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공허함을 채운다는 것
작년 봄, 한국에서 둘째와 병실에 함께 머물던 날이 있었어요. 짧은 입원이었지만, 마음 깊이 남은 만남이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잠시 잊고 지냈는데, 문득 그 소녀가 생각났어요. 지금도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며, 그날의 기억을 다시 꺼내 봅니다.
병실에서 만난 발레 소녀 이야기
둘째가 혈관종 치료를 위해 며칠간 입원했다. 큰 병은 아니었지만, 처음 겪는 입원이라 긴장된 마음으로 병실 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 경과는 좋아 퇴원을 앞두고 있던 날 아침, 병실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다.
조용하고 따뜻했던 교수님이 회진 중 갑자기 단호한 목소리로 한 소녀에게 이야기했다. “몸무게는 중요하지 않아. 너의 건강이 먼저야. 체중을 늘리는 게 치료의 핵심이야.” 소녀는 울며 “싫다”고 말했다.
그제야 전날 들었던 소녀와 엄마의 대화가 떠올랐다. 소녀는 본인이 얼마나 먹었는지를 자주 엄마에게 보고했고, 엄마는 늘 칭찬해줬다. 왜 그런 대화를 반복했을까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혼자만의 추측이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퇴원 준비를 하던 중, 그 소녀의 엄마가 다가와 짐 옮기는 걸 도와주셨다. 그리고 나눈 10분간의 짧은 대화 속에서 그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딸은 발레를 배우는 10대였고, 더 마르고 싶어 음식을 줄이다 쓰러져 입원한 것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내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나 역시 사춘기 시절 외모에 대한 집착으로 건강하지 않은 다이어트를 반복했고, 거식증과 폭식증을 겪었다. 정신과 상담도 받았지만 차도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결혼해 아이를 낳으며 사랑과 책임이 생기자, 조금씩 폭식이 줄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공허한 마음이 사랑으로 채워지며 병도 서서히 나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딸에게 지금 필요한 건 단순한 치료보다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라고 믿는다. 부모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병의 회복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렵겠지만, 분명히 가능하실 거라고 전해드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