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점과 카페

대학月동

by spacehost

작성자_스타


대학동을 걸으면서 가장 눈에 띈 사실은 카페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카페마다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일행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노트북을 들고 혼자 앉아 있었다. 상점이 별로 없는 주택가에 살고 있는 데다, 코로나19로 오랜만에 외출을 해서 그런지 그 모습이 참 생경했다. 하지만 그건 불과 1년 전 내 모습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전염병이 돌고 있는데, 왜 집에 가만히 있지 않고 카페까지 나와 공부를 하느냐고 "카공족"을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취를 해본 나로서는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지금도 고향을 떠나 혼자 살고 있지만 이제 자취보다는 독립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좁은 방은 침대와 테이블 하나만 들어가면 꽉 차 버렸다. 뭔가 작업을 하려면 화장품과 갖가지 물건으로 가득한 테이블 위를 밀어내고 노트북을 올려놓을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끼니때마다 다시 치워야 함은 물론이다. 취사 시설도 마땅찮고 제대로 된 요리를 하면 냄새가 빠지지 않아 주로 전기밥솥으로 밥만 하고 즉석조리제품 반찬을 데워 먹었다. 그야말로 짐을 부려 놓고 잠만 자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런 곳에서 하루 종일 매일 혼자 지내라는 건 너무 가혹한 것 같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따가운 눈초리를 감내하고 나오는 것일 테다. 서울대와 가까운 대학동에 학생들과 고시생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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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동은 '녹두거리'로 더 자주 불린다. 1980년대 주점 '녹두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밖에 값싼 가격으로 학생들을 끌어모으고 학생 운동의 메카가 된 주점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동학'도 문이 굳게 잠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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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그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독특한 외관이 인상 깊었다고 얘기를 하자, 지나다니면서 한 번도 문을 연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정문이 어디냐고 나에게 오히려 되물었다. 이렇게 주점은 카페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대학원에 입학하던 2013년만 해도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교통이 불편한 대학동보다는 낙성대역, 서울대입구역에 집을 구하는 경우가 더 흔했다. 4년 동안 대학동은 그 동네에 사는 한 친구의 집에 가느라 서너 번 방문한 게 다였다. 낙성대 또한 지하철이 있다 뿐, 다른 대학가에 비해 유흥 시설이 거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따라서 학과 회식을 하면 가는 곳이 정해져 있었다. 개중 오래 자리를 지켜왔다던 실내포차 '주포마을'이었다. 다음 날 과제를 마무리하지 못해 휴강을 바라며 교수님을 붙잡고 새벽 4-5시까지 술을 마셨지만, 교수님은 오전 10시 수업에도 멀쩡하게 나타나 흐리멍덩한 내 정신을 꾸짖으시곤 했다.


그런데 내가 졸업하던 2017년 즈음, 미투운동 등으로 성의식, 갑질에 대한 의식에 민감해지면서 회식은 거의 생략되었다. 학기 시작이나 끝, 일과 시간에 강의실을 한두 시간 빌려 피자를 시켜 나눠 먹고 헤어지는 게 다라고 한다. 아마 요즘에는 코로나19 때문에 회식이나 모임이 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고질적인 집단 문화가 사라지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교수님과 편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가 사라진다는 건 아쉽기도 하다. 아무것도 없다며 불평했던 동네에는 외지인까지 와 줄을 서는 '샤로수길'이라는 핫한 공간이 생겨났지만, 이제는 공부에 지칠 때마다 동료들에게 농담 반으로 "내가 근처에 아지트 하나 열게, 와서 술이나 팔아줘"할 수도 없을 정도로 상업적이 되어 버렸다.


학생 운동은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었지만, 학생들이 하루를 쾌적하게 보낼 독립된 공간을 얻지 못한 채 카페라는 일시적이고 상업적인 공간에 기대고 있는 이상 사회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낙성대에서 살만한 집을 위해 1년마다 이사를 다니고 카페를 전전하던 당시의 나도 그걸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지금을 희생하고 노력해서 성공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때의 아쉬움과 부채감으로 공간주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에게서 에너지와 영감을 얻고 소통할 수 있는, 카페와 주점 사이의 어느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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