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밀러 감독 X 그레타 거윅 주연 <매기스 플랜>
새로운 회사로의 이직을 준비하던 나, 그리고 첫 취준 생활을 준비하던 동생. 그리고 은퇴를 서서히 준비하던 부모님까지. 우리 모두는 제 각기의 인생 플랜을 세우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2020년 초. '코로나 19'라는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가 찾아왔다. 대부분의 채용계획은 무산되었으며 잘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까지 언제 잘릴지도 모른다는 고용의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고, 이는 아직도 전 세계인이 겪고 있는 끝나지 않은 공포이기도 하다. 인생의 계획 따위!
매기도 다르지 않았다. 남자 없이 홀로 잘 살아가는 매기는 '아기'를 갖기 위해, 자타공인 너드 대학 동창 가이에게 정자를 제공받는 발칙한 첫 번째 계획을 세운다. 일말의 사랑도 없이 정말 쿨하게 정자를 받은 그녀는, 어플로 임신 확률을 체크까지 하며 수정을 시도하는 그야말로 빛이 나는 솔로 매기. 그런 그녀에게 존이라는 더 빛이 나는 남자가 다가온다. 비록 유부남이지만, 로맨틱하면서도 모성애를 자극하는 이 남자와 매기는 자신도 모르게 불같은 사랑에 빠지고, 정신 차려보니 이미 애 셋 딸린 유부녀가 되어버렸다. 아침마다 육아에 업무에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는 매기와는 달리, 자신의 꿈인 소설을 쓰기 위해 모든 것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집중하는 남편 존. 그런데 말이다, 직장을 그만두랬지 가정일까지 그만두라고 한 건 아니었을 텐데. 이 남자 정말 주도적인 육아는 개뿔, 시킨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자기 소설에만 열중한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매력이 이제는 그저 애처럼 보일뿐이다. 나한텐 그저 챙겨야 할 애처럼 굴기만 했던 이 남자가, 전처에게는 의지가 되는 멋진 남자처럼 구는 게 아니겠는가.
매기는 외쳤다.
존은 말한다.
자기를 아껴주고 봐 달라는 여자의 외침에, 너는 괜찮다는 말을 하는 그리고 EX는 잘 달래주는 정말 최악의 남자다. 그래서 매기는 결심한다. 이 남자를 바로 그 EX에게 다시 돌려주기로. 그녀의 발칙한 두 번째 플랜이 시작되었다.
나는 여대를 나왔다. 그러고는 여초 업계에 들어가 수많은 여성들을 보았다. 남자의 도움을 요구하는 여우가 아닌 혼자서도 잘하는 독립적인 여성이 되자. 이것이 내가 봐온 당당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이었고, 나 역시도 되고 싶었던 모습이었다. 독립적인 여성, 좋다.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 얼마나 바람직한 모습이란 말인가. 하지만 독립적이라는 것이 배려받지 못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매기가 알아서 잘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 존의 모습은 현실에서도 빈번하게 보인다. 저분은 알아서 잘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혼자 알아서 잘하실 테니 우린 우리 일만 신경 쓰자. 어찌 보면 일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말 같지만, 그 이면에는 도움과 관심을 거두게 하는 칼날과 같은 말이 있다. 이것은 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그 아무리 그 사람이 일을 알아서 잘한다고 한들, 한 번쯤은 관심을 가지고 도와줄 것이 없느냐고 물어볼 수 있지 않은가? 독립적인 그들에게도 '사랑'은 필요하다. 또 '사랑'은 그들이 더 잘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귀중한 것이다. 매기를 보자. 아무리 존이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그녀에겐 아무리 발칙한 계획이라도 그녀를 지지하고 신경 써주는 친구들 토니와 펠리시아가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매기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고, 이상한 계획을 세워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발칙한 계획을 듣고 "왜 보통 사람처럼 이혼을 못 해?"라며 일침을 날리는 것도, 또 그러면서도 그녀를 지키려고 하는 것도 친구들이었다.
매기의 인생을 망친 것이 (존과의) 사랑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지켜준 것도 (그녀를 걱정하는 이들의) 사랑이었다. 또 그녀를 앞으로 희망차게 살아가게 할 것도 (피클맨과의) 새로운 사랑일 것이다. 인생은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또 망할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침범할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로또 당첨과도 같은 행운이 우리를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 우린 우리만의 희망,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매기스 플랜>에서 엔딩이 피클 맨 가이의 등장으로 끝난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순수한 희망이 있으며 어느 순간 보일 것이다. 그러니 계획 없는 삶의 변주를 맘껏 조금이나마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