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月동
작성자_제이드
경험은 기억 속에 엄격히 고정되어 있는 개별적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 산물이 아니라 종종 의식조차 하지 않는 자료들이 축적되어 하나로 합쳐지는 종합적 기억의 산물이다.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가속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란 단어조차 상실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온종일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답답한 마음과 잠시나마 한 달에 한번 여유를 가지고자 시작한 11월 홍제동 산책은 도시의 변화를 순간순간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현상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후 4시
1970년대 하천 위에 군사 방어 목적으로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 주상복합건물 '유진상가' 인공대지를 따라 A동과 B동 두 개의 건물이 만들어낸 오래된 삶 내음을 풍기는 길을 거닐고, 유진상가 건설로 50년간 단절된 건물 다리 밑 '홍제유연' 홍제천 물길 따라 내려가며 다시 물길 반대로 유영해본다.
오후 5시
임진왜란 이후 서울 외곽을 방어하는 목적으로 포훈련을 하던 곳이며 6.25 전쟁 당시 퇴각하는 북한군을 공격하기 위해 포를 설치한 것에 유래한 '포방터' 흥미로운 이름 유래를 앎과 동시에 시장 입구의 홍제천 따라 형성된 마을을 탐닉해본다.
오후 6시
뒤돌아 멀찌감치 보이는 불빛 하나둘씩 켜지는 것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물결에 맞춰 거닐어 본 길 끝엔 '개미마을'입구가 마중 나와 있었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우리의 발걸음도 무거워진 채로 지대가 높은 개미마을 종점까지 천천히 걷고 멈추며 타지의 삶에 녹아본다.
해 질 녘
오늘의 경험 속에 우리는 어떤 경험을 마주했을까?
나는 이날 마지막 지점인 개미마을에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하천 따라 생겨난 집들을 바라보며 얼기설기 골목길을 걷는 어르신들의 느린 발걸음에서 그들의 삶에 심취한 듯했다. 한국전쟁 이후 배고프고 고단한 삶을 겪으신 어르신들 말씀 중에 지금 세상이 젊은 사람에게 살기 좋다고들 한다. 하지만 난 되려 오래된 마을을 거닐며 무의식적으로 늘 그 자리에 따듯한 내 온전한 집이 없다는 것과 어디서 살고 싶은지에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채우기 어려운 마음의 빈곤들만 쌓이는 듯하다. 저 멀리 아파트를 바라보며 나에게 다가온 텅 빈 집에서 친구들과 뒹굴거리는 상상으로 기억을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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