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도, 와이파이도 없던 오후
항상 가방 안에는 빠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지갑, 핸드폰, 노트북. 하루를 굴러가게 하는 작은 장치들이다. 그중 하나라도 없으면 괜히 마음이 불안해진다.
오늘은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 한참을 걷다가 습관처럼 가방을 뒤적였고, 없다는 걸 여러 번 확인하고서야 그냥 걷기로 했다.
발길이 닿은 곳은 인적이 드문 골목 사거리의 작은 카페였다. 이제 막 오픈한, 젊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직접 고른 듯한 의자, 어설픈 듯 조심스럽게 놓인 작은 화분, 손님을 맞이하는 조용한 미소. 두 사람의 수줍은 정성이 공간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긋나긋한 말투로 주문을 했다.
구석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아,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곳이었다. 잠깐 당혹스러웠지만, 이내 포기하기로 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있어보자.
차가 조용히 놓였다. 따뜻함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연결되지 않는 오후. 답장을 할 수도, 검색을 할 수도 없는 시간. 해야 할 일이 사라지자, 보이는 것들이 천천히 늘어났다. 찻잔의 온기, 은은하게 번지는 향, 잔을 내려놓는 작은 소리, 배경음악의 리듬. 오랫동안 쉬고 있던 감각들이 조용히 일을 시작했다.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고 펜을 잡았다.
없다는 것은, 어쩌면 항상 채워져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잠깐 비켜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비어 있음이, 뜻밖에도 나를 나에게로 데려온다.
오늘은 없어도 괜찮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