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게 속도를 줄이고 옆으로 물러서 주는 일
출근길에는 늘 같은 노래를 틀어둔다. 한 달 전쯤부터는 딱히 어떤 곡을 골라서 듣는 것도 아니다. 처음 며칠은 신중하게 고른 재즈 플레이리스트였는데, 지금은 그저 어제 들었던 걸 오늘도 흘려보내는 식이다.
음악은 점점 배경이 되고, 창밖 풍경도 마찬가지다. 도로, 차선, 신호등, 아파트 공사장 옆의 푸른 방진막, 다람쥐처럼 아침마다 출몰하는 등굣길 아이들, 그런 것들이 하루하루 조금씩은 달라져도 눈은 그걸 다 알아채지 못한다.
사람은 익숙함에 무심해지는 데 천재적인 존재다.
그 익숙함 속에 어떤 풍경이 있다.
나는 그 길을 언제부턴가 ‘배려의 내리막길’이라고 혼자 부르기 시작했다.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 직진차선인데도 우회전하려는 차들을 위해 사람들이 옆으로 비켜주는 구간이 있다. 우회전 전용차선은 따로 없다. 고작 내 차 한 대 지나가려면, 최소한 스무 대쯤의 차가 조금씩 왼쪽으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 그것도 정확한 타이밍에.
아무도 그걸 강요하지 않았을 텐데, 누구는 그걸 보고 익혔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마 처음엔 머뭇거리다가 따라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묵묵한 질서.
나는 그 구간에서 매일같이 배려를 받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다리를 하나씩 디뎌가듯, 사람들의 조용한 마음 위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마다 묘한 감동이 있다.
그게 뭔지는 딱 잘라 말할 수 없지만, 아주 오래된 인간애 같은 것이기도 하고, 너무 조용해서 더 크게 다가오는 ‘함께 살아가는 일’의 증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늘 그렇듯, 감동도 익숙해지면 배경이 된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우회전을 하려고 오른쪽 차선에 섰다. 그런데 앞차가 요지부동이었다. 초행길인지, 아니면 그 무언의 질서를 모르는 사람인지.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신호는 천천히, 그러나 무심하게 지나갔다.
한순간, 짜증이 피어올랐다.
‘왜 비켜주질 않지? 여긴 다들 알아서 해줬는데.’
그리고 그 순간, 불쑥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마치 원래 그런 것처럼,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도로처럼 받아들이며.
고맙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나왔던 수많은 아침을 떠올렸다.
감사는 작고 조용한 마음인데, 그것조차 자주 돌보지 않으면 금세 잊힌다.
나는 그날, 오히려 길이 막히는 순간에 ‘비켜주지 않는 차’를 통해 그동안 받았던 모든 길을 다시 떠올렸다. 묵묵히 왼쪽으로 붙어주던 차들, 아무 말 없이 멈춰 서 있던 사람들, 때로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하던 운전자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더없이 귀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람은 본디 자기중심적인 존재고,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진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그 길에서 작고 단단한 희망을 본다.
함께 쓰는 길에서 한 사람쯤은 비켜줄 줄 아는 마음.
그게 이 도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세상은 거대한 변화로 좋아지는 게 아니라, 그런 작은 배려로 간신히 지탱되는 것 아닐까.
나는 오늘도 그 길을 지난다.
누군가가 비켜주는 길을 지나, 천천히 우회전한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잊지 않으려고 한다.
감사의 마음은 무뎌지기 마련이니, 늘 경계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
익숙함 너머에도 마음이 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길은 아주 완만한 내리막이다.
브레이크를 세게 밟을 필요도 없이, 부드럽게 굴러가듯 자연스레 내려가는 길.
배려 역시 그렇다. 누구 하나 힘줘 밀지 않아도, 서로 조금씩 비켜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어느 정도는 굴러간다.
그렇게 내리막길을 달리며, 나는 문득 인생을 떠올린다.
살다 보면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많아지는 시기가 있고, 그때야말로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힘껏 앞으로 가는 것보다, 부드럽게 속도를 줄이고 옆으로 물러서 주는 일.
그게 나이 들수록 배워야 할 삶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천천히, 배려의 내리막길을 지난다.
조용히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