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없는 봄날의 선물

기대를 내려놓았더니, 봄이 두 개였다

by 스페이스

기대는 늘 앞서간다.

서울 시내가 분홍으로 물든 걸 보고, 더 깊은 곳에 더 환한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집에서 한 시간. 경기 광주 화담숲. 이름부터 무언가를 담고 있을 것 같았다.


도착하니 벚나무는 닫혀 있었다. 꽃망울은 맺혔지만, 터질 준비가 아직 안 된 얼굴이었다. 여기저기 잎 없는 나뭇가지들이 허공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가, 자연 속에 오니 좋지 않냐고 얼버무렸다.


엄마가 먼저 걸어가셨다.

소나무 앞에서 멈추셨다. 어릴 때부터 소나무를 좋아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앞에 서신 엄마의 표정을 제대로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소녀처럼 좋아하시면서, 여기서도 찍어달라, 저기서도 찍어달라 하셨다. 소나무 안내판을 읽으시더니 "이게 명품 소나무래" 하고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바람이 지나갔다. 솔향이 낮고 길게 깔렸다.

길 양쪽으로 수선화가 노랗게 무리 지어 있었고, 석화회와 비올라, 튤립이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피어 있었다. 벚꽃이 없는 자리를 다른 것들이 소리 없이 채우고 있었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벚꽃은 서울서 봐도 되잖아."

나는 웃었다. 꽃 앞에 설 때마다 셔터를 눌렀고, 나란히 서서 꽃과 이름표를 번갈아 보고, 예쁘지, 하고 서로 공감했다.




목적한 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은 두 가지 방향으로 간다.

없는 것을 헤아리거나, 있는 것을 바라보거나.

어느 쪽이 맞다고 배운 적은 없다. 다만 그날 엄마는 소나무와 꽃 옆에서 오래 머무셨고, 나는 그 옆에서 뭔가를 조금 내려놓은 것 같았다. 무거운 것은 아니었다. 기대라는 게 원래 그렇게 가벼운 것인지도 몰랐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에서 10분 거리, 늘 지나치던 시민의 숲. 벚꽃이 가지를 맞대고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꽃잎이 흩날렸다. 사람들이 그 안에 서서 웃고 있었다.

한 시간을 달려가서 보려 했던 것이, 여기 있었다.

잠깐 차를 세우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 화담숲에서 벚꽃을 봤더라면, 나는 지금 이 터널 아래 멈췄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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