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참나무, 나의 도토리
내가 얻고 뿌린 것이 사랑이었으면
가을이다.
하늘이 높고 오후 햇살이 따갑다.
"아, 추워."
딸아이가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와 나란히 걷고 있었고 그늘 아래를 지나다가 선선해진 바람에 춥다며 말했다.
절기는 참 정확하다. 입추였던 그날 밤부터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됐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잠을 잘 수 있었으며 새벽녘에는 껴안고 있던 이불을 끌어올려 포근하게 덮으며 선잠을 다독이며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이제 곧 긴 옷을 꺼내 입어야 하고 수확의 계절을 맞아야 한다. 문득 잠옷 차림으로 문밖을 나서고 뛰어놀던 아이들 어린 시절의 그 여름이 그리웠고, 또 이 여름이 가는 게 아쉬웠다. 여름도 한 번씩 갈 때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도 추억 속으로 이렇게 한 해 한 해 멀어져 간다.
몇 달만 있으면 이 뜨거운 햇살도 그리운 날이 오겠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수확을 마친 들판은 쓸쓸해질 것이고, 숲은 분주해지겠지. 언젠가 치악산 자락에 올랐을 때, 겨울 먹이를 가득 모아 여기저기 나무 밑에, 덤불 아래, 땅 속에 숨겨놓던 다람쥐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겨울 준비를 하던 녀석들. 숲 해설을 해주시던 해설가의 말에 의하면 하나의 참나무에 300개에서 1만 개의 도토리가 열리는데, 그걸 따다가 저 많은 곳들을 다 기억할 리 만무해서 다람쥐들은 자신이 어디에 숨겨놓았는지 잊어버리기 일쑤라고 했다. 청설모도 마찬가지. 그렇게 묻어놓고 잊어버린 도토리들은 겨울을 보내고 다음 해 봄이 되면 어딘가에서 싹을 띄워 새 나무로 자라난다고 했다.
나무가 열매를 내어주고 그 대가로 숲 여기저기에 새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숲, 땅을 자세히 보면 연초록의 참나무 싹이 뾰족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름이면 제법 나무 같은 모습이다. 뭐 아직 땅꼬마이긴 하지만. 그 연초록의 어린 생명을 보고 있으면 엄청난 에너지를 느끼며 벅차오르게 되곤 했다. (뭐 참나무만이겠어? 잣나무도, 밤나무도 모두 모두)
가을 공기를 느끼며, 다람쥐를 떠올리다가 다시 '나'에게로 생각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나의 참나무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어떤 도토리를 안고 다니다가 어디에 얼마만큼 숨겨놓았을까? 내 삶 여기저기,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 숨겨놓은 도토리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들을 찾고 싶었다. 찾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생각나는 내 흔적들을 엄청 찾고 싶다.
찾을 수 없을 거란 걸 안다. 참나무가 내게 준 300개에서 많게는 1만 개의 도토리. 그 많은 것들 중의 또 많은 것들을 어디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니,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아쉬워할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한다. 내가 어딘가에 떨어뜨리고 잊어버린 그것들이 새 생명이 되어 연초록으로 파릇파릇하게 피어났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영험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그럴 거라는 믿음이다.
내가 따러 다닌 것이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그 사랑을 어딘가에 많이 떨어뜨려놓은 것이면 좋겠다. 내가 잊고 지나온 많은 겨울, 그 겨울을 지나서 봄이 되었을 때 또 다른 작은 사랑으로 여기저기에서 움트고 돋아나고 자라났으면 좋겠다.
인류애를 잃은 지금... 과거의 내 것은 진심으로 그것이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나무 중 네가 참씨인 것은
단단한 성깔 아꼈다가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는
손잡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정록 <참나무>
…
참나무는 10년이면 제법 어른 나무로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교직에 나와서 아이들에게, 또 학교 밖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잊어버린 사랑. 그 열매들이, 내가 지내온 그 시간 동안 싹트고 자라서 어딘가에서 단단해지고,
그래서 세상과 따스하게 잘 이어지고 있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