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브랜드 옷을 사본적이 없다. 다행히도 세 살 터울의 친척형이 있어서 대부분 물려 입었다. 혹시 옷을 입다가 헤지면 어머니가 천을 덧대어 꼬매 주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유일하게 어머니께서 돈을 주고 사주신 옷은 중, 고등학교 교복이다. 이마저도 2벌 살 돈이 없어서 한벌만 사고 한벌은 물려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브랜드에 대한 개념도 없었던 나름 순진한 아이였다는 거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는 잘 몰랐고 그냥 프로 스펙스와 같은 신발 상표라를 정도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지했던 내가 브랜드에 눈을 뜬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슬램덩크라는 만화를 보고서다. 그 만화책을 보면 나오는 강백호의 나이키 농구화. 그 농구화가 너무 갖고 싶었다. 처음으로 나이키라는 브랜드에 대한 욕망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나이키 운동화를 살만한 형편이 못되었기에 그저 상상의 나래만 펼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반 친구 하나가 돈이 필요했는지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야! 내 나이키 운동화 살 사람?!"
알고 보니 이 친구는 그 당시 막 연애를 시작했는데,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신던 나이키 운동화를 팔 생각이었다. 그러나 반 친구들은 모두 시큰둥했다. 왜냐하면 그가 팔려는 운동화는 이미 2년 넘게 신었던 운동화라 밑창 끝부분이 다 떨어져 나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모두들 시큰 둥하던 그때 나는 가슴이 뛰었다. 저 운동화가 낡았던 낡지 않았던 내 눈에는 나이키로 보였기 때문이다.
"얼마에 팔건대?"
내가 관심을 가지며 묻자 그는 3만 원에 팔겠다고 했다. 당시 등교와 하교를 위해 마을버스비로 매일 천 원을 받던 나에게는 엄청난 큰돈이었다. 그럼에도 그놈의 '나이키'가 너무 갖고 싶어서 나는 내가 사겠노라고 했고 결국 그 운동화를 소유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첫 중고거래였던 것이다.
마을버스비를 모두 쏟아부었기에 한 달 이상을 걸어 다녀야 했지만 그래도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걸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비록 한쪽 밑창이 모두 뜯어져 나가 비가 오는 날이면 양말이 다 젖긴 했지만 그래도 신발에 붙어 있는 나이키 로고를 보면 가슴이 뛰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브랜드 운동화 하나 정도는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었지만 내 인생의 첫 나이키 운동화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동경하던 브랜드의 물건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브랜드의 가치와 나의 가치를 동일시할 수 있었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