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좋지 않은 하루
아침부터 속이 부글부글한 체 일어났다.
어제 먹은 밥이 탈이었던 것 같다.
배가 너무 아파서 연차를 쓸까 고민도 했지만 막상 출근할 시간이 되니 괜찮은 것 같았다.
배가 괜찮은 것 같으니 이번엔 배가 고파졌다. 뭐라도 먹을까 고민하던 석진은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과일 하나를 먹고 회사로 향했다.
하지만 괜찮은 것은 착각이었다. 아니지... 아침에 밖에 나와있던 과일을 먹은 게 화근이었을까?
지하철에서 배가 요동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만 들리는 소리 같지 않았다. 혹여나 옆의 사람들이 들을까 헛기침을 계속했다. 요즘 시국에 기침까지 하면서 아파하는 나를 본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는 것 같았다. 나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옆 칸으로 옮겼다.
'조금만, 20분만 더 가면 된다..'
중간에 내려 화장실을 갈까 생각도 했지만 20분이면 그래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출근 시간을 여유롭게 했기 때문에 어차피 중간에 멈춰도 괜찮았지만 그러기가 싫었다.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부터 머리에서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체감 상은 거의 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하지만 시계를 보니 겨우 3분이 지났을 뿐이다. 오늘따라 지하철이 너무 천천히 가는 것 같다. 분명 이거 천천히 가는 거 맞지? 시계가 반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이 타고 내리는 역에 도착했다. 아직 10분은 더 가야 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사람들은 내리지 않았고 그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이 나를 밀치기 시작했다. 앗... 잠시만요 저 조금 있다가 내려요. 막무가내로 타는 사람들 앞에서 어필하고 싶었지만 만원 지하철에서 나는 그저 전쟁터로 같이 끌려가는 포로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다 좋은데 배는 좀 치지 말라고......
만원 지하철이 되니 더욱 숨을 쉬기 어려워졌다. 식은땀이 계속해서 내렸다. 이젠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다. 그때 괄약근이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안돼.. 지금은 절대 안 돼...'
나는 고도로 집중하며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자꾸 다른 생각이 났다. 지금 배가 아파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사람들을 밀치고 내려서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공간 자체가 나지도 않았다.
'제발... 조금만 버텨줘....'
잠시 후, 천국의 문이 드디어 열렸다. 나는 수많은 인파와 함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하철에서 내렸다. 나는 다시 판단을 해야 했다.
'지하철 화장실을 갈까? 아니면 회사 화장실로 갈까?'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게 문 밖으로 나오니 아까 절실하던 마음은 바로 사라졌다. 갑자기 배 아픈 것이 사라졌고 나는 회사에서 여유롭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또 잘못된 선택을 해버렸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회사로 가는 길은 또 10분 정도가 걸렸다. 바람을 마시자 나의 배는 다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다시 위기가 시작되는 것 같다. 역세권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 오늘처럼 미운 적은 없었다. 나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역을 벗어나서는 평소보다 조금 빠른 걸음...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는 나는 이제 달려야 했다. 이제 진짜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속으로 평소에 기도도 안 하던 분들에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 모든 신들이여, 제발 나를 살려주세요 조금만 5분만 더 버티게 해 주세요'
속으로 뭔가를 계속 중얼중얼거리면서 나는 달렸다. 오히려 반복적인 진동으로 움직이니 장이 더 자극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남은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회사로 가야 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토록 증오하던 회사의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고 싶었다 회사야!!
회사가 있는 건물에 도착한 나는 1층 화장실을 이용할 기회가 있었지만 또 한 번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 하필이면 엘리베이터 중 하나가 점검 중이었다. 그 말인즉슨 하나의 엘리베이터를 모든 층 사람들이 써야 한다는 이야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미 엘리베이터는 2층을 출발해 저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2층에서 3층.. 3층에서 4층......
'이 엘리베이터는 모든 층에 다 서고 말 거야'
다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대리님! 안녕하세요!"
그때, 회사 사람들이 나를 향해 인사를 했다. 나는 가볍게 목만 까딱해 인사하고 엘리베이터의 층수만 주시하였다.
"이대리님, 어디 뛰어오셨나 봐요? 땀이 왜 이렇게 난데?"
옆 사람이 자꾸 나에게 말을 건다. 제발 지금은 그냥 넘어가 줘...
마침내 엘리베이터는 꼭대기 층에 멈췄다. 그리고 바로 1층으로 왔을까? 어림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한 사람 한 사람 태우며 1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만 체감 상 거의 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마침내 1층에 도착!! 한 줄 알았으나 엘리베이터는 지하로 가기 시작했다. 오늘이라는 놈은 오늘 나를 죽이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드디어 지하까지 방문한 엘리베이터가 다시 1층으로 돌아왔다. 나를 비롯해 회사 사람들, 그리고 다른 층 사람들도 엘리베이터를 탔다. 회사가 있는 곳은 11층.. 아직 난관이 너무도 많았다.
11층!
드디어 나는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에 도착한 나는 아침부터 나에게 말을 거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손을 밖으로 가는 척하며 화장실로 갔다.
드디어 나는 화장실에 도착했다.
너무도...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볼일을 마치고 핸드폰 시계를 쳐다봤다.
이제 아침 9시....
배가 아픈 게 겨우 괜찮아지니 이제 현실이 보인다.
몸은 괜찮아졌지만 너무나도 긴 월요일이 이제야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