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여행은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는 일
영화 <글레디에이터>를 보면, 로마 시민들이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의 사투를 벌이는 육박전에 열광한다.
로마로 들어오는 개선행진에선 수 만 명의 시민이 나와 꽃을 뿌리며 환호한다. 거기에 멋진 팡파르까지, 그저 감탄이 나온다.
장군에서 검투사로 전락한 막시무스가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관중 앞에서 맹수와 대치해 싸울 때의 긴장감은 얼마나 실감 나던지.
그러나 그 콜로세움은 로마의 콜로세움이 아니다. 몰타에 세운 모작이다.
꼴도 보기 싫은 코모두스가 두 손을 흔든 건 맞지만, 실제 배경은 신전도 궁전도 아니다.
막시무스가 멋진 검투 장면을 보여준 건 맞지만 카메라 감독 앞에서 호랑이를 찔러 죽이진 않았(을 것이)다.
현실 속 가상의 세계이다. 로마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 촬영 장소는 몰타, 모로코, 그리고 영국이다. 그리고 전투장면들의 상당수는 CG, Computer Graphic 이 만들어 낸, 실제가 아님에도 실제보다 더한 온라인의 세계에 있었다.
가이드 일은 설명이 대부분이라 할 정도로 가는 곳마다 소개하고 설명해야 할 일이 많다. 그야말로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그러나 가이드가 있는 곳은 분필을 사용할 교실도 아니고, 파워포인트를 띄울 강당도 아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현장이다. 성당이고 왕궁이며 박물관이다.
21세기의 손님들을 모시고 스페인 곳곳에서 로마가 다녀간 1세기, 게르만의 이동이 낳은 서고트족의 5~6세기, 북아프리카에서 올라온 이슬람의 8~12세기, 대항해와 통일 시대의 15세기, 황금시대를 맞이한 16세기, 격동의 18세기 현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가이드는 말로 황제도 되었다가, 여왕도 되었다가, 술탄도 되며, 때로는 기사이자 화가, 그리고 작가가 되기도 한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착시 효과를 만드는 마술사와도 닮았다. 가이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여행객의 머릿속에서 저마다 상상 속 어디론가로 떠난다. 활자로만 존재하던 인물은 눈앞에 조각상으로 마주하고 있고, 흔히 보던 예수와 십자가는 어쩐지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오는 길 버스 안에서 보던 영화 속 장면이 다시 눈앞에서 펼쳐지기도 하고, 반대로 발품 팔아가며 보고 지나간 거리며 광장이 영화에서 재현되는 것을 보며 내가 스크린 안에 들어가 있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때론 아이들에게 구연동화를 들려주는 아빠처럼, 때로는 핵심만 콕콕 집어주는 일타 강사처럼, 때로는 강연장에서 적절한 위트 속에 깨달음을 전하는 인문학 강사처럼, 가이드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바꿔 쓴다. 여러 가면을 벗고 쓰는 동안 손님은 모두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난다.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여행에서 만나는 대상은 당대의 옛 사람인 것 같지만, 결국엔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 의미 있는 만남을 위해 오늘도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마이크를 잡는다. 가이드는 CG, Connection Giver, 즉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가 되어 다른 대상을 연결해 주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