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글쓰기 11.
책을 오래 기억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약을 하나 먹었다. 찜질팩을 끌어안고 책을 집어 들어 소파에 누웠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좋아서 산 산문집이다. 좋았던 기억은 뚜렷한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앞부분은 읽어서 1/3쯤 되는 지점을 펼쳤다. 앗, 이 에피소드 읽었는데! 하며 넘어간다. 엇, 여기도 읽었네. 조금 더 뭉텅이로 페이지를 넘겨본다. 넘기다 보니 어느새 거의 책 끝자락이다. 이쯤 되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책을 거의 다 읽었었구나. 어쩜 이렇게 기억이 안 나는지. 소설은 그래도 얼핏 얼핏 기억나는데 산문은 이런 경우가 자주 있다. 친구의 친구 동생 사연, 아는 언니의 친구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실은 여러 산문에서 읽은 것이었다. 사돈에 팔촌이면 온 국민이 연결된다니 누군가의 산문이 친구 언니 동생의 친구 정도의 사연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논픽션보다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좋아한다. 나에게 독서는 재미 그 자체인데 후자가 더 재밌기 때문이다. 논픽션을 책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아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세계 각지 사람들의 이야기, 과거와 미래까지 퍼진 방대한 스펙트럼 속의 사연들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러니 아마도 더 자세하고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옆집 친구의 이야기로 흡수해 버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기억하고 싶다.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서도 많은 인생을 배우고 있는데, 그걸 한 송이, 한 송이 꽃으로 만들어 간직하고 싶다. 그래서 톡 하고 건들면 각자의 향과 빛깔이 파도처럼 날 덮쳐왔으면 좋겠다. 그 소설을 읽던 순간으로 데려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은 다 말라서 빛바랜 꽃다발을 회상하듯 한다. 잘못 건드리면 파사삭 바스러져 버린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필사와 서평, 독서 모임. 내가 기억을 좀 더 오롯하게 하는 방법들이다. 읽으며 아무리 깊은 감상에 빠져도 소용이 없었다. 한 줄이라도 쓰면서 곱씹으니 적어도 그 장면은 기억난다. 서평을 쓰려고 집중하다 보면 인상 깊었던 인물이 기억난다. 독서 모임은 그중 최고다.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하나는 내 이야기를 하려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느낌과 생각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두 부분이 함께 시너지를 이뤄야 하긴 하지만 메인은 뒷부분이다.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정말 다양한 감상이 있다. 나와 비슷한 감상을 들으면 흐릿했던 생각에 확신이 들며 한결 또렷해지는 것을 느낀다. 미처 생각지 못한 시선에 놀라고 예상하지 못한 해석에 감탄한다. 그러면서 또 새로운 감상이 탄생한다. 평면의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흑백의 사연에 총천연색이 입혀진다. 그래서 나의 독서 역사는 독서 모임 이전과 후로 나뉜다. 이것이 자꾸만 독서 모임을 더 하고 싶은 이유다. 독서 모임 책을 읽느라 지새우는 밤이 쌓여도 기꺼이 계속할 것이다. 읽고 싶은 다른 책들이 자꾸만 밀리는 것이 아쉬워도 독서 모임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내가 읽은 책들을 바스러지지 않게 할 것이고, 생생하게 유지되며 내 마음과 머릿속에서 정원을 이룰 것이다. 파릇파릇한 풀잎들이 손끝에서 만져지는 듯하고 싱싱한 꽃잎 향기가 코끝에 맴도는 듯하다. 이럴 때가 아니다. 어서 다음 모임 책을 읽기 시작해야겠다!
어떤 방법으로 책을 기억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