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月동
작성자_선
봉천동부터 시작한 이번 답사.
어렸을 때의 기억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많고,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라는 느낌이 강했던 곳이다. 하지만 막상 답사를 시작하며 오르니 세월을 느꼈다. 강산도 두 번은 변할 시간이 흘렀고, 옹기종기 구겨넣은 듯 자잘한 건물들은 다 무너지고 그 자리엔 신축 빌라와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대학 신입생 때 서로 탐색을 시도할 때 자주 나오는 질문이 어디 출신이냐는 것이었다. 대개 지방에서 온 아이들은 동향을 만나는게 아니라면 출신 도시 정도나 밝히고 끝나지만, 서울 출신 아이들에게는 구와 동을 정확히 묻는 일이 흔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봉천동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가 가지고 있는 이름 자체에 어떤 차별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봉천과 신림을 일종의 가난한 동네의 상징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차례의 경험 끝에 나는 '서울대입구 근처에 살아요.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갔어야 했는데.' 정도로 너스레를 떨며 넘어갈 수 있게되었다. 하지만 그 때 처음으로 출신지에 대한 것이 단순히 대화 소재 찾기, 혹은 더 나아가서 파벌 만들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분위기와 지금의 분위기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도림천 주변은 쾌적하게 정리되어 있고 어마어마한 수의 아파트와 빌라가 자리잡고 있다. 지방에서 상경하여 신림 주변에서 살다가 점차 재산을 불려 집을 키워나갔다는 내 주변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다. 거기다 이제 경전철까지 들어온다하니, 비유하자면 한창 몸집을 부풀리고 있는 사춘기 청소년기와 같은 동네가 되어버렸다.
도시의 죽음도 재생도 무언가 씁쓸한 뒷맛을 남겼는데, 도시의 성장 혹은 환골탈태는 어떤가. 행정동 명조차 자잘하게 나누어 옛 이름의 흔적을 없앤 상황 속에서 이 곳이 한때는 달동네였다는 것은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가 되어버릴 것이다. 어릴 적 봉천동이 하늘에 가깝게 높아 하늘(천)을 섬기는(봉)동이라 이름이 붙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달동네라 점집이 많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랐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이후에 다른 누군가에게 해줄 일이 없어지겠지. 기분이 미묘했다.
이어진 대학동 산책. 한때 학생운동의 주동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거나 세상을 비판했을 오래된 술집들은 거의 사라지고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국적불명의 온갖 음식을 파는 가게들, 까페와 스터디 공간들로 이루어진 소박한 공간. 흔한 대학가와 비슷하기도 하면서 조금 더 차분한 느낌이 드는 건 고시생들도 많이 지내는 공간이기 때문인걸까.
예전에 '인간에게는 제 3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하는 공적인 공간, 쉬는 사적인 공간 외에도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충전을 할 수 있는 공적이지도 사적이지도 않은 중간 어느 지점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아주 어렸을 때는 도림천 주변에서 공을 가지고 놀면서, 주말이 되면 관악산을 오르면서 이를 해소하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점 도시화가 되어가며 이런 공간들은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함께 답사간 다른 분이 지적한 것처럼 코로나 시국에 카페를 가는 카공족들에 대한 비판만을 할 것이 아니라 고민이 필요해지는 부분이다.
관악산 주변은 여전했다. 관악산에 오르거나, 서울대학 안의 잔디밭에서 공을 차고 온종일 놀고 녹초가 되어 언덕을 넘던 기억이 선명하다. 마스크 때문인지 더 더워 땀 범벅으로 길을 오르는데, 그 언더길에 서울 둘레길 이라고 안내가 붙어있었다. 샤로수길 정비에 이어서 그 길도 일종의 등산로 겸 관광지 화 하려는 정책인걸까? 그건 도대체 어떤 예상을 통해 진행되었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려는 걸까?
이것 저것 보게된 것들에 대해 떠들고 있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어려서부터 자랐고, 내가 독립하여 새로운 주택을 사게 된다고 해도 이 동네에 남고 싶다. 그렇게 하기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불안함이 있을 뿐이다. 어째서일까.
경제적인 이유에 휘둘려서 자신이 살 곳을 결정해야 한다면 과거 봉건 시대 농노들과 다를바 없는 삶은 또 아닌가. 착잡해진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변화들이 미래에는 조금 다른 맥락과 의미를 지니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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