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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WOO Mar 01. 2020

인싸가 되는 길, 가장 멋진 소녀가 되는 길

보 번햄 감독의 <에이스 그레이드>

 이제 막 8학년을 졸업하려는 사춘기 소녀 케일라. 그녀의 손에는 하나의 상자가 들려져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쓰인 하나의 문구.

"To the coolest girl in the world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소녀에게"


 과연 그녀는 가장 멋진 소녀일까. 케일라는 다른 사춘기 소녀들이 그러하듯, 남들의 관심과 사랑을 바라고 행동한다. SNS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반면, 유투버가 되어 자신의 생각을 당차게 이야기한다. 어떻게 하면 자존감이 높아지는 등의 내용 따위를 마치, 자신이 선망의 대상 혹은 멘토가 되는 양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떨까. 영화 초반, 감독은 그녀를 '가장 조용한 소녀'로 정의시켜버린다.

 이웃에 사는 친구(상대방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가 그러하듯 자신도 친구들에게 휩싸여 놀고 싶고, 또 자타공인 미남 에이든과 사귀고도 싶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마치 자신이 잘 나가는 양 이야기를 하는 이 갸륵한 소녀. 특히 고등학생 남자와의 대화에서 마치 자기가 성관계 직전까지 갔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사는, '어울림'이라는 강박이 케일라를 절벽으로 밀어 넣은 것 같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 영화는 모두가 겪어왔던 사춘기 시절의 성장 이야기이지만, 그 누구도 극복하지 못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춘기 시절을 떠올릴 때, 그저 그 시절의 관심 갈구 호르몬의 이상 정도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춘기 시절의 특수성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정상이라는 사회적 시선에서도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을 던져본다. 최근 SNS 틱톡이라는 채널에서 유행한 '아무 노래 챌린지'를 기억하는 가. 소위 '인싸'라고 불리는 이들 또 '인싸'가 되고 싶은 이들은 모두 앞다퉈 이 챌린지에 참여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학교뿐만이 아닌 직장에서도 여러 '인싸' 트렌드들을 통해 사람들이 구분된다. 그 행동을 하거나 혹은 아는 사람은 '인싸'라는 선망의 대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싸' 내지는 '낙오자'로 분류되는 것이다.

아무노래 챌린지

 하지만 모두가 '인싸'가 되어야 것일까. 또 인싸가 아니라고 해서 뒤쳐진 '낙오자'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 <에이스 그레이드>에서도 이러한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가 홀로 집에서 유튜브를 하는 케일라에게, 가끔 밖에 생활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심스러운 권유를 던진다. 밖에 나가서 친구와 노는 것 또한, 케일라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나는 여기서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우리나라의 '집순이'를 떠올렸다. 모두 자발적으로 외출을 자제한 채, 집 안에서의 생활을 즐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나, 그 느낌은 정반대이다. 한국의 '집순이'가 그저 집 안의 생활을 즐기는 하나의 행동 패턴을 지칭하는 느낌이라면,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일종의 병리적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느낌을 준다. 우리는 케일라를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 만약 그녀를 히키코모리라고 규정한다면, 그렇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케일라 그 자신이 아닌 사회적 규정에 문제가 있던 것이 아닐까.

 영화 후반, 케일라는 'To the COOLEST girl in the world'라고 적힌 상자를 모닥불에 태운다. 아버지는 이를 보고 조심스럽게 무엇을 태우는 건지 묻는다. 그리고 소녀는 대답한다.

"Nothing really. Just my hopes and dreams
그냥 내 꿈과 희망들"


 7학년의 케일라가 8학년의 케일라에게 바랬던 것들. 그리고 희망했던 것들을 태우는 장면을 통해, 감독은 이제 자신 스스로와 사회가 규정한 틀에서 깨어나 본인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고 살아갈 케일라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소설 '데미안'에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말이다.  그리고 나는 마치 감독이 이렇게 묻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신도 케일라처럼 틀을 깨고 성장했느냐고. 진짜로 당신이 사춘기를 지나간 것이 맞느냐고.

 사춘기를 보내는 청소년 그리고 여전히 사춘기 한가운데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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