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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host Dec 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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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골_안광일

건축을 하면서 나름 답사와 여행을 부지런히 다닌다고 했지만 유난히 못가본 카데고리가 있는데 그게바로 서울에 있는 릉이다. 동구릉이나 서삼릉이나 세종대왕릉 등은 날잡아서 찾아가봤지만 선릉이나 정릉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항상 뒷순위로 밀려나다보니 아직까지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이번 답사지는 정릉골 재개발 구역이다. 이름은 낯익지만 한번도 안가본 곳이다. 사실 이번 답사는 그렇게 흥미가 돋지는 않았다. 이미 재개발이 결정났고 시공사도 선정된 상태로 포스코건설에서 테라스하우스 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라는 뉴스를 조감도와 함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답이 적혀있는 시험지를 본 느낌이랄까 별로 기대감이 들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출발점에 도착해서 북한산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깨끗해지며 의욕이 돋기 시작했다.

답사는 정릉탐방 안내소에서 시작했다. 청수장계곡을 지나 정릉천을 따라 내려가며 골목길을 구석구석 다녔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방향감각을 잃기 쉬운데 정릉천은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가면 되니 얼마나 훌륭한 안내자인가.

이 곳의 집들도 다른 재개발구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아서인지 수목이 무성했고 땅의 고저차가 심한 곳들이 종종 보였다. 땅의 높이차를 해결하기 위해 옹벽을 쌓은 모습이 마치 그랜드캐니언을 모티브로 만든 Jerde*의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이번 답사때는 우연히 집 안에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집주인은 예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분은 아니었고 재개발 입주권을 얻기 위하여 집을 구입한 듯 보였다. 북한산 자락의 낡고 허름한 동네가 북한산 국립공원 자락에 숲세권의 고급 테라스하우스단지로 바뀌면서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고 돈 많은 이들이 그 자리를 꿰찬다. 뭔가 석연치 않은 장면이었다.

그렇게 찝찝한 마음으로 정릉천변에 가니 계곡은 또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주어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Jon Jerde는 미국의 건축가로 오사카의 난바파크, 후쿠오카의 캐널시티, 신도림 디큐브 시티 등이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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