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빗질
동물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여름이와 겨울이, 우리 집 두 강아지의 진드기약과 심장사상충 약을 사러 가야 했다.
평소 같으면 두 녀석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간단한 건강검진도 함께 받곤 했는데, 오늘은 그럴 기운이 도통 나지 않았다.
한 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강아지 약 먹이는 날짜를 거르긴 처음이다.
오늘은 나 혼자 터덜터덜 병원으로 향했다.
낯익은 접수대 앞에서 여름이와 겨울이 이름을 말하고 약을 받아 나오려는데,
의사 선생님이 병원 안쪽에서 나와 반갑게 인사를 건네셨다.
“오늘은 여름이랑 겨울이 안 왔네요?”
그 물음에 난 어색한 웃음만 건넸다.
내 기운 없는 낯빛을 보셨는지, 의사 선생님은 본인의 몸에 밴 친절로 말을 덧붙이셨다.
“요즘 진드기가 아주 기승이에요. 풀 많은 데 한 번만 가도 기를 쓰고 붙습니다. 찬 바람 불기 시작하면 애들도 본능적으로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 싶어서 사력을 다하거든요.
그러니까 외출 후엔 꼭, 진드기 빗으로 싹싹 털어주세요. 혹시라도 숨어 있는 거 다 털어내고 들어가셔야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런 나를 보며 선생님은 한 번 더 강조하셨다.
“꼭. 꼭 다 털어내고 들어가세요. 꼭이요.”
그 말이 병원 문을 나서는 내 머릿속에 콕 박혔다.
털어내야 한다. 반드시.
진드기를. 아니, 진드기 같은 것들을.
학교에선 요즘 “재미없다”는 말이 일상이다.
옆 반 선생님, 동학년 선생님, 점심을 같이 먹는 선생님들까지 한결같이 말한다.
“요즘 학교 왜 이렇게 재미없냐…”
나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대신
“에고… 어떻게 하면 좀 신이 나실까요?” 하고 되묻는다.
대체 무슨 답을 기대하고 묻는 걸까. 나조차도 모르겠다.
오래간만에 통화한 대학 동기 역시 기운이 없었다.
“나 요즘 터무니없는 민원에 시달리면서 점점 기운이 빠져.
가끔은 내가 평생 학부모 비위만 맞추고 살아온 게 아닌가 싶어.
그러다 하늘로 먼저 간 선생님들 떠올리면… 다 나 때문인 것 같아.
그때 ‘이건 아니다’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 말은 통화선 너머에서 들려왔지만, 내 마음 깊은 데서 울렸다.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지 못한 나 역시,
수많은 것들에 눌려 진드기처럼 붙어 있는 무언가를 달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 몸과 마음에 진드기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잡념, 후회, 자책, 피로, 무기력…
그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나를 병들게 했다.
이제라도, 시간 정해 놓고 빗질을 해야겠다.
내 마음도, 내 일상도, 내 관계들도.
하루 한 번, 아니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좋다.
진드기처럼 붙어 있는 걱정과 후회를
빗으로 정성껏,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털어내야겠다.
찬 바람이 불면 진드기가 사력을 다해 달라붙듯,
힘든 시기일수록 잡념도 더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이럴 때일수록 빗질이 필요하다.
생각의 빗질, 마음의 빗질.
요즘 뉴스를 보면 더 지치기만 한다.
숨이 턱턱 막히고, 세상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아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럴 때, 병원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꼭. 다 털어내고 들어가세요.”
나를 괴롭히는 것들, 기생하며 힘을 빼앗는 것들을
그냥 두지 말고 하나하나 빗어내자.
나를 가볍게, 깨끗하게, 다시 숨 쉴 수 있게.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혹시 진드기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잡념들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잠깐 멈춰 빗질 한번 해보자.
오늘 밤엔 가볍고 맑은 몸과 마음으로
푹, 잘 자기를.
우리, 진드기들 잘 털고
내일은 조금 더 건강하게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