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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여행가K Jan 21. 2021

현실과 낭만이 모호했던 시간

05. 여행에서의 하늘 in 파리

파리하면 대부분은 낮보다 야경이 먼저 생각나지만, 난 파리의 파란 하늘과 푸릇푸릇한 풍경, 그리고 따뜻한 햇살도 잊지 못한다.


파리와 인연을 맺은 건 2015년, 한불수교 130주년으로 파리 장식미술관 '코리아 나우'전시 디자인에 참여하면서였다. 주니어 시절이었어도 참여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고, 출장이 아닌 여행으로 유럽을 가보고 싶어 세 달 전부터 휴가를 신청하고 여행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출국 예정이었던 날짜 며칠 전에 파리 테러로 많은 분들이 희생되었고, 나는 여행을 취소하고 서울에서 'Pray for Paris' 애도에만 함께 하게 되었다.




파리를 직접 만나게 된 건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였다. 2016년에 대학원에서 팀으로 Maison&Objet (메종앤 오브제)에 참여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가서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휴가 겸 전시를 보러 일주일 정도 파리에 갔었는데, 출장과 휴가의 경계가 모호했었기 때문이었는지 현실과 낭만이 뒤섞였었다. 파리에서 지낸 기간 중 처음 며칠은 먼저 가있었던 대학원 분들과 같이 에어비앤비에서 지내느라 밤마다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었다. 밤샘 예산 회의와 서로 간 쌓인 불만을 듣느라 절반은 휴가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단체에서 떨어져 둘, 또는 셋, 또는 혼자 다니며 파란 하늘과 여유를 즐겼던 시간들이 잊지 못할 따뜻한 낭만으로 기억된다.


평소에도 전시 보는 것을 좋아해서 여행에서도 전시를 자주 보는데, 특히 파리에선 박물관에 많이 갔었다. 팔레 드 도쿄, 파리 건축 문화재 단지, 오르세 미술관 등 매일 한 곳 이상의 전시관에 갔었다. 느낀 것도, 배운 것도 많고, 재밌고 좋았던 시간이었으며, 예상치 못했던 특별한 순간들도 있었다. 박물관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들이 정말 예뻤던 것이다. 그리고 길을 걷다가 건물들 사이로도, 전시를 보다가 창문으로도, 생각보다 에펠탑이 자주 보였다. 그럴 때면 이 시간이 현실인 건가 꿈인 건가 붕붕 뜨는 느낌을 받았었다.



미리 사간 타워 티켓이 한 장 남아 유랑에서 구한 동행과 몽파르나스 타워의 전망대에서 노을을 봤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지인들과 같이 있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 현실과 여행 사이에 걸쳐 있다가 갑자기 여행으로 확 넘어온 것 같아서였을까.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에펠탑이라는 존재가 '네가 있는 여기는 파리다.'라는 현실감을 주면서도, '내가 파리에 와 있다니!'라는 꿈속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을까.



파리에서 현실과 낭만이 모호했던 시간들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Promenade Plantee(프롬나드 플랑떼)에서 나무 사이로 받았던 따뜻한 햇살과 푸릇푸릇한 기운, 그리고 일상 속 여유로움이었다. 수송로로 사용하던 고가다리 위를 산책로로 조성한 곳인데, 교각 아래 아치형의 공간들을 공예 공방이나 부티크로 리노베이션 한 Viaduc des Arts(비아뒥 데자르)와 함께 방문했었다. 그중에는 건축 모형들이 있는 걸로 봐서 설계 사무실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고, 주변의 다양한 건물들과 연결되어 있어 파리의 일상 속 산책로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점심때쯤 방문해서였는지, 삼삼오오 모여서 샌드위치를 먹는 파리지앵들의 점심시간도 엿볼 수 있었다. 같이 갔던 동생과 벤치에 앉아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이런 도시 속 공간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파리에서의 시간은 '현실의 문제'와 '여행의 낭만'을 휙휙 넘나들었던 시간이었지만, 이후에 남은 건 좋았던 기억과 아쉬움이었다. 그 아쉬움에 2년 뒤 40일의 여행에서 파리에 다시 가 6박 7일을 있었다. 이전에는 에펠탑을 딱히 계획하지 않았었지만, 이 여행에선 에펠탑을 실컷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에펠탑 가까운 곳에 숙소를 구했고, 에펠탑을 보며 현실과 낭만이 모호했던 느낌을 다시 받았었다. 내가 파리에 또 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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