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골_이관석
1. 고향이 서남쪽 어느 항구도시라고 말할 때, 서울 경기권 주민들의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단독주택에 산다고 말해줘"라는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지 못해 조금 미안할 때가 있다. 아주 어릴 때 희미한 기억을 제외하면 나의 대부분의 삶을 아파트에서 보냈고, 우리 가족의 이주사는 그 작은 도시의 택지개발에 따라 차츰 더 넓은 아파트로의 이사가 전부였다. 그 이주의 역사가 멈출 때 즈음, 나는 그 곳을 떠났다.
2. 북한산 자락의 기운이 물과 숲으로 내려받는 정릉은 듣던대로 "서울 같지 않은" 곳이었다. 녹음이 가득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조용한 곳. 서울에서 만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그렇지만 또 서울의 한 자락임을 뽐내는 산자락 뷰를 야금야금 잡아삼켜간 아파트들도 곳곳에 우뚝 서 있다. 조금 늙었거나, 약간 정돈되지 않은 차이가 있었지만.
3. 화끈한 여름만큼이나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하는 난도 "상"의 한반도살이에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 가져다 주는 공동난방의 효과는 아파트에 살아보지 않고는 모른다. 일평생 웃풍 가득한 단독주택에서 살았던 바깥양반은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뒤 단독주택의 ㄷ자도 꺼내지 않는다. 그 분에게 공동주택 이전의 주거는 생존의 또 다른 이름이었으리라.
4. 볕이 드는 산자락부터 자리 잡은 정릉 주변의 아파트 단지를 보니 외려 둘러볼수록 정릉은 서울 같지 않다기보다 서울의 총합으로 느껴진다. 산과 물과 아파트. 주거의 3욕망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서울의 총합. 수려한 산자락 아래 맑은 물이 흘러 내려와 예술인의 기운이 가득했던 이 곳도 이제 "서울"이 되고자 몸부림 칠 예정이라고 하니 재건축 한 스푼을 더하면 서울의 대표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5. 그렇게 필요한 주거환경이라 믿고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남은 사람들은? 떠나야 할 사람들은?" 이라는 고민을 다시금 되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골목이 사라지고 슈퍼가 사라지고 숲과 물길을 독식한 대단지의 개발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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