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우고 간 사람

이해하고 사랑하니까 못나게 보지 않는 나만의 사람들

by 여름둘겨울둘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다.
아버지 기일이 가까워졌다는 얘기다.



언니들과 평생 배워야 되겠다는 얘기를 하다가
아버지 수첩에 적힌 메모가 생각났다.



아버지 기일은 바람이 지독히 불던 늦가을이었다.
팔이 잘린 듯한 고통에 휩싸였던 그런 슬픈 날에도, 어머니는 다 큰 자식들 추울까 봐 걱정이셨다.



자정을 몇 분 남기고 돌아가신 아버지, 밤 사이에 장례식장으로 갔었고 자고 일어나 꼬박 하루를 보내고, 셋째 날은 날이 너무 추워서 장지에 일찍 가야 된다고 해서 3일장이 만 3일장이 아니게 된 그런 장례였다.
남겨진 가족들 힘들지 말라고 계산하고 가신 것처럼 그렇게...

집에 온 어머니.
야속한 마음에 아버지 물건들은 모두 태워버리시기에, 수첩을 몰래 가져와 찍어두었던 유언 같은 말들.


늘 수첩에 글을 적으셨던 아버지.
난 그 모습이 참 좋았다.
공사도면 이면지를 가지고 와서 다섯 살 된 막내딸한테 한글이며 한자를 가르쳐주시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좋았다.
사춘기를 거치며 멀어진 거리.
그럼에도 아버지의 글 쓰는 뒷모습이 참 좋았다.
어린 날 내게 글을 가르쳐주시던, 웃으시던 아버지 모습이 생각 나서였을까?


집을 일으키느라, 학비 대느라 고생 많았던 아버지.
그 틈에 멀어진 아버지와의 마음의 거리는 아버지에게 쓸쓸함으로 다가왔을 터다.
소주를 들이켜고 취해 귀가해야만 자식들에게 우스갯소리를 하며 다가갈 수 있었던 외로운 시간들.

그래도 아팠던 그 시간들 동안
가족들이 내 편이고
나를 사랑해 주는
내 사람.
이란 걸 알고 가셔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아버지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
우리가 채워드릴 수 있어서..

난 부모가 가지 말라고 했던 길을 걸으며
불효를 저지르면서도

그래도.. 다행이다, 다행이다.. 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
마지막에 가져갈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바로 사랑이므로.


사랑을 배우고 간 사람.
아버지.

떠올리는, 바람 부는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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