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aceSallim Dec 09. 2020

안 가본 길을 가보는 사람, 서현선

개인과 조직의 건강한 변화를 위한 실험실, 진저티프로젝트 대표 서현선

진저티프로젝트의 사무실에 방문하면 만날 수 있는 머그잔




진저티프로젝트는 개인과 조직의 건강한 변화를 위한 실험실입니다. 
이를 위해 변화를 읽고, 지식을 짓고, 네트워크를 디자인합니다.
최근에는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Z세대 6명과 함께 일을 주제로 한 경험과 고민, 관점과 철학, 시도와 실험을 담은 [롤모델보다는 레퍼런스]라는 책을 냈습니다. 일의 방식, 일의 풍경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 시대에 ‘일하는 여성의 삶’은 어떤 모습이고, 또 어떻게 변해갈지 함께 질문하고 이야기하는 기획입니다.  



인터뷰의 시작은, 

스페이스 살림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넓은 공간, 다양한 쓰임새와 앞으로 진행될 사업 계획과 프로그램을 나열해 보았는데, 그럴수록 아쉽게도 스페이스 살림의 지향점과 가치, 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성과뿐만 아니라 스페이스 살림을 채우는 사람들을 만들어온 과거와 그 생각과 고민을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다채로운 사람들, 다양한 사고와 삶의 방식이 교차하고, 때로는 연결되는 플랫폼 공간, 스페이스 살림. 스페이스 살림에선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또 더 많이 연결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Intro.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동료 한 명이 나긋하게 얘기했습니다.  ‘오늘 서현선 대표의 매직에 빠지겠네요'라고. 진저티프로젝트의 실험적인 활동은 다양한 매체에서 다뤄질 만큼  독보적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서현선 대표가 만들어온 길이 궁금해졌습니다. 결과로 보이는 지금 말고, 과정으로 남겨진 지난 시간 속에서 서현선이라는 사람의 고민과 선택을 듣고 싶었습니다.    



서현선은 어떤 사람인가요?


개척자, 문자 그대로 먼저 태어나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다른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는 사람.      
앞서다, 현명하다는 이름을 갖고 태어나


저는 제 이름을 좋아해요. 서현선인데, 나이가 들어 제 이름을 다시 생각해보니 마음에 더 들어요. 보통 여성의 이름에 들어가는 ‘선' 자는 착할 선이 많은데, 제 이름은 아니에요. 앞설 선, 선두 선 자이고, 현은 어질고 현명하다는 뜻이죠. 여러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쉽게 풀어보면 어진 리더, 지혜로운 선생님, 현명한 개척자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착하게 살아라’는 메시지를 주셨다면 마음속에 왠지 반발이 생겼을 것 같지만요. (하하) 저는 저의 이름에,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고 실험할 수 있는 응원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안 해본 것도 해보며 살아라, 그리고 나답게 살게 하기 위한 격려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삶에서 다양한 역할로 저를 설명할 수 있지만요. 본질적으로 저는 안 가본 길을 가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패치워크 커리어라고 하시던데요, 본인의 다채로운 일의 이력을 설명할 때요.   


    내 일상에서 양극단의 경험을 하게 되면서,
이 뒤에 있는 역할과 시스템이 궁금해졌어요. 그땐 이렇게 해석하지 못했지만요.
   

학부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어요. 재밌었고 꽤 잘했기 때문에 심리치료사가 나의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실제 석사, 박사 과정을 거쳐 일을 하는 언니들을 만났는데 그게 나랑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저는 역동적이고 건강한 사람을 만나, 새로운 역동을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데오 랜 훈련을 투자해서 전문성을 갖추고, 상담실이라는 환경에서 긴 호흡으로 마음을 다루고 치료하는 건 저에게 잘 맞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에 멘붕이 왔어요.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봤어요. 일상에서 훈련하고, 한편으론 배움이 있었으면 좋겠고. 이런 것과 맞는 것을 우연히 찾았어요. 근교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학원이었는데, 자유롭게 해보고 싶은 것들을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그중 3학년 때 했던 해외 인턴 경험이 저에겐 전환점이 되었어요.  


워싱턴 D.C에서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라고 불리는 헤리티지 파운데이션(The Heritage Foundation)에서 여름방학 동안 인턴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엔 에너지가 많아 인근 홈리스 센터를 운영하는 대학원 선배에게 연락해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했죠. 마침 숙소가 없다면, 홈리스 센터에서 머물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듣고 바로 그리고 갔어요. 그렇게 가장 밑바닥의 삶과 가장 높은 곳의 삶을 하루 안에 경험하는 일상생활이 시작되었죠. 화려한 미국의 수도에서 너무 더워 사람이 죽어가는 일, 고위급 인사들과 네트워크 행사에서 만나는 그런 일상이 하루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제3의 영역에서 지식을 만드는 역할, 그리고 사회 밑바닥 삶을 지원하고 변화시키는 역할 이런 것들을 한국 사회에서는 누가, 어떻게 역할을 하는지 궁금했어요. 그렇게 돌아와서 아름다운 재단을 알게 되고 지원하게 된 거죠.   


아름다운 재단에서의 5년, 이라고 한 줄로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재단에서의 5년은 매우 ‘빡센’ 기간이었어요. 교육, 연구, 국제협력 등 모든 기능이 한 곳에 있고, 그런 것들을 해결하는 구조였죠. 특히 당시엔 기부문화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어젠다였어요. 이런 것들을 시작으로 각종 새로운 일을 시작했죠. 그때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은 다 해본 것 같아요. 일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의 중요성도 배울 수 있었어요. 배웠다기보다는 그것 자체가 일이었죠. 다양한 국내외 사례들을 참고하고, 그 내용을 축적하면서 새로운 일들을 벌였던 것 같아요. 각양각색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져서, 당시의 시민사회단체들 구성과도 다른 면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도 놀라웠고요. 

  


퇴사와 7년간의 공백이 궁금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아이는 언제 낳겠니'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들의 염려는 트리거였을 뿐이란 생각이 들어요. 재단에서 일하는 것은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진되고 있는 것 같고 성장에 대한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 것을 느꼈어요. 팽창하는 조직에서 더 크게 일할 수는 있지만 그런 내면의 감정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보였고요.   

어찌 보면 퇴사의 시작은 아이였는데, 아이를 진짜로 원하는 건지 자격이 있는지, 준비되었는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시기였어요. 상당히 ‘아름다운재단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일을 내려놓고 나니 나를 설명하기 어려웠어요. 물론 재단을 그만두고 나서도 프리랜서, 컨설턴트 등 여러 가지 일들 했었어요.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이 사실 궁금합니다. 이렇게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은 언제, 어떻게 생기게 되었나요?   


나의 상태가 어떤지 탐색하는 여정이 중요해요.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 더  어려웠겠죠.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서서히 생각이 정리되었고 아이를 진심으로 낳고 싶다는 마음이 찾아왔어요.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내가 정말 부모가 되고 싶은지 내 마음을 잘 알 수 없는 상태가 꽤 길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6개월간 홍콩으로 발령을 받게 된 남편과 같이 한국을 떠나 있던 시간이 있었는데, 남들과 떨어져서 새롭게 나의 마음을 정리하면서 서서히 그런 마음이 들어왔던 것 같아요. 남들 같은 육아를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본질적으로 나는 누군가의 성장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엄마로서의 여정도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이렇게 나의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탐색하는 여정을 갖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상당한 기간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이를 낳고, 산후 우울증을 아주 혹독하게 겪었죠.    



공백기 이후 일을 새롭게 시작할 때의 마음은 어땠어요?   


시작할 때 도전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인데 그 당시에는 두려움이 컸어요.. 너무 혹독한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었고, 몸도 아팠고요. 공황도 겪었는데, 심리학에서 공황을 배운 것과 공황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너무 다르더군요. 그런 시간을 겪으니 도전하는 것이 무서워졌어요. 오히려 진저티프로젝트를 법인화하는 일에 대해서는 지금은 졸업한 창립 구성원들이 적극적이었어요. 저는 사외이사 정도로만 있어야겠다고 말했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또 마음을 먹는 계기는 온전히 내 안에서만 생기는 건 아니었어요. 밖에서 올 때도 있죠. 일을 그만두고 있는 예전 동료를 보고, 성장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적극적으로 내가 그 역할을 하려면 안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일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최근에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어요. 그 동료는 많은 조건이 제대로 갖춰진 상태일 때  일이 제대로 된다고 배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없을 때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진짜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환경에서 배워왔기 때문일 거예요. 없으니까 시작하는 것, 저에겐 그게 일이에요.  


스페이스 살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스페이스 살림,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하세요?   


    스페이스 살림, 다양한 여성들의 삶의 총합을 볼 수 있는 곳.
공간의 크기만큼이나 ‘여성의 일’에 대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곳.      


스페이스 살림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꼭 필요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고마움이랄까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누군가 올바른 일을 올바르게 하고 있을 때 안심하게 되잖아요. 지치지 않고 그 일을 잘해 주시길 응원하는 마음이에요. 동료의식을 느껴요.

 

공간이 너무 크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오히려, 저만한 규모로 여성의 일의 중요성, 그 존재를 어필해주는 곳이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여성들이라면 늘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작고 귀여운 것들이 주로 주어지는데, 사실 크게 그리는 일을 많이 경험하지 않아서 그런 거지, 큰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여성들은 준비되어있다고 봐요. 대기 하고 있는 강력한 에너지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스페이스 살림에서는 가능성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가능성과 다양한 여성들의 총합이 보일 수 있는 곳이요. 그리고 여성의 리더십이 연결망 속에서 살아날  수 있는 그런 공간이길 바랍니다. 


오늘 어땠어요? 

그날의 인터뷰는 서현선 대표의 질문이자, 위로의 말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에도 바쁜 시간에 꼭 우리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며 한마디를 청했습니다. 저는 오늘의 시간에서 힘을 얻었다고 답했습니다. 


대단한 사람인데, 대단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인데, 또 평범하지 않은 그런 모습을 보고 들으며,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라는 위안을 얻었다고요. 그렇게 서현선은 누군가의 롤모델이 아닌 레퍼런스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백지에서 일을 만들어 내는 사람, 다른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돕는 사람, 이 사람이 스페이스 살림을 채우는 사람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