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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B Dec 02. 2019

함께 사느라 고생이 많소~

함께 산 지 18년 되는 날

어제는 함께 산 지 어언 18년 되는 날. 그 사이 우리 둘 사이에는 수험생과 사춘기 두 딸이 생겨났다. 동네 한 바퀴를 돌다 저녁이 되어서 들어선 동네 맛집에서 골뱅이 쫄면과 간장후라이드 치킨 반반을 주문했다. 고픈 배를 달래줄 맛있는 음식이 나오고, 우리 둘은 소주잔에 술을 따르고, 딸아이에게는 얼음 담긴 잔에 콜라를 따랐다. 익숙하게 골뱅이 양념과 쫄면을 비빈다. 잔을 부딪혀 덕담 한마디씩을 돌린다.  

    

“브라보, 함께 산 지 18년이네”

“쨘~징하다. 찐하다. 어느새 18년이 흘렀을까?”

“우리 큰 딸이 17살이니, 함께 산 지 딱 18년이네”

“18년 헤어지지 않고 살았으니 대단하지?”

“엄마, 아빠 서로 맞추고 18년이나 사느라 고생했어. 대단하다. 대단해.”     


가족들의 대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18이라는 숫자에 다들 재미를 붙인 듯 웃음꽃을 피어본다. 함께 산 지 18년. 주마등처럼 많은 장면들이 떠오른다. 1년 365일, 그렇게 18번을 돌아가는 세월동안 참 많이 싸우기도 했다. 깨소금이 쏟아진다던 신혼때 우리는 싸움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서로 다른 집안 문화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날, 집에 와서는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서로 자존심을 세우느라 말꼬투리를 잡으며 지지 않으려 했다. 말로 상처를 내고 밀치고 할퀴며 물어뜯으며 그렇게 서로를 맞추는 시간들이 흘렀다.     


이젠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다. 그렇게 서로를 맞추고 사느라 힘들었던 날들.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웃을 수 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바라봐줄 수 있다. 나를 따라오라고 힘들여 맞추려고 하지 않고, 조금 서로 다른 그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이제 오십 고개를 한달여 남겨둔 날. 우리 부부는 그렇게 세월의 한 자리에 서 있다.     


오전에 시간을 내서 딸아이와 향수를 고르러 갔다. 나이 들수록 ‘냄새’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깨끗하고 시원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난생처음 골라보는 남자 향수. 40대 중반을 넘어서는 남편에게 딱 어울리는 중후한 나무 포장용기도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도 남편은 머리도 비누로 감고, 얼굴에 선크림이나 로션 바르는 것도 귀찮아한다. 그런 남편에게 향수라니, 분명 귀찮아할 텐데, 새로운 것에 도전해본다는 셈 치고 뿌려보라고 할 셈이다. 착한 남편은 미션 수행하는 듯 잊지 않고 향수를 뿌린다.     


“맥박이 뛰는 곳에 향수를 뿌려봐. 손목 안쪽, 귓볼 아래에 이렇게 묻히는거야. 어때? 좋은 향기가 나지?”     


갱년기 호르몬 변화로 시도 때도 없이 불끈거리는 나는 먹으면서 뱃살을 빼준다는 상담원의 유혹에 그대로 넘어가 10개월 할부로 비싼 약을 주문했다. 남편 몰래 저지른 일이었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휩싸여 남편에게 말 안하고 내 카드로 결제를 했다. 꼼꼼한 남편이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했다. 거금에다 할부까지 했으니 속좁은 남편이 그냥 넘어가질 않았다.       


남편이 예전 직장 동료들과 만나 술 한잔 한다고 연락이 왔다. 갑작스럽게 약속이 잡혔나보다 하고 즐겁게 마시다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의 답장이 도착했다.      


‘속좁은 남편하고 사느라 고생이 많소’     


술자리에서 돌아온 남편이 흰 봉투를 내민다. 18주년 결혼기념일 선물이란다. 거금이 담긴 현금봉투. 속좁게 굴어서 미안하단다. 조금은 짠내나는 찌질이 남편이지만, 마음 쓸땐 한번에 턱 거금도 내밀줄 아는 멋진 남편. 그런 남편 덕에 귀가 얇아도 너무 얇은 팔랑귀 나도 거절할 줄 알게 되었고 절제도 배울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 돈으로 겨울나기 청바지를 사러 갔다. 약하게 기모가 들어가 있어 내복을 챙겨입지 않아도 되는 멋스러운 진청 바지. 돌아오는 길 새 청바지로 기분이 좋아진 우리 부부는 서로의 엉덩이를 토닥거려주었다. 화해무드에 잊지 않고 만담처럼 한마디씩 던진다.

     

“아이구야~결혼 18년, 속 좁은 나 만나 당신이 고생이 많네~”

“아니야, 18년동안 귀 얇은 나 만나서 당신이 고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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