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어느 방송인이 말했다:
살아 보니 방송에서 못 할 말은 친구 만나서도 못하겠더라.
말한다고 한들 이해도 못 해.
말해봤자 그래도 너는 돈이라도 많이 벌잖아 라는 핀잔만 들어.
그래서 이젠 친구도 거의 안 만나.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다른 출연자들이 다들 본인 얘기라며 극공감을 한다.
보고 있는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곱씹어 봤다.
글쎄, 정말 그런가? 그래도 저분들은 여하간 돈'이라도' 많이 버니까 괜찮을 거 같은데, 아닌가?
순간, 대상은 다르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느낌이 확 떠올랐다.
그래도 너는 외국 나가서 살고 있잖아. 남들 다 가 보고 싶어 하는 스페인에 살잖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저가 비행기 타고 유럽 어디라도 나가볼 수 있잖아.
쳇, 속 모르는 소리 하네. 유럽 나오면 전부 여행만 다니며 코스 요리에 와인 마시며 사는 줄 아니?
말 통하는 한국에서도 먹고살기 힘든데, 말 안 통하는 외국 생활이 그리 만만하면 너도 나오지 그러니.
아뿔싸! 그렇구나. 다들 타인은 절대 알지 못할 본인만의 속사정이 있겠구나.
돈이 전부가 아닐 텐데. 사진으로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지. 여행과 생활은 차원이 다른 얘기인데.
틀린 말은 없다. 단지 타이밍이 안 맞을 뿐이다.
코로나로 일이 없어서 힘드니 어쩌니 해도 코로나 기간 3년 내내 스페인에 살고 있다.
정말 힘들면 짐 싸들고 들어갔겠지 하며 오리무중 속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가슴을 치면서도
어쩌다 나와 산 시간이 15년이 넘으니 이제는 여기가 더 익숙하다며 주저하고만 있다.
그게 꼭 방송계 연예인과 해외 나와 사는 사람만의 얘기일까.
그래도 너는 서울 어디에 살고, 그래도 너는 버젓한 직장에 다니고, 그래도 너는 집이라도 한 칸 마련했고...
헉, 이 모든 게 내가 그 친구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올라오는 마음의 소리였다니.
애당초에 똑같을 수도 없고, 똑같을 필요도 없는 상대방의 인생에
나는 왜 그리 쉽게 판단을 내리려 했던 것일까.
지금 당장 내 현실의 결핍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교하며 저울질하고 있으니 그 사람의 말에 온전히 집중을 할 리가 있을까.
그나 나나 우리의 인생은 끝없는 결핍과 채움의 순환 속에서
어영부영 같이 끌어안고 그때 그때마다 근근이 대처하며 살아갈 뿐인데.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그나마 해답을 찾아가려고 몸부림치는 것인데.
그 또는 그녀의 푸념 섞인 고민에 대한 반응이 본인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온 건
마음의 여유를 상실했거나, 어쩌면 이미 상실했다는 사실조차 몰라서 그런 것일 게다.
아무리 둘러봐도 세상에서 지금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을 거 같아서 즉각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거다.
그래도 너는 나보다 낫지 않니? 나보다 낫지 않느냐고?
이렇게 껄끄럽게 되받아치는 친구의 그리고 나의 마음속 소리는 어쩌면
미안해, 친구야, 그런데 나도 실은 지금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내가 힘을 키울게.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줘.
하는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번역을 한다면 그도, 그 친구도, 나도 좀 더 속 깊은 공감의 연대로 따뜻하게 서로를 품었을 거다.
내 힘을 얼른 키워 큰 우산이 되어 가족도 친구도 넉넉하게 덮어주고 싶다.
내 소리를 들어주고 마음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아래 채널에서 편하게 얘기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