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문화 따라가 보기
김부겸 국무총리는 방역 상황이 안정된 국가들과 협의를 거쳐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에 한해 이르면 7월부터 해외 단체여행을 허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김 총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해외여행 재개는 많은 국민이 기대하는 일상 회복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 2021.6.9. 연합뉴스
이 글을 읽고 백신 접종을 마친 여러분, 당장 다음 달 스페인행 티켓을 발권해서 15시간에 걸쳐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팬데믹 이전의 상황 속에서 스페인 한량, 스티브 가이드를 만나 같이 다니며 스페인 문화체험을 한다는 가정 하에 떠나 봅니다. 저를 만나러 온 친구 부부의 이름은 편의상 남박호와 여박희라 하겠습니다.
스페인의 택시기사와 축구 문화
스페인 공항으로 마중 나온 스티브와 함께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탑니다. 택시기사가 기분 좋게 Hola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며 짐을 가뿐히 트렁크에 싣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가본 게 2017년인데, 우리나라에선 기사는 트렁크 문만 열어줄 뿐 짐은 승객이 올리더군요. 서로가 잠시 가만히 있어서 저는 저대로 당황하고 기사는 기사대로 황당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스페인에선 무조건 기사가 합니다. 손님은 일절 힘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의 친절에 Gracias 그라시아스 라며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참고로, 지방 도시에 따라서는 가방 개수당 가격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기사님들은 손님들과 얘기 주고받길 즐겨하는 분들이 종종 있는 반면, 스페인 택시는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뭐가 그리 궁금한지 상대방이 스페인 말을 잘 하든 못 하든 상관치 않습니다. 아, 이분들은 본인이 말하고 싶은 걸 말하는 게 포인트였구나 라는 걸 이내 깨닫습니다. 사실 스페인어가 안 되면 영어로라도 이분들과 얘기하고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아무렴요, 2019년 한 해 무려 837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 2위의 관광대국이니 오가는 길, 손님 응대하는 데에는 도가 텄지요.
가는 동안 택시 안에선 때마침 스페인 축구 명문의 양대 산맥인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와 FC 바르셀로나 FC Barcelona의 엘 클라시코 El Clásico 중계가 한창입니다. 축구선수들 긴 이름을 읊는 것만으로도 숨 쉴 틈이 없을 거 같은데, 해설자의 입은 오토바이가 폭주하듯 rrrr를 있는 대로 굴려가며 정신을 쏙 빼놓습니다. 기사는 당연히 우리도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라 생각하고 그들의 응원구호인 ¡Hala Madrid! (알라 마드리드, 나가자 마드리드!)를 외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슬람의 알라와는 무관합니다.
스페인식 인사문화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는 시내 호텔 대신 현지 문화 체험을 보다 제대로 느끼기 위해 펜션으로 예약했습니다. 주인아저씨 Paco빠꼬(Francisco의 애칭)와 아주머니 Paqui빠끼(Francisca의 애칭) 부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Bienvenidos 비엔베니도스 (환영합니다) 라 외치며 두 팔 활짝 벌려 맞이합니다. 고개를 정중히 숙이려는 박호와 박희 부부 앞에서 빠꼬 아저씨는 단박에 박호의 팔을 움켜쥐고 몇 번을 흔들며 눈빛을 마주칩니다. 스티브와는 익숙한 듯 오른손으로 악수하며 왼손으로는 어깨를 감싸 안고 토닥입니다. 이것을 abrazos 아브라소스 (포옹, hug)라고 부릅니다.
이윽고 박희에게 가더니 고개도 악수도 아닌, 얼굴을 가까이하고, 왼쪽 방향으로 먼저 기울이며 박희의 볼을 마주칩니다. 그리고 입술로 '쪽' 소리를 찐하게 냅니다. 박호 오빠에게도 이런 뽀뽀를 받아본지가 언제였던가 하며 몽롱해지려는 순간, 이번엔 우측 방향으로 기울이며 한 번 더 볼을 비비대고 입술로 더 찐하게 '쪽' 소리를 냅니다. 이를 스페인에서는 볼 키스 두 번이라 하여 dos besos 도스 베소스라고 부릅니다.
빠꼬 아저씨의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이번엔 빠끼 아주머니가 박호와 박희 부부 둘에게 모두 dos besos로 정성스럽게 인사를 전합니다. 네, 스페인에서는 이처럼 인사에 신체 접촉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분들, 특히 남성분들이 엉뚱한 마음을 먹거나, 혼자 김칫국을 사발째 들이마시는 일이 생기곤 하는데, 절대적인 착각입니다. 볼이 아닌 입술에 한다면 곧장 경찰에 신고해서 성추행범으로 망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매우 진지합니다).
스페인식 집안 구조
집안을 안내받는데, 주인 부부가 건네주는 열쇠 꾸러미가 그야말로 한 보따리입니다. 현관, 대문, 창고, 우편함, 엘리베이터... 세상에, 아니 이걸 다 들고 다녀야 하다니요. 부부가 말합니다 ㅡ 차 열쇠, 자전거 열쇠는 아직 안 꺼냈어요. (물론 꺼낼 필요도 없겠지만).
우리나라처럼 카드키, 마그네틱 열쇠, 번호키를 사용하기엔 이들은 무언가 못 미더워하는 게 있습니다. 모름지기 열쇠는 세네번씩 철커덕 거리며 돌려야 맛이지요. 세네번씩 돌리는 동안 문 안쪽 자물쇠가 더 깊이 들어가는 것 뿐 다른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워낙에 소매치기며 집털이범이 극성을 비우는 곳이다 보니, 어디든 외출할 때면 마지막까지 돌려놓고 나가야, 비로소 안심하고 외출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오랜만에 쇳대 열쇠를 보니 3, 40년 전 방학 때면 내려가던 할아버지 댁이 떠올라 추억에 잠깁니다. 같은 21세기에 살고 있는 거 맞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파트 구조가 우리나라처럼 트여 있기보다는 뭔가 모르게 답답한 느낌입니다. 거실과 부엌이 분리되어 부엌에도 따로 문이 달려있고, 집안 복도가 마치 호텔 복도를 연상시키듯 길쭉하게 나 있습니다. 유달리 길쭉한 직사각형의 통로를 따라 방들과 화장실, 욕실 문들이 주욱 있어서 한 집안에 있으면서도 각자 분리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창가에는 블라인드 (Persiana 페르시아나)가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했더니, 햇빛이 강하고 일조량이 긴 나라인 까닭에 안에 설치하면 이미 햇빛이 다 들어오게 되어 집안 전체가 뜨거워지기 때문에 창밖에서부터 차단하려고 한 것입니다.
베란다를 보니 우리나라 아파트 한 동처럼 전체가 1자 구조가 아니라 한 층에 3개의 가구가 모여 전체가 가운데가 뚫린 사각형 구조로 되어 있는 특이한 형식입니다. 외부 베란다와 별도로 실내 베란다는 볕이 약하게 들고 외부와는 차단된 조용한 휴식 공간이 마련됩니다. 안뜰, 중정인 이곳을 patio 파티오라 부르며 저마다 예쁘게 꾸며놓곤 합니다.
샤워를 하려고 하니 우리나라처럼 개수구가 있는 구조가 아니라 그대로 거실 통로와 이어져 있는 마른 타일 바닥입니다. 물 튀지 않게 조심조심합니다. 변기 옆에는 또 하나의 변기처럼 생긴 물건이 있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주인 내외가 빙긋 웃으며 엉덩이를 가리킵니다. 스페인을 비롯한 이곳 나라에서 쓰는 유럽식 비데였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물의 석회질 성분 때문에 노즐이 우리나라 비데처럼 가늘면 막힙니다. 잘못하면 석회가 튀어서 소중한 그곳을 다치게 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유럽에선 아예 수도꼭지로 크게 만들어 놓고 물과 손으로 직접 뒤처리를 합니다. 설명만 들어보면 으윽하며 입을 틀어 막을 수도 있지만, 직접 써 보고 나면 찌르듯이 아프지 않고, 샤워하듯 시원하고 개운한대다 정말 깨끗해서 좋다며 스티브는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주인 내외는 한국 분들 중에 가끔 비데 물 빠지는 곳을 막아놓고 과일을 담가 씻어 먹는 분도 있다며 한바탕 배꼽을 잡습니다.
설명 듣다 보니 어느새 밤 9시, 내일부터 둘러볼 일정 점검과 반나절 넘게 날아온 시차로 피곤한 하루를 박호-박희 부부 씻고 쉬려고 하니, 빠꼬-빠끼 내외는 "이제 저녁식사해야죠?"라고 묻습니다. ㅡ 네? 뭐라고요? 저녁이라고요?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