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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an 30. 2021

스페인의 첫 겨울 휴가, 코르도바

유네스코 문화유산 보유 세계 1위의 도시

9년 전 가을 가족을 데리고 슬로바키아에서의 6년간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한 달 후인 겨울 스페인으로 다시 나왔다. 당시엔 아직 막내딸 없이 두 아들만 데리고 있을 때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스페인에 대한 인상은 영화에서 보던게 거의 전부였다. 강렬한 태양, 푸른 지중해, 그리고 모든 일상이 카톨릭인(것만 같은) 축제의 나라. 이슬람에 대해선 미처 생각을 못했다. 중동의 종교로만 여겨지던 이슬람이 스페인의 역사, 언어, 문화, 풍습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줄은 당시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아이들과 돈키호테의 라 만차 땅에서 좀 더 내려가니 어느 때부턴가 주위의 밭과 산의 모습이 전부 똑같아지기 시작했다. 토양은 깨진 항아리의 단면마냥 붉고 사람 키 보다 조금 높아 보이는 나무는 일정한 간격으로 끝을 모르고 심겨져 있다. 녹두빛에 가까운 잎사귀는 반대편의 은빛이 햇살에 반사되면서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스페인을 비롯한 이태리, 그리스의 상징, 올리브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휴게소라고도 볼 수 없을 그저 주유소에 딸린 작은 식당에 불과한 크기지만, 스페인 어디를 다녀봐도 사정은 비슷비슷했다. 가끔 체인점 형태로 나름의 규모와 편의시설을 깔끔하게 갖춘 곳도 있었으나, 그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잠깐 도넛에 꼬르따도 cortado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살짝 탄 커피) 한잔, 아이들에게는 쥬스나 콜라 한잔 정도 하면서 볼 일 보는 곳이 스페인의 쉼터였다.





무슨 바람에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스페인에 와서 정말 모질다 싶을 정도로 힘든 첫 한해를 보냈던 그 때, 나는 겨울 휴가지로 꼬르도바 Córdoba 를 선택했다. - 실은 그곳에서 100km 나 떨어진 하엔 Jaén 이란 곳이었으나, 둘 다 안달루시아 자치지방에 속해 있다. 100km가 제법 멀다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약 5배에 달하는 이 땅 스페인에서 그 정도는 별 대수롭지 않았다. 인생에 절대적인 것이란 몇 없는데, 특히나 여행은 언제나 내가 어떤 마음 가짐으로 다니느냐에 따라 굉장히 좋을 수도, 엄청나게 나쁠 수도 있는 묘한 매력이 있다. 여하간 하엔에서 며칠 머물며 오로지 올리브 밖에 안 보이는 그곳 보다는 반경 100km 내 있는  코르도바와 그라나다를 동네 마실 가듯 다녀갔다.


코르도바는 한겨울에도 영상 4도에서 15도를 오가는 선선함을 느끼게 하고, 한낮에는 햇살 아래 쟈켓 없이 다녀도 별 추위를 못 느낄만큼 따뜻하다. 인구는 10세기 중세 당시엔 가장 많은 인구수를 자랑하며 당대 유럽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까지 포함해 문화적으로 찬란한 이슬람 양식을 꽃피우기도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페인의 도시를 말해 보라면, 보통 수도인 마드리드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플라멩코의 세비야와 드라마로 유명해진 그라나다 까지는 알더라도 코르도바는 의외로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일 많은 제1의 도시일 만큼 다니는 거리 곳곳이 문화와 역사의 스토리텔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코르도바, 카톨릭 왕들의 알카사르, 13세기 건축물이다



코르도바에서 가장 유명세를 타는 곳은 바로 과거 이슬람 사원이자 현재 카톨릭 대성당인 메스키타이다. 원래 스페인어로 메스키타 mezquita 라고 하면 일반적인 이슬람 사원을 뜻하지만, 대문자로 쓰면 코르도바의 고유 건축물을 칭하는 것이 된다. 785년 압데라만 1세 때 시작해 줄줄이 이어지는 압데라만 2세, 3세 거기에 하캄 2세와 987년 알만수르 재상에 이르기까지 무려 3번에 걸쳐 증축에 증축을 거듭했다. 


지금이야 한번에 6만명도 수용할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도 있고, 심지어 메디나에는 150만명이 (쓰면서도 안 믿겨짐) 동시에 기도와 예배를 드릴 모스크도 있지만, 그래도 10세기에 2만 5천명이 들어갈 장소가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 아닌가. 당시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였는데, 고려시대 건축물 중에 이 정도 사이즈 되는 거, 아는거 있니, 아들?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글쎄, 우리는 외형 보다 내실에 집중을 해서.. 헙.


일단 내부에 들어가기 전, 이슬람 건축 양식에서 흔히 보는 중정(Patio 파티오)에 발을 내딛어 본다. 메스키타에 포함되지만 이 정원은 무료로 드나들 수 있다. 하여 한낮인데도 사람들은 오렌지 정원과 야자수에서 뜨거운 햇살을 등지고 열심히 추억을 담는 중이다. 중정의 사각형 벽에는 오래된 나무조각들이 늘어서 있다. 언뜻 봐선 그저 세월만 묵은 것 같은데, 나름 중요한 물건인지 일일이 번호표까지 붙여 있다. 알고보니 사원 내 천정을 보수하기 전 지키고 있던 서까래였다. 옛 것에 대한 뿌리깊은 집착은 비단 영국인에게만 해당되는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쓸모없어 치워야 할 쓰레기로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역사를 담은 더없이 소중한 물건이 되기도 한다.


메스키타는 이슬람의 통치 당시에는 사원이었지만 16세기 이후 이곳은 대성당으로 변모했다. 그래서 이곳의 정식 이름은 사원-성당 Mezquita-Catedral 이다. 우리로 치자면 고려시대 불교 사찰이던 곳이 조선으로 넘어 오면서 사대부들에 의해 유교 서원으로 용도변경된 정도에 해당한달까. 묘한 일이다.


이슬람 사원을 뜻하는 스페인어 메스키타는 아랍어 ‘마스지드’에서 나왔다. 원어의 뜻이 이마를 땅에 대고 절하는 곳이니, 이슬람은 모임 장소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참고로,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는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 이란 뜻이다. 이곳은 사원이 성당으로 된 건데, 세상엔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사원이 그 케이스이다. 동로마 제국 당시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오스만 제국으로 주인이 바뀌자 성당 주위에 4개의 기도탑을 세우고 내부는 회칠을 해서 사원으로 쓰던 도중, 보수 공사 중에 회칠이 벗겨져 안에 있던 기독교 성화가 발견되자 다시 사원으로 쓰기 민망하여 박물관으로 변경되었다. 자칫 또다른 분규가 날 뻔 했는데, 모두를 생각하고 발상을 돌린 저들의 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저마다의 종교적 진리를 앞세우기 전에 너와 내가 공존해 사는 세상임을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코르도바 메스키타의 오렌지 중정, 곱게 깔린 돌이 정겹다



스페인의 역사는 카톨릭과 이슬람 간에 뺏고 뺏기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711년 이슬람이 이 땅을 점령한 이래, 718년부터 빼앗긴 땅을 되찾자며 서고트족은 레콩키스타(국토회복) 운동으로 남진하는 동안 어지간한 이슬람 사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이교도의 싹이라며 돌 하나 남겨두지 않았던 서슬퍼런 시대에서조차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비켜갔다. 그렇다면, 천 년 전 그 위용과 화려함은 실로 얼마나 대단했을지 거대한 건물 앞에 벽돌 하나가 된 것 같은 나로서는 가늠하기 조차 힘들다.


15세기 세비야에 대성당을 지을 당시 대놓고 crazy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한번 판을 거대하게 짜보자 했던 스페인 사람들. 사이즈 경쟁에 선구자가 있었으니, 8세기 코르도바 왕국을 일으킨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압데라만 1세)이다. 그는 지역 사령관급인 에미르의 호칭에서 벗어나 정통 이슬람 지도자의 후계자인 칼리프로 스스로 승격시켜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높은 직위를 가졌으면 그에 걸맞는 건축물도 가져야 하는 법. 


하여 그는 당대 세계 최대의 이슬람 사원을 지어보고자 했다. 왕국의 인구는 날로 급증했고, 사원의 크기도 이를 감당하기 위해 대를 이어 확장 공사를 계속 해야만 했다. 그 결과 무려 50만의 인구에 메스키타에서만 동시에 2만 5천여명이 예배 드리게 할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대륙, 아니 반도의 흔한 스케일이라 봐도 될 거 같다.


오렌지 정원을 둘러보니 과하지 않게 아름다운 종탑이 보인다. 종이 있다는 것은 기독교의 영향이다. 이슬람에서는 종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성으로 아잔 이라는 기도시간을 알렸다. 그러니 사원 중정의 종탑은 코르도바가 1236년 페르난도 3세에게 탈환되고 난 후 16세기에 성당으로 변경되면서 이슬람식 기도탑이 카톨릭식 종탑으로 변경되었음 알 수 있다. 종탑에 오르려면 따로 추가 요금을 내고 표를 끊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시간을 따로 알아봐야 한다. 세비야 히랄다의 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54미터의 높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쉽게 올라갔다. 알라의 뜻을 깨우치기 위했던 기도탑은 예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종탑을 거쳐 이제는 여행객을 위한 전망대가 되어 아담하고 소박한 코르도바의 하루를 갈무리 해주고 있다.


햇살이 한창 드리워진 오렌지 정원의 벽을 따라 늘어선 회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분수대에 손을 담궈 보았다. 판타지 사극이라면 이럴 때 분수대의 물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주인공은 시간여행을 하게 되겠지. 그런 기분으로 아이들과 함께 메스키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암울하기만 했던 스페인 분투기 중 맞이한 첫 겨울 휴가. 이유도 모른채 뭔가에 홀린듯 그렇게 떠난 코르도바의 어느 정원에서 아이들의 눈은 더 없이 순수했다. 무언가 구체적인 말로 설명할 순 없으나 마을이 전해주는 아늑함과 편안함 속에서 답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분수와 종탑이 있는 메스키타의 오렌지 중정,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안식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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