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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an 31. 2021

스페인 이슬람의 화려한 과거, 코르도바

메스키타-대성당 내부 여행

종이 영수증 대신 성당 내부 사진이 들어간 표를 받으니 운치가 느껴지고 기념 삼아 간직하기에도 좋다. 눈부시도록 강렬한 햇볕 아래 있다가 들어가서 그런지 메스키타 내부가 상대적으로 어둡다. 폼 재려고 썬글라스 끼고 들어갔다가는 무려 856개나 되는 기둥에 부딪힐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은 난생 처음 보는 이중 아치를 보고 아케이드에서 숨바꼭질이라도 하려는듯 여기저기 숨으며 신이났다.


코르도바 왕국을 수립하며 후 옴미아드 왕조를 세운 아브드 알라흐만 1세는 로마 신전이 있던 자리에 지금의 메스키타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훗날 이 거대사원은 대성당으로 탈바꿈 하는데서 보듯, 스페인은 유럽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성당이 있는 경우, 열에 아홉이 과거 사원이 있었다고 보면 될 정도로 종교적인 색채가 유독 강하다. 카톨릭의 보호자임을 자처하고, 카톨릭의 왕과 여왕이라는 별칭이 괜시리 붙여진게 아니었다. 


이 나라는 태생부터가 이슬람과 카톨릭의 대립 가운데 있었고 800년 가까이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중세에 전 유럽에 걸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교황 마저도 유럽의 영주와 왕들에게 십자군 전쟁 참여하라고 호소했던 당시에도, 스페인만은 굳이 오지 말라고, 이미 그곳에서 이슬람과 피땀나게 성전을 치루고 있으니 올 필요가 없다고 했겠는가. 이슬람의 말발굽 아래, 카톨릭의 깃발 아래 종교는 이들에게 살아가는 이유이자 삶 자체였을 것이다.


종교 건축물은 위치상 대개 마을의 중심에 있다. 종교적인 기능과 목적을 넘어 종교시설은 마을 공동체의 커뮤니티가 이루어지는 곳이자 모든 소식의 통로가 되는 곳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종교전쟁이자 국토수복이라는 두 차원에서 도시를 탈환한 후 사원은 병원이나 우체국 등으로 용도변경되지 않았다. 유한한 생을 지닌 사람은 바뀌지 않았는데 그들이 섬기는 영생의 신이 달라졌다는 아이러니함은 또 무엇인가. 저들 또한 역사의 흐름 앞에서 말없이 자리를 내어주고 마는 것일까.




856개의 기둥이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8세기에 시작해 3차에 걸린 증축을 마친 10세기에는 무려 1293개나 되었다고 하니, 아득한 숫자에 입이 안 다물어진다. 아브드 알라흐만 (또는 압데라만) 1세 때 첫 삽을 뜨기 시작한 메스키타는 이후 아브드 알라흐만 2세와 3세, 알하캄 2세를 거쳐 위대한 재상 알만수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만수르와는 동명이인으로 '승리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에 이르기까지 200여년의 세월에 걸쳐 영토를 확장하듯 건물의 크기를 계속 넓혔다. 


그 결과 가로 180m, 세로 130m로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용인원 보다 7천여명이 더 많은 2만 5천여명의 무슬림이 동시에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거대한 종교 건물이 된다. 당시에 가장 번영하던 바그다드를 능가하는 수준에까지 오른 것이다. 


메스키타 내부의 이중 아치

오와 열을 정밀히 맞춘 이중 아치는 각각 붉은색 벽돌과 흰색 벽돌이 교대로 배치되어 멋스러움을 더하고, 끝도 없이 일정 간격으로 반복해 늘어선 기둥들은 신비로움 마저 더한다. 무엇보다도 이곳이 카톨릭 수호의 나라인 스페인에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13세기 레콩키스타에 함락된 이후 이슬람 사원의 기능은 멈추었다. 그러나 찬란한 그들의 건축기술 앞에 정복자의 눈으로도 차마 이교도의 싹이라며 돌가루로 날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웠을 것이다. 사원의 벽을 따라 곳곳에 위치한 35개나 되는 소예배당들 (서어 capilla, 영어 chapel) 내부에 그려진 기독교 성화가 다름 아닌 메스키타 안에 있으니 물과 기름 마냥 어색함이 살짝 감돈다.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일반 아치에서 말발굽을 찍은듯 평범함을 탈피한 무데하르 Mudejar 양식의 아치가 나온다. 거기서 몇 발자국 더 나아가 눈을 들어보니 아치가 꽃을 피우듯 몇 겹씩 중복된 칼리프 Caliph 양식의 아치까지 보며 아랍인들의 수학, 기하학, 건축학에 대해 탄성이 나도 모르게 나직이 흘러나온다. 지금까지 아랍인에 대해 가졌던 편견이 파스스 깨진다.


메스키타의 이슬람 기도실인 미흐랍, 그 찬란함에 숨이 막힌다.


사람들을 따라 가니 황금으로 황홀하게 둘러싸인 이슬람 사제인 이맘 imam 의 기도장소, 미흐랍 mihrab 이 시간의 힘을 무색하리 만치 이겨내고 지금도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당초문의 아라베스크 arabesque 는 장인의 세밀한 기술력을 가늠케 하고, 빽빽하게 새겨진 치장벽토 stucco 는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천정은 눈길 닿는 곳마다 황금이 둘러진대다 자연광이 쏟아져 금빛 반사로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다. 기도실을 둘러싼 코란구절은 까막눈인 이방인에게 조차 신의 뜻에 최대한 맞춰 살아야겠다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 


글을 모르던 신자를 위해 성당은 성경 속 인물들을 그림과 조각 등 각종 형상으로 보여주며 교화시켰다. 그들에게 미술은 신의 영역을 대변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신성한 자리이자 귀한 도구였다. 그러나 그 어떤 그림이나 조각도 사람이 들어간 것은 우상숭배라며 일체 금했던 무슬림은 식물의 줄기로 수를 놓고 한발 더 나아가 코란의 말씀과 경구를 새겨 놓았으니, 당시에 이슬람교의 입장에선 어찌보면 기독교를 본인들보다 한 수 아래로 보았다는 주장에 일견 수긍이 간다. 그림이든 글자든 신의 뜻을 알리고 배우겠다는데 무엇이 대수이겠는가.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그저 자신이 아는 것을 행함으로 실천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바램은 없겠다. 



이제 절반을 보았을 뿐인데, 눈은 이미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이슬람 장인의 기술과 정성에 압도되어 이곳이 성당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맞다, 이곳은 사원이 아니라 대성당이지.’ 메스키타의 눈부신 미흐랍에 넋을 잠시 놓았다. 금이 눈앞에 있어서도 그러겠지만, 세공장인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예술의 경지에 뛰는 가슴을 겨우 가라 앉히고 옆 전시실로 발길을 옮겨본다. 그곳은 성체 현시대를 비롯한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성물들이 진열된 성물실이었다. 세밀한 도금장식의 성체 현시대는 미흐랍의 장식에 나간 넋을 더 멀리 쫓아내기라도 하듯 화려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코르도바의 성체현시대, 1514~16년 엔리케 데 아르페의 작품이다.


성체 현시대 주위를 둘러보니 천주교의 성인들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여러 성인 중 13세기 탁발수도회의 시초가 된 도미니크 수도회의 창시자, 성 도밍고 데 구스만이 아래에 횃불을 문 개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니 신성한 성당에서 왜 개가 있는 것일까. 그 개는 도미니크 수도회의 상징으로, 이는 도미니크 수도회 수사들이 ‘하느님의 개’를 자처해 당시에 느슨해진 생활을 엄격한 규율로 다스리고, 청빈과 봉사를 강조했던 점을 보여준다. 라틴어로 주님의 개(충견)들을 뜻하는 단어 Dominicanes (주님 domino + 개 canes) 와 도미니크 수도사들을 칭하는 Dominicanos 의 발음이 비슷한 점에서 착안해 개를 상징물로 고안했다. 


그들이 믿는 진리를 수호하는 일에 있어 인간에게 가장 충직한 동물인 개와 같이 신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했던 도미니크 수도회는 설립 초기 탁발을 하고 다녀 거지 수도회 라는 별명도 있었지만, 훗날 이단 심문과 종교 재판의 최선봉에 서게 되어 사람들의 생사여탈을 좌지우지 하는 위치까지 올라가게 된다. 청빈과 이웃사랑을 내세운 종교단체일지라도 그 독단이 지나친 경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도미니크 수도회의 창립자인 성 도밍고


페르난도 3세의 코르도바 탈환


그 옆에는 1236년 코르도바를 탈환한 성 페르난도 3세의 업적을 기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슬람은 공손이 무릎을 꿇고 성 페르난도 3세는 코르도바의 열쇠를 근엄하고도 인자한 모습으로 받아 들고 있다. 카톨릭계 스페인의 국토회복운동인 레콩키스타는 그저 그런 땅따먹기 전쟁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신으로부터 거룩한 대의명분을 받은 성전(聖戰)임을 확고히 천명하기 위해 그림 상단에 성모가 그의 아들인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과 더불어 자애롭게 그 모든 장면을 내려다 보고 계심을 화가는 잊지 않았다. 역사는 언제나 승리자의 편이기에 굵직한 사건에 대한 해석 또한 결과를 두고 가치를 가늠하고 평가하기 마련이다.




금과 은으로 빚어진 성물과 제기를 뒤로 하고 나와보니 다시 끝없이 펼쳐지는 기둥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밌는 점은 입구 때 있던 로마 신전의 재활용 기둥과는 달리 이곳은 증축을 거듭할 때 제작된 새 기둥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처음 메스키타에 들어왔을 때의 기둥들은 높낮이가 제각각인 반면, 3차로 증축된 이곳의 기둥들은 모두 높이가 균일하게 맞춰져 있다. 그 엄청난 역사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인부들이 저마다 기둥을 세우고 급여를 받기 위해 본인이 작업한 것임을 기둥 위에 표식을 새겨 놓았고, 이를 놓치지 않고 다 점토에 새겨 따로 보관해 두었다. (눈썰미가 있는 분은 제일 처음에 본 사진이 바로 증축하며 지은 기둥들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이런 식의 표식은 중세의 이슬람의 사원 뿐만 아니라 스페인이 통일된 이후에도 도처에 건축되는 성당들의 기둥에서도 발견이 된다. 수수께끼와 같은 이 문자와 형상을 해독하려고 아예 돌조각학 이라는 학문까지 나올 정도로 궁금증을 일으키는 그들만의 코드를 보니 문득 우리에게도 고려, 조선 시대에 저런 어음이 있었던가 싶다. 우리는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라 약속의 증거라며 자신의 서명을 기호로 새겨 넣는 순간 바로 경을 칠 놈이라며 돈은 커녕 곤장을 맞고 쫓겨나지 않았을까.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허무맹랑할 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나름 진지한 뇌피셜을 펴가며 상상의 세계를 눈길 닿는 곳곳마다 아이들과 펼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 여행을 떠나고 탐정 놀이를 하며 우리만의 시간과 장소로 만들어가면 추억은 바래지지 않는다.


증축에 사용된 기둥에 새긴 표식들




메스키타를 둘러보며 이슬람 사원 일부와 성당 일부의 흔적은 봐 왔는데, 대체 대성당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궁금하던 차, 마침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슬람 사원에 흐르는 기독교의 오르간 소리라니! 대체 세계 어느 곳에서 이런 이질적인 조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 소리를 따라가 보니 녹음이 아니라 실제로 오르가니스트가 악기 점검을 위해 연주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곳은 바로 코르도바의 성모승천 대성당이다.


일단 정면에는 성모 마리아가 손을 위로 올리고 하늘로 오르는 영광스런 장면이 그려져 있다. 양측에선 각각 눈에 익숙한 열쇠를 쥔 베드로와 검을 쥔 바울이 지키고 있고, 그 사이에는 믿음을 상징하는 십자가와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의 제자들의 다수 본래 직업을 암시하는 닻을 들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중앙 주 제대 위 걸려있는 은 램프는 직경이 182cm에 무게는 200kg에 달한다. 양 옆 독서대 아래에 대리석으로 만든 천사, 사자, 소, 독수리는 각각 신약 성경의 공관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을 뜻한다. 제단 맞은편에는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두 대가 마주보고 있고 성가대 가운데에는 예수의 부활 장면이 조각되어 있어 신성함을 더해준다.


드디어 마주하는 코르도바의 성모승천 대성당


제단 맞은 편의 성가대와 오르간


이처럼 눈길 머무는 곳마다 화려한 대성당을 두고 감탄하지 않는 자가 드문데 정작 스페인에선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스페인의 통일을 이룬 카톨릭의 여왕 이사벨의 외손자인 까를로스 5세의 탄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곳이 이렇게 위대하다는 걸 알았다면 당신들이 파괴하도록 허락지 않았을거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을 두고 세상 어디에나 있는 것을 지었다니” 라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눈으로 다시 성당을, 그리고 메스키타를 둘러 보았다. 이미 지나간 것을 어찌 돌이킬 수 있으랴. 그러나, 파괴에서 창조를 캐낸 코르도바는 정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원-성당을 재탄생시켰다. 탄식과 감탄의 경계에서 코르도바의 시간여행은 그렇게 아스라한 감흥을 남긴다. 발길을 돌려 나가보니 붉게 물들어 가는 석양이 눈길을 잡는다. 코르도바의 시간은 노을을 등진채 창공의 새처럼 여일히 흘러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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