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배기 내 인생
엑기스
:원액 또는 진액을 뜻하는 외래어.
국어사전상 표준어로는 '진액(津液)'을 표준어로 제시하고 있으나, 원액이나 청(식재료)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애초에 국내에서는 액체에서 수분의 비율을 낮추어 농도를 높인 농축액과 고형 식재료에서 일부 성분을 추출한 추출액, 물리적인 변형을 통해 액체를 얻어내는 즙 등에 대해 모두 엑기스로 퉁치고 있어 일대일로 대응하는 표현을 정의하기가 어렵다.
이 '엑기스'란 표현은 영어 extract([ˈekstrækt], 엑스트랙트)의 ex를 일본에서 エキス라고 읽은 데에서 비롯했다. き 문서에서 보듯이 일본에서는 미파음 [k]을 'ク(쿠/크)'가 아닌 'キ(키)'로 적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엑기스 또한 이런 연유로 '에크스'가 아닌 '에키스'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액기스'나 '에끼스'라고 표기되기도 하나 외래어 표기상 엑기스가 맞는 표현이다. ㅡ출처 나무위키ㅡ
나이 들어서 호르몬과의 전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릴 때부터 저질체력이었으며 온도, 기압, 습도, 거기에 '내 기분'과 '네 기분'에까지 민감해져서..
몸 이곳 저곳이 아프거나 삐그덕대거나 열이 오르내리던 나였던 터라 이제사 새삼 유별날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증세들이 계속되는 요즘이다.
학생, 교사로 학교라는 시멘트 그릇 안에서 살아온 세월이 자그마치ㅡ육아휴직 기간을 빼고서라도ㅡ30년이 넘어가는 요즘은 부족한 운동량을 채워보겠다고 복도를 활보하기도 하고 괜스레 쓰레기를 나누어 담아 쓰레기배출장소에 들락날락하기도 해본다.
집에 오는 것이 퇴근이 아닌 삶이, 육아가사로의 출근인 삶이 17년째...
그래도 집순인 집이 최고라며, 홈웨어로 환복 후 무거운 숨이 쉬어지고 맘의 짐이 내려놔지지만 역시나 저녁메뉴가 갈등되고, 아이들 공부가 걱정되고, 건강이 염려되고 또 친구관계가 맘쓰여 나는 다시 집에서의 고민들을 가슴에 하나둘 주워담기 시작한다. 내일 출근길에 내려놔질 수 있는 시커먼 이것들.
어릴 때 저녁마다 ㅡ오늘은 뭘 먹지?ㅡ하던 엄마의 말이 저녁을 차리려 싱크대 앞에 선 내 귓가에 환청인 듯 스치는 건
그 때의 엄마만큼 나도 나이 들고, 엄마만큼 지친 하루의 ㅡ저녁식사라는ㅡ마지막 미션을 완수하려는 마음에서인지도 모르겠다.
뱉지 않는 많은 고민들이
시멘트 벽에 막힌 듯 쌓여만 가는,
그래서 생기 넘치는 아이들이 없으면
유령도시 같은 학교 속에서
그리고 각 방마다 차지한 고뇌하는 인간들이 사는 이 집 속에서
나는 맘껏 숨쉬고, 웃어본 적이 언제였나 싶다.
시나브로 스며드는 검은 기운에
몸 이곳 저곳이 고장나는 줄도 모르다
처음엔 불면증이 오래 되었고
두통에 시달렸고
그것들이 사라질 즈음엔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기가 힘들었고
허리가 나으니 이석증으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고
모든 장기들이 살려달라 아우성치는 것만 같았다.
그 아우성은 꼭...
ㅡ휴, 살았다.ㅡ할 때 불현듯 나타나곤 한다.
왜...
나라는 인간에게 부여된 임무들 완수하느라
그 아우성을 잠재워야 할 터.
집에 약들의 숫자가 늘어남은 두 말하면 입 아프고, 펜트리 안 쪽엔 또 하나의 카테고리가 영역을 넓혀간다.
바로 즙. 진액. 원액...
입에 착 붙는 단어로 말하자니 딱
엑기스
에스트로겐이 부족할 땐 이게 최고라는 석류즙.
환절기 건조한 목에 배도라지즙.
몸이 허하다고 지인이 보내준 녹용엑기스.
위장이 고장났을 때 먹는 거라는 양배추즙.
끼니 전후사이사이에 먹어줘야 하겠는데, 하나 둘 먹다보니 주식이 즙이 되고, 간식이 밥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게 식습관에 오류가 생겨버렸고, 이럴 바엔 삼시세끼 잘 챙겨 먹는 게 낫겠다 싶지만 또 놓지 못하고 이 순간도 드그르륵 뚜껑을 돌려 뜯어 입에 들이킨다.
이 쯤 되니, 이 행위들은 건강을 챙기려고 하는 것인지 내 속을 위로하려는 것인지 아는 척 모르는 척.
즙으로 시끄럽고 망가진 속을 위로하니, 눈으로 짜내던 즙의 양이며 횟수도 줄어든 걸 보면 또 그렇게 아무 효과 없는 건 아닌 것이 분명한데, 볼 때마다 차라리 나가서 걷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역시 운동이 부족한 게 맞는 거지.
바람막이를 걸치고 마스크를 챙기고 신발장에서 오랫동안 꺼내지 않던 운동화를 꺼내 신는다.
오늘은 내 속을 즙으로 달래지 않아보겠다는 의지로.
한참을 걸으니 후끈해진 몸. 속이 터질 것 같을 때 당연한 듯 눈을 타고 흐르던 즙이, 이제 드디어 이마를 타고 흐르는 것이다.
삐그덕대는 몸에 윤활유가 되어 관절도 마음도 부드럽게 움직여주는 것이다. 부드러운 내 맘 속 땅에서 뽀드득 싹이 움트는 것이 느껴진다.
석류나 양배추 엑기스 따위로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그 싹.
내 움직임, 들여다봄으로 드디어 피어나는 싹. 잊고 있던 진정한 내 엑기스를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모아볼 때다.
엑기스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거듭나보겠다.
마음이 부유해지는 소리를 들어보겠다.
내 알짜배기 인생.
엑기스 인생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