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글쓰기 9.
채널을 보내다가 홈쇼핑 채널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러면 안 됐는데 말이다. 사주에도 고집이 세다고 나올 만큼 나름의 기준과 줏대를 가지고 살고 있는데 귀는 굉장히 팔랑거리는 편이다. 그래서 홈쇼핑 채널은 잘 보지 않는다. 보다 보면 필요가 없던 물건까지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꾸만 홀린 듯 주문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 머리숱이 부쩍 적어진 것 같다. 머리숱이 많은 편이고 머리카락이 두꺼운 편이라 머리숱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 두지 않았다. 예전에 주변 언니들이 머리숱을 걱정하고 신경 쓸 때도 두피케어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고 하여 남 일처럼 무심히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세월에 장사 없다던 어른들 말씀은 틀린 구석이 없었다 보다. 머리숱이 많은 만큼 머리도 많이 빠지는데, 요즘 들어 새로 나는 머리가 줄어든 것인지 머리를 묶을 때마다 왠지 예전보다 줄어든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나에 비해 머리숱도 적고 머리카락도 얇은 남편의 정수리도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띄게 비어 보이기 시작했다.
탈모에 관심이 생기니 두피케어 제품이 눈에 쏙쏙 들어오기 시작한다. 두피케어 제품이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다. 대체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열광했던 걸까. 환경 관련 문제로 온 세대가 탈모를 겪고 있는 건지 아니면 소비할 지갑이 비교적 두둑한 4050 세대의 주 고민이 두피케어로 옮겨가며 시장이 커진 것인지는 궁금해졌다. 그렇게 우주를 떠돌던 두피케어에 대한 나의 관심은 결국 홈쇼핑 채널에 가닿은 것이다!
쇼호스트는 자기가 두피에 수천만 원은 썼다면서 침을 튀겨가며 열성적으로 제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홈쇼핑 제품 특성상 장점이 과하게 부풀려지고 있다는 의심을 하면서도 채널을 돌릴 수가 없었다. 정말 제품이 효과가 있는지 궁금했고, 탈모 때문에 우울증까지 걸려 자신을 걱정했다는 어머니 얘기에 울컥하는 쇼호스트의 모습에서는 진정성마저 느껴졌다. 머리를 쥐 뜯어가며 ‘절대‘, ’결코‘ 이런 단어를 붙여가며 이 제품이 유일하다고 호소했다.
두피케어에 이제 막 관심을 갖은 터라 내 머릿속 두피케어 섹터는 텅 빈 상태였고 당연히 비교군도 없었다. 좀 더 알아봐야겠다고 중얼거렸지만 사실 60%쯤 넘어온 마음을 부정하고 싶은 미약한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결국 오늘 사지 말라며 흥분하며 말하는 대목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스마트폰을 찾았다. (다음 편성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슬쩍 덧붙여서 구매할 수밖에 없게 했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저는 살게요, 제가 살게요!
저 제품을 판 돈으로 쇼호스트는 머리카락을 심어도 되겠다 싶었지만 결국 배송지 입력을 마쳤다. '매진 임박', '지금 이 구성은 오늘뿐'이라는 단어에 나는 왜 매번 넘어가는 걸까. 사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매진임박의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지금 만약 동시 주문이 500명인데 방송이 20분 남았다면 1만 대가 남아 있어도 매진 임박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 구성은 오늘뿐이지만 심지어 더 좋은 구성이 내일 나와도 이 구성이 오늘뿐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니 말이다. 앱까지 다운로드하여 쿠폰을 적용해 오늘도 야무지게 구매했다. 나는 분명 산 게 없는데 카드값이 많이 나왔다며 명세서를 훑어본 게 바로 지난 달인 거 같은데 데자뷔처럼 이달 말에 또 그러게 생겼다. 그렇지만 저 쇼호스트가 대체 얼마나 과장한 것인지는 확인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그의 말이 확인되면 저 쇼호스트 방송을 찾아다니며 무슨 제품인지도 모른 채 구매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럼 과연 이 제품은 효과가 있는 것이 좋을까, 오히려 없는 것이 나을까. 미래 구매를 예상한다면 놀랍게도 효과가 없는 것이 나에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제품이 효과가 있으면 좋겠다. 그럼 머리도 나고 저 쇼호스트는 돈도 벌고 신뢰도 얻겠지. 이렇게 서로 윈윈 하며 이 충동구매는 막을 내리길 바란다.
오늘의 글자수 :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