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행성에서 춤추는 법

'비움'이라고 쓰고 '기분전환'이라 읽는다

by 스페이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오프닝 장면 속 스타로드가 종종 생각난다.

황폐하고 텅 빈 행성에서 혼자 음악을 들으며 경쾌하게 춤추던 장면이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부서진 돌무더기와 회색빛 먼지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가볍다. 음악이 흐르는 순간, 폐허는 그에게 더 이상 폐허가 아니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같이 가벼워졌다.




오랜만에 LP 바에 갔다.

누군가를 만나러 간 게 아니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그냥, 음악을 들으러 갔다.


바늘이 레코드판 위에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처음 듣는 팝송이 흘러나왔다. 영어 가사였고, 멜로디는 낯설었다. 그냥 들었고 편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악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했던 기억도, 아팠던 기억도. 그냥 음악이었다. 공기를 타고 오는 진동이었다. 그 소리에 나를 조금씩 내려놓았다.

그러다 오래전에 알던 곡이 나왔다.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특별히 슬프지 않았고, 때론 반가운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파도처럼 빠져나갔다. 잡지 않았다.


주변은 시끄러웠다. 테이블 너머 누군가의 웃음소리, 잔이 부딪히는 소리, 문이 열릴 때마다 들어오는 바깥의 소음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고요했다.




영화 라붐에서 남자 주인공 마티유가 아무 말 없이 헤드셋을 빅(소피마르소)의 귀에 부드럽게 씌워주는 순간이 떠올랐다. 파티장 한복판, 모두가 떠들고 춤추는 소란 속에서 그녀의 세계는 갑자기 조용해진다. 감미로운 'Reality'가 흐르기 시작한다. 음악만 남고, 한 사람의 눈빛만 남는다.


지금 이 공간이 그런 것 같았다.


헤드셋은 없었지만, 어느 순간 바깥소리가 차단되고 있었다. 세상과 나 사이에 얇은 막이 생겼다. 소음은 저 바깥에 있고, 나는 여기 있었다.

음표 위를 걷는 것처럼, 아니, 음표 위에서 그냥 흔들린다. 억지로 흔들리는 게 아니라, 흔들려도 괜찮아서 흔들린다.


잠깐, 내가 없어도 되는 시간이다. 스타로드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음악에 몸을 맡기면서, 나를 비워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워야 채워지는 게 있다면, 기분전환은 어쩌면 그 비움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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