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브로커> 리뷰
**스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불행에는 사연이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을 접하면 제각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다. 저 여자가 저래서 남편이 바람을 폈을 거야, 저 아이는 이모양이니 저런 힘든 일을 하고 있지.라는 등의 이야기들을 마치 작가라도 된 듯 휘황찬란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들의 사연은 무엇이길래 이토록 영화적인 삶을 살게 되었나.
겉으론 세탁소를 운영하는 정 많은 아저씨지만, 실상은 돈을 목적으로 아기를 매매하는 자칭 선의의 브로커 상현(송강호).
베이비박스 시설에서 일하며 상현의 브로커 업무에 몰래 조력하는 동수(강동원).
마지막으로 자신이 버린 아이를 다시 찾으러 와, 이들의 브로커 투어(?)에 참여하게 된 소영(아이유).
이 설정들을 듣기만 해도 벌써부터 관객의 눈물을 쏙 빼려는 신파적 장면들이 그려져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러나 아직 믿는 구석이 하나 남아있지 않겠나. 영화 마니아 사이에서는 평양냉면과 같은 슴슴하게 젖어드는 감성으로 유명한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각본을 맡았다는 점이다.
<원더풀 라이프>, <걸어도 걸어도>, 그리고 그에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어느 가족>에 이르기까지. 고레에다 감독은 캐릭터들의 삶을 그저 담담한 시각으로 그림으로써 특유의 쓸쓸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는 아마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영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브로커> 역시 그런 모습을 기대했다. 물론 다른 한국영화에 비하자면 신파적 요소가 다소 정제되었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감독의 일본 영화적 감성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고 사려된다. 그리고 난 바로 이 점이 영화의 핵심인 '유사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가족'이라는 내용은 고레에다 감독에게 있어서 필승 무기라 불릴 만큼 친숙한 소재이다. 특히 그에게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 <어느 가족>이 그가 '가족'이라는 주제를 얼마나 잘 다루는지 여지없이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가족> 역시 '유사 가족'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이들 역시 제각기의 사연을 가진 채 만난 가짜 가족-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가족. 하지만 <어느 가족>의 이들은 그 어느 진짜 가족보다 더 큰 울림을 주며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이들의 가족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 보였던 이유는, 그들의 진짜가 철저히 배제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감독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인물들의 숨겨진 사연들을 후반부에 보여주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이들의 현재성에 집중한다. 그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었든지 간에, 지금 이들이 그리고 있는 가족적인 면모를 꽤 많은 비중을 할애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반면 <브로커>는 등장인물들의 과거사를 직간접적으로 설명해주는 장면들이 지속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통해 여전히 은연중으로나마 혈연 가족에 끌리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동수(강동원)은 아들을 대하는 미혼모 소영(아이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친엄마를 떠올리고,
상현(송강호)은 여전히 헤어진 전처와 딸을 만나며 옛 자신의 가정을 그리워하고,
마지막으로 소영(아이유)은 자신의 아들을 보내는 이유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면 하는 모성애라는 점에서 이들은 여전히 혈연 가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혈연 가족에서 상처를 받아 유사가족으로 치유받는 <어느 가족>과 달리, <브로커>는 여전히 이상적인 정상 가족을 꿈꾸며 급기야 후반부에는 '리셋'을 바라는 불가능한 소망을 간직하게 된 것이다.
물론 감독의 의도가 다시 정상가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닐 것이다. 허나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그리려는 감독의 의도가 전달되기에, 이번 극의 방향은 다소 조화롭지 못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오랜 기간 기다려 온 프로젝트였던만큼 아쉬움이 여전히 짙게 남아있지만, 확실한 건은 고레에다 감독의 2번째 한국영화는 이보다 더 발전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굳이 톱배우, 훌륭한 제작진이 아니어도 좋다.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력에는 굳이 로컬화를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아도, 국내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충분한 흡인력이 있으니 말이다. 정상적인 한국영화가 아닌 그만의 독특한 비정상으로 국내 영화계를 슴슴하지만 중독성있게 흔들어주기를 바란다!
See you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