가 없었고 책들은 봉투에서 꺼내지도 않은 체, 집 안 어디선가 먼지만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다시 지난 후, 퇴근을 한 연우는 잊고 있던 책 뭉태기를 다시 보게 되었다. 연우는 한참 생각하다가 이번 주말에는 집에서 쉬면서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드디어 주말이 되었고 연우는 온전한 휴식을 즐기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문장은 여전히 연우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야기는 연우의 기억을 자극했다. 이번 작가의 이야기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였다. 꽤나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묘사하며 마을에서 겪었던 일을 담백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작가는 예전부터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담담한 글을 자주 썼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 재미있는 글은 아니었지만 독특한 문체와 작가의 감성 때문에 매니아 팬들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연우도 역시 그러했다. 오히려 자극적이기 않기 때문에 그의 글이 좋았다. 그리고 이번 작품 역시 그러했다. 연우는 오히려 그의 글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기도 했다. 이번 작품도 그러했다.
책이 술술 읽혀 어느새 책의 끝부분에 다다랐다. 책을 덮은 연우는 5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리고 5년 전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좋았던 일, 아쉬웠던 일, 슬펐던 일, 기뻤던 일….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떠올랐다. 묘하게 여운이 남는 오늘이었다.
연우는 책꽂이 꽂힌 예전 작가의 책을 다시 읽기로 했다. 새로 산 다른 책들을 읽어야 하지만 오늘 연우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책을 읽고 싶어졌다. 예전 책을 읽으려고 할 때 연우는 책 사이에 껴져 있던 작은 메모지를 발견했다. 5년 전, 연우가 책을 읽고 적은 소감이나 생각 등이 적힌 쪽지였다. 연우는 옛 생각에 웃으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다시 책을 읽을 거야’
오늘 연우는 자신의 삶 속에서 잊고 있던 보물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