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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ul 14. 2021

당신이 보낼 스페인의 하루 part III

안보다 밖을 사랑하는 스페인 사람들

스페인에서 시에스타는 선택이 아닌 필수 (feat.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 스페인에 오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7, 8월 두 달만큼은 꼭 피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왜냐고요? 주위에 혹시 이때 스페인으로 여행 온 분들 있다면 한번 물어보셔요. 한여름의 스페인이 어떠했는지를요. (아, 물론 처음부터 해변 휴양지의 리조트에서 호캉스를 즐길 분들은 예외입니다)


스페인의 여름은 우리나라보다 견디기가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덥지만 습하지가 않거든요. 지리 시간에 배운 유럽의 고온 건조한 지중해성 Cs 기후, 기억나세요? 스페인의 여름은 사회시간에 배운 그대로 아열대 고압대의 영향으로 기온이 높고 건조해요. 안달루시아의 프라이팬이라는 별명을 가진 세비야는 물론, 저희 가족 첫 여행지였던 코르도바, 최후의 이슬람 왕국이 있던 그라나다 모두 7, 8월에 40도 정도는 기본으로 갈 정도거든요. 점심 시간대인 오후 두 시 경부터 대여섯 시 정도까지 그 열기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오후 2시에 점심을 먹고서 바로 올리브 손보고, 오렌지 가지 좀 치겠다며 나갔다간 그야말로 일사병으로 혼절하기 일쑤겠지요. 이런 환경에선 점심 식후, 창문 밖 블라인드인 페르시아나Persiana로 햇볕을 사전에 차단하고, 잠시 몸을 쉬어주는 게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바람직한 일이 됩니다. 시에스타 = 낮잠 = 게으름 이런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더는 뙤약볕 아래 밭에서 일하는 것보다 고층 빌딩 사무실에서 종일 에어컨을 쐬며 일하는 비율이 높아진 터라 시에스타를 고집하기엔 상황이 많이 변했지요. 게다가 유럽 내 다른 나라와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시에스타는 지켜서는 아니 될 전통이 되어버렸고요. (실은 시에스타는 스페인이 아닌 이태리가 원조거든요, 쉿!) 그래서 2005년도에는 정부기관에서는 시에스타를 아예 금지해 버리는 조치까지 취했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와 같은 대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스페인의 개인 상점들은 오후 2시부터 5시 또는 6시까지 문을 닫는 걸 쉽게 볼 수 있어요. 오후 2시가 점심시간이다 보니 점심시간부터 시작해 시에스타를 취하는 시간까지 아예 문을 닫고 저녁 시간에 다시 여는 것이지요. 하여, 여행시 쇼핑에 대한 팁을 드리자면, 아침 개장하자마자 가는 게 아니라면, 오후 2시경에 가는 걸 추천드려요. 한적해진 공간에서 쾌적하게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대신 직원도 확 줄어든다는 게 함정!)


시에스타를 정부 차원에서 금지시키긴 했어도, 여전히 스페인 사람들에겐 중요하게 남아 있어요. 인간이 기계가 아닌 이상,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건, 법으로 허용하느냐 마느냐를 떠나 마땅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꼭 잠을 자야 한다는 게 아니라, 커피 한 잔이라도 하면서 가볍게 오전 일과를 돌아본다면 의미 있는 휴식이자 생산성을 더 올리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무엇보다도,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시에스타는 여전히 외국인에게 매력 포인트로 다가올 거란 점은 분명합니다.



집안보다는 집 밖이 좋아요 + 혼자 보다는 여럿이 좋아요

스페인에서 화창한 날 집안에 있다는 건 다음 중 하나를 뜻합니다 :

아프다 (아이구) / 잠을 잔다 (이해합니다) 친구가 없다 (아이구저런이를어째이사람...)


그렇지 않고서야 집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볼 정도로 이 친구들은 밖을 사랑합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밖에서 (어디가 되었든 간에 일단 밖이어야 하고), 누군가를 만나 (친구든 가족이든 하다못해 매장 종업원이라도), 무언가를 하는 걸 (수다든 쇼핑이든 축구든 축구중계 시청이든 심지어 시에스타라도 같이해야) 좋아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만큼 이들은 안보단 밖을, 혼자보단 여럿있는 걸 좋아해요. 이런 스페인과 유사한 기질의 국민성은 유럽의 수많은 나라 중 이태리가 유일할 겁니다.


스페인은 날씨가 열일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햇빛 쨍한 날이 많습니다. 굳이 "내가 가는 곳엔 말이야, 오던 비도 그쳐" 이렇게 허풍을 떨 필요가 없어요. (아, 모르는 분에겐 이런 허세가 효과가 있겠네요) 궂은 날씨로 유명한 독일이며 영국에서 온 사람들은 그렇게나 스페인, 아니 스페인에 태양을 열광적으로 사랑해서 각각 천만명이 넘게 연간 찾아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최고치가 2019년 기준 63만 명이었어요. 우리나라 관광객의 15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지요.


영국인과 독일인의 입장에선 스페인은 햇빛 하나만 갖고 먹고 산다는 말을 할 정도로 태양의 나라이고, 그 햇빛 하나로 그들의 문화양식이 설명될 정도랍니다.


단적인 예로, 스페인 사람들은 밖에 나가 먹는 걸 좋아해요. 그들에게 외식비가 싸서가 아니고요. - 물론 프랑스, 영국에 비하면 좀 싸긴 하죠. 밖에 나가 먹는다는 의미 또한 멋스럽게 꾸며 놓은 내부가 아니에요. 찌그러진 알루미늄 테이블에 먼지 낀 의자, 그리고 낡은 파라솔뿐이라 해도 식당 밖에 있는 테라스를 선호한답니다. 


심지어 우리 눈에는 아니 옆에서 차가 저렇게 다니는데 매연 때문에 어떻게 먹고 마셔 하며 걱정을 사서해 주는데, 이들은 아랑곳 않고 즐깁니다. 게다가 겨울엔 추워서 무릎담요까지 펼쳐 가면서 어떻게 해서든 밖에서 먹는 걸 고수하려 하니, 이 정도면 유럽인들, 특히 스페인 사람들은 정말 집 밖의 햇살을 사랑한다고 봐야겠지요.


비단 식당만 그런 게 아닙니다. 공원이며 광장 등 어디고 간에 스페인 사람들은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 음료 한 잔을 두고 몇 시간이고 (어쩌면 몇 날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얘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즐거움을 찾고 행복을 느낍니다. 심지어 앉을자리가 없으면 그냥 아무 대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얘기하는 것도 심심찮게 봅니다. 가끔 저도 모르게 저러다 치질 걸리면 안 되는데 하는 괜한 걱정을 할 정도로요. 


독일, 영국, 스웨덴과 같은 곳에선 집에 번듯한 (최신) 전자제품을 갖추고,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데서 행복을 느낍니다. (물론 개인차가 당연히 존재하지만, 사회학적으로 그렇게들 얘기하곤 해요) 이런 그들도 햇빛이 비치기만 하면 입던 옷을 훌렁훌렁 벗어 제끼고 일광욕을 한다는 건 이미 영상으로 잘 알려진 바이지요.


하지만, 스페인에선 어디에서건 혼자 보다는 친구든 연인이든 누군가와 같이 있는 걸 봅니다. 하다 못해 바Bar에서 웨이터와 계속 얘기를 나누고 있을 정도지요. 주제는 전날 밤 마누라와 싸운 것에서부터 친구의 친구가 로또 맞았단 이야기며 현재 정치, 경제 현황까지 그야말로 종횡무진 오고 갑니다. 옆에 있는 저도 가끔 솔깃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컬투쇼와 뉴스 중계를 생방송으로 듣는 느낌이랄까요.


비 오는 날씨도 마찬가지예요. 비가 오면야 당연히 식당 내부로 들어오지만, 그들의 대화와 수다는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스페인은 수다로 스트레스를 다 푸는지, 만취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식당 골목에서 만취해서 있는 사람들은 현지인보다는 외국인 관광객인 경우가 많아요. 다시 볼 사람들이 아니다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내일이면 변함없이 또 와서 얼굴을 마주할 사람들이니, 고주망태가 되어 볼썽사나운 일은 하지 않는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까지 이들은 햇빛에 집착하는 걸까요? 그건... 와 보면 압니다. 아니, 우리의 일상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여름에 한창 장마로 집 밖을 못 나가거나, 작년 한 해 모두가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못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갈망했던 것은 다름 아닌 사람, 사람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봄이 오면 벚꽃놀이를 즐기고, 여름이면 산이며 바다로 놀러 나가고, 가을이면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단풍에 눈호강을 누리고, 겨울이면 찬바람 맞더라도 눈꽃을 보며 출사하러 나가잖아요. 이 모든 것은 혼자 보다는 사랑하는 이와 같이 하는 일이 많지요.


그리고 그런 외출 시 가장 큰 변동사항은 바로 날씨에 달려 있고요.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겐 황사를 넘어서 미세먼지가 매일 출근 전에 챙겨봐야 하는 사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스페인에 온 분들 마다 제일 탄성을 많이 내는 게 바로 하늘이에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하늘도 깨끗함을 되찾기를 갈망합니다. 청명한 하늘 아래 누군가와 같이 먹고, 나누고, 웃으며 마음을 풀던 그때를 그리워하면서요.


세고비아의 알카사르 (디즈니의 백설공주 성城의 모티브가 됩니다)



강렬한 색감이냐 호쾌한 울림이냐 - 스페인의 예술 (시각 vs 청각)

스페인은 태양이 강렬해서 그런지 눈으로 보는 것에 무척 강하게 이끌리게 됩니다. 클래식 음악조차도 이태리, 독일, 프랑스와 달리 스페인 고유의 음악이자 종합예술인 플라멩코로 더 명성을 떨칩니다. 아니면 서정성 짙은 기타의 명곡으로 잘 알려져 있고요.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중남미에서는 흥이 넘치는 무곡 - 탱고, 살사, 룸바 등 -으로도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합니다. 귀로 듣는 음악은 실상 선율과 음색에서 눈앞에서 무언가를 그리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은, 특히나 스페인의 음악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전적인 예술의 의미에서 본다면 스페인은 회화적인 요소가 더 크게 발달합니다.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빛나는 태양일 것입니다. 이글거리며 타들어가는 태양 아래 더 짙어져 가는 스페인의 자연은 스페인 태생의 화가들을 강렬한 색채의 세계로 이끌어, 자신만이 가진 개성을 유감없이 폭발시키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게다가 그러한 개성은 자연 보다도 인물화에서도 더 두드러지게 표현할 수 있지요. 


그래서 인물들을 보면 인물은 분명 고정되어 있으나 그들이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건, 문제 제기를 하려는 것이건 간에, 화가의 붓끝을 통해 인물은 분명 나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니, 작가가 갑자기 어디 가서 와인 한 잔이라도 하고 온 건가, 아님 무슨 약에 취하기라도 한 건가. 


아니요, 저는 지금 회화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상한 거 아닙니다. 화가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널뛰던 인격만큼이나 그들이 빚어낸 개성 강한 인물화를 마주해 보세요. 주마간산 식으로 보지 말고, 작품 앞에서 물끄러미, 때로는 가까이 오밀조밀 살펴보고, 때로는 먼발치에서 풍경 바라보듯 제3자 바라보듯 해 보세요. 그러면 어느 순간 액자 속의 그가 당신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들릴 겁니다.


그렇기에 회화는, 특별히 스페인의 인물화는 귀로 듣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머릿속에 당장 떠오르는 세계적인 명성의 스페인 화가들, 고야, 벨라스케스, 피카소, 달리 등을 생각해 보고,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검색해 바라본다면 고개가 끄덕여질 겁니다.


조금 더 나아가 본다면, 스페인의 예술은 대중으로부터 동떨어져 근엄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 가까운 데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에 의의와 가치가 있습니다. 수도 마드리드만 해도 미술관의 삼각지대라 하는 프라도 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 박물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 각각 자신만의 회원권을 발급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구입한 연간회원권은 타 지역 미술관과 연계가 되어 무료입장이 가능합니다. 일회권 표는 비싸지만, 연간회원권을 구입하면 두세 번 가는 것만으로도 본전을 찾는 이점도 있고요. 


바르셀로나의 경우엔 아예 바르셀로나 시의 대표적인 미술관들을 묶는 패스포트를 만들어서 첫 방문 이래 일 년간 바르셀로나에서 어느 미술관이든 방문을 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어요. 박물관 여권 하나만 있으면 피카소 박물관도 가고 호안 미로 미술관도 방문하며, 카탈루냐 국립박물관 관람도 가능한 것이지요. 


이런 연간회원권은 오페라와 연극에도 적용됩니다. 그렇게 해서 꾸준히 사람들의 관심을 그 방면으로 유도하고, 증가하는 관람객 수에 따라 문화 공연 수준 자체도 올려가는 데 활용하고요. 레알 마드리드나 FC 바르셀로나처럼 명성 높은 축구 구단의 경우에는 익히 예상하듯 아예 평생회원권으로 확실하게 팬클럽을 심어 놓습니다.


프라도 미술관 광고 - 우리 다시 만나요 (2020년 7월 코로나 이후)






사람과의 만남으로 시작해 함께 그 사람과 문화생활을 누리는 것으로 여러분이 스페인에서 보낼 일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다음에는 만 9년, 햇수로 10년에 달하는 제 경험에 기반한 스페인의 비즈니스 문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제목 배경: 바르셀로나의 지중해 식당 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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