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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un 06. 2021

김 부장에게 멕시코표 스페인어가 왔다.

식민지 지배 하에서 언어의 변질


36년 일본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일본어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오뎅(어묵), 구라(거짓말), 간지난다(멋지다), 뽀록났다(들통났다.), 내가 뎃빵이다.(내가  우두머리다.), 땡깡(생떼), 다대기(다진 양념), 스끼다시(곁들이 안주), 노가다(막일꾼), 시다바리(보조원), 기스(흠), 무데뽀(막무가내), 곤색(감청색), 땡땡이 무늬(물방울 무늬), 쇼부(흥정, 결판), 레자(인조가죽), 찌라시(광고 전단지)


당신은 몇 가지나 사용하고 있는가? 일부만 적었는데도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다. 필자도 은연 중에 상당수 사용한다. 심지어 일본어식 표현뿐만 아니라, 일본식 영어도 공공연하게 쓰고 있다. 


빠꾸(back, 뒤로), 오라이(All right), 도란스(trans, 변압기), 아파트(apartment), 엑기스(extracts, 진액), 오므라이스(omelet, 오믈레트), 일러스트(illustration, 삽화), 인플레(inflation), 인프라(infrastructure), 패스 미스(passing mistake), 뻬빠(sandpaper, 사포/모래종이), 당구장에서의 후로꾸(fluke, 행운샷), 헬기(helicopter, 헬리콥터), 샐러리맨(봉급쟁이)



언어를 강탈당한 멕시코


일제 36년인데 대한민국 언어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무려 300년이다. 멕시코는 300년 식민지 시대를 경험했다. 그들 고유의 언어와 문자를 잃어버렸다. 1519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멕시코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원주민 고유의 문자와 언어가 있었다. 멕시코는 마야 문자 등 여러 문자 체계가 태어난 곳이다. 스페인 지배자들도 처음에는 원주민 언어를 인정해주었다고 한다. 1696년 스페인 카를로스 2세는 이 정책을 뒤집어 멕시코에서 스페인어 이외의 언어 사용을 금지했다.


독립 이후에도 멕시코 정부는 원주민 언어를 회복하기보다는 스페인어 중심으로 한 국가 운영 체계를 구축했다. 멕시코 정부는 원주민 언어의 소멸을 막으려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원주민 언어의 언어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원주민 학생들은 원주민 언어로 말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심지어 이를 어기면 벌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멕시코의 언어는 사라지고 스페인어가 공식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현재 멕시코 원주민 언어는 63개가 남아있다. 멕시코 인구의 6% 정도가 원주인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현재 멕시코 정부는 공식적인 상황에서 대부분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스페인어는 멕시코인 대다수가 사용하는 사실상의 국어이다. 




피지배 민족의 DNA가 녹아있는 멕시코 스페인어


스페인어가 멕시코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피지배 민족의 언어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예시가 'Mande'라는 표현이다.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한국어에서는 ‘네?’ 또는 ‘잘못 들었습니다. 말씀하세요’라고 이야기한다. 영어는 ‘pardon?’라는 표현을 쓴다. 멕시코에서는 ¿Mande?’라는 말을 쓴다. 회사에서나 거리에서 정말 많이 들려오는 단어다. 스페인어를 처음 배울 때는 ‘Mande?’가 ‘뭔데?’로 들려서 한국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mande는 mandar(명령하다)의 명령형 동사변화를 한 것이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Mande!는 ‘명령하세요’ 라는 뜻이 된다. 식민지 기간 중 스페인 정복자/농장주들이 명령하고 지시를 할 때, 못 알아들으면 ‘다시 명령해주세요(mande)’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언어에 녹아있다고 한다. 식민지 문화가 언어에 영향을 미쳐서 지금까지도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좀 씁쓸하기도 했다. 당연히 정복자였던 스페인에서는 ¿Mande?라고 하지 않는다. ¡Perdón!이라고 한다.


mande는 비정상회담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두 번째 예시는 2인칭 복수형 '너희들(Vosotros)'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2인칭 존칭인 Usted(당신), Ustedes(당신들)을 많이 사용한다. 이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 스페인 사람에 대한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스페인 지배자들에 대한 존칭에 익숙한 언어습관이 자리를 잡았다고 보는 것이다.



아가씨라고 불러주세요!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동안이시네요!' '더 어려지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유독 젊어 보인다는 말을 좋아한다. 물론 들어서 기분 나쁠 리 없는 말이다. 


멕시코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señorita[세뇨리따]'는 스페인어로 '미혼의 젊은 여자'라는 뜻이다. 멕시코에서 나이가 많은 여성에게도 사용했다. 멕시코에서 여성을 부를 때는 꼭 세뇨리따(señorita)라고 불러주는 것이 예의였다.  



술을 좋아하는 멕시코 스페인어


한국 남자들을 술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세계 1위 판매량을 기록한 술은 진로 소주다. 한국에서 요일과 술을 빗대어하는 이야기가 있다. 

월요일은 원래 마시고 
화요일은 화나니까 마시고 
수요일은 술 고프니까 마시고 
목요일은 목메어 마시고 
금요일은 금요일이라 마시고 
토요일은 토하도록 마시고 
일요일은 일찍부터 마시자.


멕시코 사람들은 파티와 술을 좋아한다. 멕시코에도 술과 요일을 빗대어하는 이야기가 있다.

목요일 : Jueves[후에베스]와 beber (마시다)를 합쳐 Juebeves [후에베베쓰]라고 한다. 목요일부터 술을 마시자는 뜻이다.
금요일 : Viernes [비에르네쓰]와 Beber(마시다)를 합쳐 BeViernes [베비에르네쓰]라 한다. 금요일에 열정적인 파티를 통해 마셔야 한다.
토요일 : Sábado[싸바도]와 Drink(영어 마시다)를 합쳐 SábaDrink[싸바드링크]라 한다. 토요일도 파티의 연속이다. 
일요일 : domingo[도밍고]와 dormir(잠자다)를 합쳐 dormingo[도르밍고]라고 한다. 술자리에 지친 몸을 쉬면서 자는 날이라는 의미다.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만나다.


멕시코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다.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현지인과 소통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소통을 잘할 수 있을까? 30년을 공부한 영어는 늘 제자리였다. 영어로 친근하게 소통할 자신이 없었다.


멕시코에서 소통이 가능한 언어는 결국 스페인어였다. 스페인어를 해보기로 했다. 스페인어 초급 문법책, 어휘책 2권을 들고 멕시코 땅에 도착했다. 물 한 병을 사려고 해도, 식사 한 끼를 하려고 해도 스페인어를 알아야 했다. 살기 위해 스페인어가 필요했다. 직원들과 소통해야 했다. 현지인들과 비즈니스를 해야 했다.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김 부장의 서툰 스페인어를 다들 반겨주었다. 


스페인어 선생님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퇴근 후에 혼자 밑줄 그어가며 문법책을 공부했다. 어휘를 암기했다. 출퇴근하면서 스페인어 녹음 파일을 매일 조금씩 따라 할 뿐이었다.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맞는 방법인지도 몰랐다. 그저 살아내기 위해서 공부를 했다. 


마트에 가면 계산을 하는 점원에게 용기 내어 공부한 스페인어 표현을 사용해보았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만나면 슬쩍 이야기했다.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면 영어로 이야기하다가도 생각하는 스페인어가 있으면 슬쩍 이야기를 해보았다.


중년의 한국인이 서툰 스페인어를 사용하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멕시코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이었다. 필자 회사가 진출한 몬테레이는 교민이 많지 않았다. 인구 500백만 명의 도시에서 한국인들을 보기 어려웠다. 낯선 한국인이 서툰 스페인어를 떠듬떠듬 이야기하니 다들 반겨주었다. 서툰 스페인어를 반가워하며 서비스를 주는 포장마차 주인도 있었다. 어눌한 김 부장의 스페인어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도움을 주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멕시코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하는데 현지인들이 하는 스페인어가 조금 들렸다. 공부했던 단어들이 몇 가지 들렸다. 노동조합 위원장이 이야기한 스페인어를 이해하고 필자가 스페인어로 답변을 하니, 교섭장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 ‘스페인어 한마디 못하던 김 부장이 어떻게 스페인어를 하게 되었냐’며 분위기가 밝아졌다. (필자가 스페인어를 능통하게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직도 떠듬떠듬거리는 것이 내 스페인어 실력이다.) 노조 위원장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노력하는 김 부장이 있는 회사를 어떻게 안 믿을 수 있겠는가? 회사가 제안한 대로 교섭을 마무리하자고 했던 기억이 있다.



스페인어는 소통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영어는 권력이다. 영어는 시험을 통해 수준을 평가한다. 그 수준에 따라 사람이 평가되기도 한다. 스페인어는 달랐다. 시험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저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문법은 좀 틀려도 상관없었다. 동사변화가 다르다고 나무라는 현지인도 없었다. 내 말을 듣고 이해하면 대화가 되었다. 외국어 소통에 자신감이 생겼다. 영어로 위축되었던 어깨가 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한다. 아니 스페인어를 익히고 있다.



※ 스페인 본토의 스페인어 이야기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성실한 스페인 한량' 작가님의 글에 흥미 진진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spainlife/114#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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