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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un 01. 2021

스페인의 종교는 곧 일상이다

일상에 스며든 종교를 찾아서

스페인은 잘 알려지다시피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다.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스페인을 보기 전 우리나라를 먼저 알아보자. 우리나라는 골목길에는 점집이, 아파트 상가에는 개신교회가, 동네 별로는 성당이, 등산하러 가는 곳에 사찰이며 암자가, 그 밖에 어느 특정 종파가 탄생한 지역에서는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로 크고 웅장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건축물이 있는 가히 <종교 백화점>이다.


자신은 몇 대째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점을 언급하는가 하면, 또 누구는 통일신라 시대 때부터 전국에 사찰을 세운 집안이라는 식으로, 저마다의 종교색이 뚜렷한 국민들 사이에서, 종교의 차이 때문에 개인 간 다투는 일은 있어도 피를 보지 않는 건(!), 우리나라만의 특징 중 하나이다. 새해면 상당 수가 토정비결을 보며 시작하고, 이후 불교의 석가탄신일에 쉬고, 단군의 개천절을 기념하며,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는 전국민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제정분리인 나라에서 각 종교의 중요 행사가 국경 휴일로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외지인의 눈으로 볼 때, 종교학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나라로 인식된다.




스페인의 종교는 어떨까? 스페인은 누구도 부인 못할 가톨릭 국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럽과 성당 건축물부터 시작해 정서나 문화적인 면에서 분위기가 사뭇 다른 점은 역사적으로 이슬람의 영향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스페인은 어디를 가든 좀 크다 싶거나, 눈에 띄거나, 마을 중심에 있는 건물들은 예외 없이 성당이다. 사실 이건 스페인뿐만 아니라 국가마다 개성 뚜렷한 유럽에서, 신기할 정도로 통일성 또는 유사성을 가지는 점이다. 그래서 유럽 좀 다녀봤다 싶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볼멘소리 내지는 뭐 아는 것처럼 유세를 떨 때 하는 말이 있다.


어디를 가든 맨 성당이랑 박물관이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지만, 딱히 부인하기도 어렵다. 거기서 거기 같아 보이는 그 안에서도 실은 엄청난 역사가 숨겨져 있다. 다만, 인간의 지식과 지혜 중 가장 고상할 것 같은 종교에서, 서로의 차이를 논리와 이성으로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꼭 피를 봐야 했던 지난 과거의 흔적들은, 후대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도 사실이다. 


교리가 달라 이단으로 낙인찍혀 부관참시를 감행하고 (존 위클리프, 1415), 화형에 처하는 일부터 시작해(얀 후스, 1415), 성인의 축일을 기해 눈 하나 깜짝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을 자행하던 광기 어린 일(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1572)을 찾아보면 그들이 말하는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서 할 짓인가 싶다. 


국지적으로 일어난 사건뿐이랴. 아예 종교를 빌미 삼아 이 참에 어떻게든 자국의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정치적으로 나뉘어, 종교적으론 반대 입장임에도 엉뚱하게 적의 편을 들어서 30년이나 지난한 전쟁을 치렀던 것(종교전쟁, 1618-1648)도 유럽 근대 역사의 단골 소재다.


종교를 둘러싼 분쟁은 현대나 앞서 기술한 근대의 일만도 아니다. 중세 당시 절반 가까운, 무려 400년에 달하는 중세의 절반에 해당되는 기간 동안 (1095-1492) 광신적인 종교인의 행태를 보인 십자군 전쟁을 보라. 종교가 권력을 쥐면 가장 순수하고 경외로 삼아야 할 대상이 세상에서 제일 타락하고 환멸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그 옛날 고대 문명 시대부터 종교는 왕국을 지배하는 통치 사상이자 서민의 삶을 지탱해 주는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했다. 인간의 말에는 거역할 수 있어도, 신의 말씀에는 무조건적인 복종과 순종만이 따라야 했고, 그래야 그들의 안락한 사후 세계를 보장받는 일종의 보험이 되어 준 셈이다. 정치적 기반이었던 종교가 스페인에서 어떻게 일상으로까지 들어왔는지를 살펴보자.





종교재판


미안하지만, 어두운 면부터 잠시 확인해 보자. 스페인의 역사에서 짚고 가는 것 중 하나가 악명 높은 <종교재판>이다. 1478년부터 1834년까지 350여 년간 진행된 가톨릭의 종교재판소로, 스페인 전역에서 전대미문의 이단 심문이 있었다. 처음 시작은 이단을 막기 위한 교화의 수단이었지만, 통일 이후 유대인 탄압, 무슬림 탄압, 개종 강요 등 정치적 통치 목적으로 악용되어 부패하고 타락하며 기능이 변질되었다. 정말 종교적인 차이라든지 교리적으로 문제가 되어서 기소가 되었다기보다는 거짓 모함이나 밀고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생각해 보라.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일이 쉽지 않았던 그 시절에, 농민, 상인, 장인들과 같은 일반인들이 무슨 여력이 있어 종교에 목숨을 걸 정도로 진리를 추구했겠는가. 마을의 희생양을 삼아 기강을 확보하고 세를 나타내기 위해 마녀사냥하듯 힘없는 사람들이 잡혀 왔다. 유도신문으로 시작해, 고문, 거짓 자백, 감금, 화형 등으로 30만 명이 연루되어 그중 3만 명이 죽었다는 보고가 있는가 하면, 15만 명 기소에 2천 명만 처형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어떤 문서에서는 희생자가 무려 200만 명에 달했다는 등 기실 숫자에서 어느 것 하나 믿을 만한 자료가 없다. 


숫자가 어찌 되었든지 간에, 종교재판을 통해 전국에서 강제 개종 및 추방이 이루어지면서 유대인과 무슬림을 판별하기 위해 음식이 발달하게 된다. 바로 그들이 금기시하는 돼지고기이다. 스페인에 살던 유대인과 무슬림에겐 눈물 젖은 빵 대신 눈물 젖은 <하몬 Jamón 스페인식 생햄>과 <꼬치니요 Cochinillo 새끼돼지 요리>인 셈이다. 


스페인의 종교재판에 대해서는 나탈리 포트만, 하비에르 바르뎀,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주연한 2006년 영화 <고야의 유령>에서 1800년대 전후 시대적 배경을 두고 스페인의 유명화가 프란시스코 고양의 시선으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스페인 국민의 70%가 가톨릭이라 하지만, 막상 일요일 성당에 나가보면 노인들만 자리에 있는지에 대해, 대부분은 관광지가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에서 가톨릭은 여전히 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다. 근대 이전의 시대로 올라가 보자.


영화 <고야의 유령> (출처: 핀터레스트) //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몬과 새끼돼지요리 (출처: 스페인 한량 스티브)




마리아와 야고보, 그리고 레콘키스타


가톨릭을 받아들인 서고트 왕국이 내분으로 무너지고 그 틈을 북 아프리카의 이슬람이 틈타고 넘어와 이베리아를 반도를 손에 쥐던 당시, 북부 아스투리아스 지방으로 쫓겨난 가톨릭인들이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일어났던 계기가 바로 동정녀 마리아의 계시였다. 전쟁 한 번 치러본 적 없는 마리아가 어떻게 그들에게 평화나 화친이 아닌 전투에서 승리를 안겨주는 계기가 되었는지는 이성의 영역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718년 이슬람과의 첫 접전인 코바동가 전투의 승리 이후에도, 국토회복운동 (레콘키스타) 기간 동안, 스페인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마리아의 발현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레콘키스타를 승리로 이끌어 주는 분이 마리아라면, 그들의 전쟁에 명분을 더해주는 분이 있으니 예수의 제자 야고보이다. 예수님의 제자 중엔 두 명의 야고보가 있었는데, 하나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이고 또 다른 분은 알패오의 아들인데 (또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보기도 한다), 스페인에서 언급되는 인물은 전자이다. 그는 사도 요한과 형제관계였고, 별명이 보아너게, 곧 천둥의 아들이었다. 그의 성격이 짐작되는 별명이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뚜렷한 활동이 없지만, 가장 먼저 순교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천둥의 아들답게 책 보다 칼을 쥐고 아랍인들을 무찌르는 것으로 성당 조각과 그림에서 수없이 묘사된다. 


클라비호 전투의 성 야고보 - 세비야 대성당 성화 (출처 위키피디아)




스페인의 영희와 철수, 마리아 요셉 예수


영어회화 수업을 들어본 이들이라면, 첫 수업 때 본명 대신 영어식 이름을 지어 본 추억이 있을 것이다. 누구는 그것으로 이메일 주소를 삼기도 하고, 어학연수 또는 교환학생을 거쳐 나중에 직장에 가서도 당연히(?) 자신의 이름인 것 마냥 쓰기도 한다. 본래 이름이라는 것은 남이 짓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희한하게도 영어 이름만큼은 본인이 짓는 재미난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영미권 사람들이 우리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영어 이름도 지어준 것이냐고. 


그런 이름의 태반이 성경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러니 그들의 이름은 사실상 절반은 히브리어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리스어에서 따온 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을 영어-스페인어-한국어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Mary - María - 마리아

Joseph - José - 요셉 (호세)

James - Iago / Santiago - 야고보 (이아고, 산티아고)

John - Juan - 요한 (후안)

Peter - Pedro - 베드로 (페드로)

Paul - Pablo - 바울 (파블로)


여기에 스페인에선 한 가지 더 흔하게 부르는 이름 중 하나가 바로 예수 Jesús (헤수스)다. 우리는 예수'님'이라 부르는 것에 익숙해서, 처음에 이들이 서로 올라 헤수스 (안녕, 예수야)라고 부르는 걸 들으면, 불경스러운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마리아, 호세, 헤수스는 우리나라의 영희, 철수만큼이나 정말 흔한 이름이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스페인어권에 있는 중남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식당이나 거리에서 위 이름 중 하나를 (실수로) 불러보면, 대번에 고개 들어 쳐다보는 사람들이 네댓은 된다에 1유로를 걸어도 좋다. 실제로, 초등 4학년 둘째 녀석 반 아이들 22명 중에 파블로만 무려 네 명에 달한다. 그러면 어떻게 구분할까. 의외로 단순하다. 이름에 성까지 다 부르면 된다. 파블로 만사나레스-가르시아, 파블로 페르난데스-구티에레스 등... 성경 속 사도 바울이며 동정녀 마리아가 스페인에선 거리에 가득하다.


재밌는 건, 스페인에선 특별히 예수, 마리아, 요셉, 이 성가족 인물들을 얼마나 애지중지 하는지, 이름을 하나만 두기엔 아쉬워서 인지, 둘 또는 셋까지 다 붙여지어 주는 경우도 많다. 더 웃긴 건, 당사자들은 정작 부여받은 이름보다 자신이 앞뒤를 자르고 붙이는 식으로 다시 줄여서 부르는 경우까지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어지간한 이름은 단 두음 절 만에 끝내는 우리로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풍습이자 해괴한 일일 것이다. 


예를 들면,

María, José, Jesús를 기본으로

MaríaJosé, JoséMaría, MaríaJesús... 2단 콤보로 올리고

MaríaJoséJesús, JesúsMaríaJosé, JoséMaríaJesús, 3단 패키지까지 장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자기 이름이 너무 길다며 이를 다시 저마다 멋대로 자르고 붙이거나, 아예 다른 이름으로 바꿔서 상대방에게 이런 식으로 불러 달라고 한다.


예를 들면, 

안녕, 내 이름은 호세마리아야, 하지만 그냥 체마Chema 라고 불러줘, 알겠지? (응? 뭐라고?)

(이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우리처럼 2음절만으로 이름을 지으면 서로 좀 편하고 좋을까. 다시 한번 세종대왕님 만세다.)


더 했다간 종교라는 항목에서 종일 이름만 얘기하다 지면 다 채울 거냐란 소리 들을 것 같다. 중요한 건, 그만큼 스페인 사람들에게 종교란 이미 저들의 이름에서 날마다 불릴 정도로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름에 얽힌 퀴즈. 

위 세 가지 이름으로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얼마일까요? 수학 잘하시는 분께 맡깁니다. 답은 이 글 제일 끝에 달아 놓을게요.

한 가지 더, 마리아는 여성이고, 요셉이나 예수는 남성인데, MaríaJosé 와 JoséMaría는 각각 무엇일까요? 이것 역시 제일 끝에 달겠습니다.

PABLO 와 JOSE - 피카소와 카레라스, 뭔가 다르게 느껴지나요? (출처 위키피디아)




스페인의 공휴일 중 과반수는 종교 축일


스페인은 공휴일이 의외로 적다. 정말이다. 우리나라와 똑같은 15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나라 하면 야근이며 야간자습이 일상화된 성실 근면의 이미지인데, 스페인은 노는 나라로 굳어졌을까? 그건 휴가일수의 차이이다. 이건 나중에 이들의 문화면에서 다시 한번 기술하기로 하고, 스페인의 공휴일 또한 종교에서 빠질 수가 없다.


2021년 마드리드를 기준으로 공휴일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마드리드를 기준으로 본다는 말에서 의아해 할 수가 있는데, 스페인은 13일의 공휴일 외에 지방자치단체 별로 이틀을 따로 정할 수가 있다. 알 수록 흥미롭고 신기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1월 1일 Año Nuevo 신년

1월 6일 Día de Epifanía del Señor 동방박사의 날 (어린이날)

3월 19일 Día de San José 산 호세의 날 (아버지의 날)

4월 1~2일 Semana Santa 부활절: 성주간 목요일부터 부활주일까지, 매년 바뀐다

5월 1일 Fiesta del Trabajo 노동절

5월 3일 Día de la Comunidad de Madrid 마드리드 휴일

5월 15일 Día de San Isidro 성 이시드로의 날

8월 15일 Asunción de la Virgen 성모 승천일

10월 12일 Fiesta Nacional de España 신대륙 발견 기념일

11월 1일 Día de todos los santos 모든 성인의 날

11월 9일 Día de Nuestra Señora de la Almudena 수호 성인 알무데나의 날

12월 6일 Día de la Constitución 제헌절

12월 8일 Inmaculada Concepción 성령수태일

12월 25일 Natividad del Señor 성탄절


15일 중 붉게 표시된 9일이 무려 가톨릭과 관련된 종교 축일이다. 종교 축일의 경우 거리에서는 이미 며칠 전서부터 대로변에 퍼레이드를 위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때로는 시민들이 나와서 편하게 행차와 행렬을 관람할 수 있도록 계단식 의자가 마련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떠들썩하게 지내는 공휴일은 바로 1월 6일 동방박사 축일과, 4월 중에 치러지는 부활절이다. 크리스마스는 의외로 조용히 지나가는 편이다.


1월 6일 동방박사 축일(주현절)은 원래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를 기념하는 날이지만, 아기 예수를 온 세상의 어린이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 스페인에선 비공식적으로 어린이 날이 되기도 한다. 이 날이 되면 스페인 전국 어디에서건 대대적인 세일을 시작하기도 해서, 그야말로 지갑을 탈탈 터는 날이 되기도 한다. 거리에서는 Cabalgata라고 해서 동방박사뿐 아니라 각종 볼거리로 크게 설치한 퍼레이드가 이어지고, 퍼레이드 차량에 있는 아이들과 어른들은 사탕을 마구마구 뿌려댄다. 그 사탕에 맞으면 의외로 얼얼하게 아프기도 하지만, 맞으면서도 한없이 낄낄대며 서로 줍느라 바쁘고, 주워서 우리 아이들도 주지만, 옆에 있던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그렇게 명랑하게 웃고 떠들고 즐기고 하는 그야말로 명실공히 스페인의 어린이 날이다. 


우리나라의 어린이 날과 차이점이 있다면, 스페인은 한 날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사실상 크리스마스 전주부터 시작해 주현절 까지 2주 남짓한 겨울 방학기간 (어른들은 보통 휴가를 내서 보낸다) 내내 고루 퍼져 있기 때문에, 피로도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그만큼 지출이 크다는 점이 되고.


부활절은 스페인어로 Semana Santa 거룩한 주간이라고 한다. 성당의 기념미사로 끝나지 않고, 거리에서 꼬깔콘을 쓴 듯한 기이한 복장의 사람들이 줄을 잇고, 예수와 마리아의 고난과 기도를 조각한 상을 장정들이 들쳐 매고 거리를 행진한다. 행렬 뒤로는 특별 편성된 악단이 애통과 비탄조의 곡들을 연주하며, 뒤이어 따르는 사람들 중엔 정말 자신의 죄를 회개하듯 가슴을 치고, 쉬임 없이 성호를 그으며, 묵주를 들고 기도하며 따라가는 걸 볼 수 있다. KKK단을 연상케 하는 원뿔은 사실 중세 시대 죄인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종교재판을 받은 죄인에게 멀리서도 바로 알아보도록 얼굴을 뒤집어쓴 채 비쭉 솟은 뿔을 얹은 것이다. 그 뒤를 밟아 따라가노라면 마음을 후벼 파는 음악 때문인지 몰라도, 듣고 있으면 머리털이 쭈뼛 서고, 소름이 자꾸만 돋으면서,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주여' 하는 탄식이 나오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동방박사의 화려한 야간 퍼레이드든, 엄숙하고 경건한 부활절 행사든 날짜를 맞춰서 스페인에 찾아온다면, 평생에 남을 경험이 될 것이다. - 하지만 사진을 제대로 찍기란 쉽지 않다. 동방박사 때는 허리 구부려 줍고 웃고 떠드느라, 부활절 때는 같이 경건한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가는 게 좋겠다. 


마드리드의 동방박사 축제 행렬 (출처: 구글 이미지)


세비야의 세마나 산타 부활절 행렬 (출처: 구글 이미지)




한 나라의 종교는 그 나라 국민의 정신세계를 알아보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스페인에서도 가톨릭의 위세는 종교 절기나 축일을 제외하곤 많이 낮아졌다. 강력한 가톨릭 국가라는 이미지로만 본다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해마다 펼치는 게이 프라이드를 설명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이맛살을 찌푸리는 행위겠지만, 판단의 프레임을 내려놓는다면 반대로 또 누군가에게는 자유와 해방을 즐기는 축제의 현장이기도 하다. 


신호등의 빨간불과 초록불에는 한 사람씩이 아닌 남남, 여여, 남녀 등 두 명씩 짝을 지어 있는 모습도 보인다. 나와 너는 다르다. 너에게 나를 강요하지 않을 테니 너 또한 나에게 간섭하지 말라.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파트너이지, 서로를 정죄하고 심판할 대상이 아니지 않으냐. 그건 신에게 맡기고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데서 존중하고 자율을 지키며 살아가자 라고 말하는 듯하다. 


시대의 변화에 대해 허물 많던 스페인의 가톨릭은 손을 들어주었다. 그렇다고 내부까지 변한 것은 아니다. 외부에 대한 문은 열어 두되 내부의 교리며 절차는 여전히 고수한다. 각종 절기며 축일을 앞두고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해당 일이 되면 문을 활짝 열어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일상으로 파고든 스페인의 종교, 뒤집어 본다면, 신자와 비신자의 구분을 떠나 개인에게도 던지는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프라도 미술관 앞의 신호등

이름 퀴즈 정답 

1. María, José, Jesús 세 가지로 가능한 이름 갯수: 15

2. MaríaJosé는 여성 JoséMaría는 남성 입니다. 

이유: 제일 처음에 나온 이름이 성이에요. 

즉, MaríaJosé는 마리아가 먼저 나왔으니까 여성이고, JoséMaría는 호세가 먼저 나와서 남성인 거랍니다. 쉽죠?


추가로, (안물안궁일 수 있는데 그냥...) 저는 여기서 스티브 Steve로 쓰고 있어요.

스페인 오기 전 슬로바키아에서부터 당시 매니져 분이 정해준 이름이었어요. 

한국에서 영어강사 하던 당시엔 EBS 회화 선생님 이름을 따서 Brian 이라고 했는데, 같이 입사한 형이 본인도 그 이름이라며 자기는 꼭 그 이름을 써야 하니 저보고 다른 이름으로 하라고 해서, 그리 되었지요. 그게 뭐라고 참... 

그런데 이 이름으로 하고 나니 이름만 갖고도 십 분은 충분히 얘기할 소재가 되더라고요.


-스티브를 슬로바키아 동료들과 친구들은 Števo, Števko 슈뗴보, 슈떼우꼬 라고 발음하고요.

-슬로바키아 옆 체코는 다행히 슬로바키아와 같아요.  

-오스트리아와 폴란드에서는 Stefan 이라고 동일하게 쓰지만, 발음은 슈테판, 스테판 이렇게 다르게 불러요.

-제일 웃긴 건, 헝가리. 그 친구들은 저를 István 이쓔뜨반, 애칭으론 Pisti 삐슈띠 라고 했어요. 응? 뭐라고?? 도대체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죠?

-쳇, 헝가리어만 그럴쏘냐. 까탈스럽기론 유럽에서 첫 손에 꼽는 전공 프랑스어로도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답니다. Étienne 에띠엔느라고 해요. 뭔가 굉장히 늬끠한 감이 있지않느? 

-스페인에 왔으니 현지식을 따라 Esteban 에스떼반이라 하는 게 맞지만, 현지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 보니 영어식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지금까지 그냥 쓰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얘네들에게 Jalyang (아님 Haliang, 스페인어에선 J 가 ㅎ 발음이라서요) 할량~ (한량) 이라고 알려줄까 봐요.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귀한 이름 그대로도 쓰고 싶은데, 여기 애들이 ㄱ 받침에 초성 ㅎ, 거기에 모음 ㅕ가 나오니 여엉... 시원찮아서 아직까진 영문 이름으로 쓰고 있습니다. 방탄과 블랙핑크의 눈부신 활약에 제 이름 석자도 언젠가 제대로 시원하게 발음될 날이 올 걸 기대하며.

-편지의 추신처럼, 본문의 댓글처럼 쓴 글인데, 너무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스페인과 관련된 다른 주제로 또 찾아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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