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Feb 01. 2021

스페인 코르도바 둘러보기

역사인물과 함께 하는 코르도바 여행

자, 타임머신이 있다고 해 볼까요. 스페인에서 시간 여행을 한다면 언제 어디로 가볼까요. 저라면 8세기에서 10세기로 가보고 싶어집니다. 스페인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부강했던 코르도바 왕국의 전성기가 바로 그 때였거든요. 8세기부터 10세기라면 우리에겐 통일신라에서 고려 초기 정도가 됩니다.


그곳에서 탄생한 유명인사들을 만나볼까요. 로마의 악명 높은 황제 네로의 스승인 세네카 Lucius Annaeus Seneca의 고향이 바로 이곳 코르도바입니다. 지금도 코르도바의 유대인 지구 알모도바르의 문 앞에서 세네카는 오가는 사람들을 근엄히 내려다 보며 그의 명언을 떠올려 보게 합니다.

"진리는 모두에게 열려있다" -세네카


유대인 지구의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12세기 당대 최고의 석학인 마이모니데스의 동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철학자이자 신학자요, 천문학자에 심지어 의사이기까지 했던 그의 이름은 천재의 또다른 이름일까요. 우리에겐 무척 생소한 분이지만, 유럽인에겐 얼마나 잘 알려진 인물인지, 자기 자식들도 마이모니데스처럼 머리 똑똑하고 잘나기를 바랐는가 봐요. 그렇게나 괄시받던 유대인 출신이었음에도 지금 그의 동상 아래 신발은 반질반질 그렇게 윤이 날 수가 없어요.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지극정성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가 봅니다.


코르도바가 낳은 천재, 마이모니데스


로마와 유대인까지 소개한 마당에 이 분을 놓치면 아랍계에서 너무나 섭섭해 하겠네요. 공부 열심히 해 벌은 돈, 다 내꺼여 하던 마이.머니.데스.와 쌍벽을 이룬 분, 아베로에스, 본명 이븐 루쉬드를 소개합니다. 이 분 역시 철학, 천문학, 의학을 다 섭렵하셨지요. 여기에 법학까지 손에 쥔 분입니다. 아랍계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에 있어 가장 권위있는 분이었어요. 머리가 깨인 분일수록 자기 것만 고집하는게 아니라 폭넓게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이되 자신의 것으로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통하는 일이군요.

천재들의 도시 코르도바의 아베로에스 동상


코르도바는 분명 이슬람의 통치 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8세기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이래 종교와 민족의 구별없이 예술과 문화의 진흥을 적극 장려한 덕에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가 분쟁과 전쟁을 일삼기 보다는 평화와 공존에 필요한 관용과 존경의 정신을 갖게 되었지요. 그래서 세상 유래없는 융합과 공존의 문화양식을 갖게 되고, 특히 당시 유럽인에게 인간 이하로 핍박받던 유대인으로선 꼬르도바는 낙원과 다름 없었지요. 코르도바의 소문을 듣고 돈자루를 쥔 유대인이 찾아와 적극 왕국을 돕고 나서니, 물질이 쌓여가는 꼬르도바로선 필연적으로 번영을 누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 영광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숫자로 한번 확인해 보지요. 그 머나먼 10세기에 50만의 인구, 서민 가호 10만, 모스크 700, 병원 50, 상점 8만, 심지어 대학교육기관이 17에 도서관이 70 이나 되었으니, 당시 중세 유럽에서 코르도바는 거대한 핫플레이스였음이 틀림없었을 겁니다.




외부의 약탈과 침입에 대비해 수비형 구조를 가지던 중동 아랍의 마을 모양 그대로 코르도바 구시가는 시원스레 쭉쭉 뻗어있지 않습니다. 좁고 구불거리는 통에 길 한 번 잘못 들었다가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온 도둑들처럼 미로에 갇혀 버리기 십상입니다. ‘도대체 길을 왜 이런 식으로 해 놓았담?’ 하고 툴툴 거리려던 찰나, 40도를 웃도는 뜨거운 여름 한낮을 떠올려 봅니다.


이글이글 대는 거리를 누빌 때 좁은 골목길마다 드리워진 옆 건물의 그림자 덕에 그나마 쉽게 다닐 수 있음을 깨닫고 그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됩니다. 게다가 만약 전쟁이라도 난다면 이렇게 구부러진 골목길 덕에 그 옛날 적들의 창과 화살을 피해 조금이라도 목숨을 건사할 수가 있었겠지요. 반대로 게릴라 전으로 일순간 치고 빠지기에도 안성맞춤이었을 겁니다. 다 저마다 처한 환경에 손놓고 있지만 않지요. 집단지성을 사용해 환경에 적응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 삶의 지혜가 축적되어 있음을 봅니다.   


처음에 소개했던 코르도바 출신의 인물, 세네카의 명언을 나지막이 음미해 봅니다.

‘산다는 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배우는 일이다.’ 어른이 되었다고 배움이 끝난게 아니었습니다. 아빠가 되었다고 인생의 공부가 멈춘게 아니었어요. 귀요미였던 아이들이 어느새 거뭇거뭇한 솜털을 가지며 키도 마음도 쑥쑥 성장하는 것 이상으로 아빠인 저도 일상에서 생각의 훈련을 더하며 성숙으로 익어가는 중이지요. 그렇게 아빠도 아이들도 여행을 통해 조금씩 삶의 발효를 맛보는 과정을 진득히 밟아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인 이슬람의 화려한 과거, 코르도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