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어린이날에

어릴 때 나는 5월의 어린이 날을 12월의 성탄절보다 더 기다리곤 했다. 둘 다 쉬는 날이고 선물도 받는 날이지만, 이유는 단순했다. 전자는 학기 중이지만 후자는 방학이기 때문에, 학교 가는 날 하루라도 쉬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 큰 어른이 되어 슬로바키아로 건너와 살았고, 이후 스페인의 교민이 되어 지금껏 살아가고 있다. 슬로바키아와 스페인 둘 다 뿌리 깊은 가톨릭 국가라 종교 축일이 공휴일인 경우가 제법 있다.


매년 1월 6일은 공현절, 또는 주현절이라고 하는 동방박사 축일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세 명의 동방박사가 찾아와 경배하고 선물을 전했다는 성경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슬로바키아는 성탄절을 우리나라 설이나 추석처럼 당일과 전후로 하루씩 더하여 사흘을 쉰다. 반면 스페인은 달랑 하루뿐이다.


스페인에선 성탄절보다 주현절에 보다 큰 의미를 두는 듯하다. 산타는 생각보다 존재감이 거의 없다. 단 한 명의 산타 보다는 멜초르, 발타사르, 가스파르 이름도 헷갈리고 기억도 안 될 이 세 분이 더 자주 보인다. 지금이나 그 때나 역시 개인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여긴 건가.


아니다. 스페인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분은 산타가 아니라 바로 동방박사, Reyes Magos (레예스 마고스)이기 때문이다. 중동의 세 어르신들께서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하고 선물을 준 사건이 훗날 유럽의 끝 스페인에서 어린이날로 자리를 잡게 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권선징악은 여기서도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착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만, 나쁜 짓을 한 아이에게는 숯검댕이를 준다. (우는 아이는 상관없다) 하지만 공짜는 없는 법인 건지, 아이들은 반드시 "편지"를 써야만 한다. 여기 아이들은 산타보다 동방박사에게 더 진심이다.


우체국에서는 아이들한테 동방박사에게 편지를 쓰라고 대대적인 광고를 하는가 하면, 학교며 시내 광장에는 동방박사에게 보내는 우체통을 설치한다. 10년 전 스페인에 처음 왔을 때 저들의 웃기면서도 진지한 광고에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 모든 건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주기 위한 배려였다.


미국 영화에서나 볼 법한 굴뚝 있는 큰 집도, 주택도 아닌 빽빽한 아파트에 살고, 루돌프 같은 덩치 큰 순록은커녕 동물원이 아니고선 사슴을 볼 수도 없는 환경에서, 어린 나는 산타의 존재 자체에 의구심이 많았다.


스페인에선 산타가 일일이 눈썰매를 끌며 뚱뚱한 몸으로 굳이 굴뚝으로 힘겹게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세 동방박사(Mago에는 마법사란 뜻이 있음)가 "마법"을 통해 일시에 선물을 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스페인에서는 우리 집에는 언제 오나 하며 졸린 눈을 비빌 필요가 없다.


단 하룻밤 만에 지구 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돌릴 산타는 없다. (있어도 그렇게 하기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입증하는 동영상도 있다) 그건 엄마와 아빠가 해 주는 것이다. (요즘엔 택배 기사님이 대신해 준다는 걸 알았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자상한 부모님께서 친히 직접 알려주셨다. 덕분에 그 어떤 신비감 없이 자란 아이는, 커서 동일하게 자신의 세 아이들에게 그대로 대물림해 주었다. 해서 유치원생인 막내도, 초등학생인 둘째도, 사춘기의 중학생 첫째도 그 누구도 연말의 산타나 연초의 동방박사를 손꼽아 기다리지 않는다.




안타깝긴 하지만 미안하진 않다. 부모님께선 평소에 잘해 주셨다. 키즈 파크에 데려가고, 외식을 시키며, 해외여행을 다닌 게 아니다. 있는 내에서 어떻게든 아껴서 잘 먹여 주신 것, 주 6일 근무였지만 주말이면 어떻게든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주신 것, 어머니는 절약하시고, 아버지는 시간을 만드셨다.


당시의 사건 하나하나가 구글 포토의 알림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감정은 갓 끓여낸 커피 향 마냥 진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기억을 되살려 추억으로 만든다.


부모님만큼은 못 하더라도 가급적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 그렇게 두 아들과 막내딸에게 주려고 노력한다. 큰 한 방을 노리는 게 아니라 소소한 행복을 자주 경험하게 해 주신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신 두 분의 가치관은 지금 시대에 적용해도 자연스럽다.


즐거운 경험과 추억을 심어주려는 노력은 상황에 관계없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작년 그리고 올해, 두 번 연거푸 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멀리서도 대번에 보이는 큰 선물 꾸러미, 휴가차 관광지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 온 식구가 모여 보내는 오붓한 시간의 사진. 눈을 뜨고 있는 이상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풍경. 아무렴, 성탄절이고 주현절이고, 어린이날인데. 나도 이전에 했던 거다. 평소에 하던 일이다.


한 번은 못해도 두 번이나 못할 줄은 몰랐는데. 평소라는 말이 어색해진다. '이전'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나 역시 일상을 살던 사람인데. 무심한 척하는 무심하게, 덤덤하게 지나간다. - 괜찮아, 언제가 될 진 몰라도 다시금 '평소'에 잘해 주면 되니까. 그리고 아빠는 꼭 약속을 지킬 거니까.


아이들은 여전히 잘 웃는다. 시내에 나가 산책을 돌고, 추위에 아랑곳 않으며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렇게 먹다 춥다 하니 시트콤이냐며 뜨거운 차 한 잔을 시킨다. 달달한 빵 한 조각에 사소한 얘기를 나눈다. 한적한 거리로 나가 뛰어다닌다. 떠들썩 하니 잘 논다, 스페인의 어린이날에.



배경 사진: 동방박사의 경배, 1609, 루벤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La Adoración de los Magos, 1609, Rubens, Museo del Pr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