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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Feb 04. 2021

스페인의 꽃길을 걸어볼까요.

코르도바의 꽃길과 망아지 광장을 가봅니다

어린 아이들과 떠나는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 됩니다. 놀이가 곧 교육이고, 교육은 삶의 일상이며, 평범한 일상은 마음 먹기에 따라 갖가지 체험을 경험하는 공간이 됩니다. 여행은 이런 명제를 아이들이 자연스레 스스로 익히는데 최적화된 마중물이 됩니다. 머릿 속을 꽉 채워주던 지식창고의 건축 유산물인 메스키타에서 벗어나 이번엔 바로 옆에 있는 꽃길(calleja de las flores)과 망아지 광장(plaza del potro)으로 가 머리를 잠시 식혀 봅니다.




꽃길은 일단 현지의 이름부터가 정말 꽃의 길 (Calleja de las Flores 까예하 데 라스 플로레스)이라고 나와 있어서 그렇게 불려졌어요. 스페인의 길은 보통 Calle 까예 (또는 까제) 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길보다 좀 더 좁은 길을 Calleja 까예하 라고 부르고요. 우리에게는 재개발 붐으로 이제는 얼마 안 남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떠올려 보면 비슷하겠네요.


Flor 플로르는 느낌으로도 영어의 Flower 와 비슷해서 '꽃'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스페인의 이웃나라인 포르투갈에서도 똑같이 Flor 라고 해요. 피레네 산맥 위 프랑스에서는 Fleur 플뢰흐 라고 해요. 어렵다고요? 해리포터 4권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 나오는 우아하게 등장하던 보바통 여학생들, 그들의 대표였던 '플뢰르 델라쿠르 Fleur Delacour' 기억나지요. 일본의 하나코 花子와 우리의 꽃님이가 바로 그 이름이 되겠네요.

 

코르도바의 꽃길, 저 멀리 메스키타의 종탑이 보입니다.


메스키타에서 불과 1, 2분 거리 밖에 안 되는 그곳은 가보면 대개 처음에는 '아, 뭐야', '에게~' 하며 실망을 합니다. 길의 폭이 좁을 뿐만 아니라 거리 역시 굉장히 짧거든요. 꽃길이라고는 하지만 꽃 화분이 늘상 화려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렇게 실망만 할 곳은 아니에요. 꽃길 끝에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타나는 메스키타의 종탑은 다시 '어머나~' 하는 탄성과 함께 절로 입꼬리를 올리게 하거든요. 꽃길의 주인공은 눈앞에 걸린 꽃들보다 저 멀리서 살짝 응시하는 종탑이지 않을까 합니다. 사진 찍을 때의 타이밍도 사진찍는 실력도 변변찮아서 코르도바의 꽃길 매력을 제대로 사진 한장에 담아내진 못했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가보고 싶게 만들겁니다. 직접 온다면요? 더 말할 나위야 없지요.


한편 꽃길 끝에는 팔각형 모양의 자그마한 분수대가 있어서 졸졸졸 거리며 흐르는 물소리만으로도 잠시 머리를 식히기에 안성맞춤 입니다. 때로는 그곳에서 기타 연주로 버스킹을 하는 분이 말없이 있다가 줄을 튕길 때면 여행자의 가슴에 두고두고 남을 추억이 되기도 하지요. 팁을 남기고 같이 사진 찍는 재미도 있었는데,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투박하고도 작은 돌 분수대는 오래 되어 보이지만, 생각보다 역사는 짧아요. 현대와 같은 모습의 꽃길은 1950년대 중반 코르도바 시의 리모델링 프로젝트로 거슬러 올라가요. 처음엔 멋지게 재탄생시켜 보고자 대리석으로 만들려 했어요. 그러다 반대에 부딪혀 지금과 같은 소박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홀로 찬란히 빛나는 대리석 분수대로 지어졌다면 되려 주위 경관과 부조화를 일으키고 말았을 겁니다. 한적한 도시의 아담한 공간에 촌티나는 분수대는 오히려 운치를 더하고 멋스러움을 안겨줍니다.




분수대 옆 기념품 가게에서 잠시 기웃거려 보다가 700미터 떨어진 망아지 광장 plaza del potro (쁠라사 델 뽀뜨로)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1577년 마을의 치안판사인 가르시 수아레스 씨가 광장에 분수대를 놓아보라 했지요. 가운데 망아지의 분수대를 중심으로 사각형의 광장에는 기념품 가게부터 시작해 예술 박물관, 플라멩코 박물관을 비롯해 성 라파엘 동상이 있습니다.


코르도바의 플라사 델 포트로, 일명 망아지 광장


참고로 성 라파엘 동상은 코르도바 곳곳에서 볼 수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라파엘 동상은 메스키타 근처에 있습니다. 메스키타로 오는 여러 길 중 과달키비르 강을 가로지르는 로마다리를 건너 오세요. 그러면 16세기에 만든 개선문처럼 멋진 문(Puerta del Puente 다리의 문)이 있습니다. 참고로, 그 반대편에는 코르도바의 전망대가 되는 칼라오라 탑이 있어요. 다리의 문 아래로 지나오면 높이서 지켜보는 라파엘 대천사장을 만나게 되죠. 여기저기서  라파엘을 보는 이유는 그 분이 코르도바 시의 수호천사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허세 가득한 '있어빌리티-있어보이는 능력이란 뜻의 신조어' 만이 다는 아닙니다. 인스타에서 올라온 사진- 바다, 산, 호수, 폭포와 같은 절경들. 보면 부럽지만 한편에선 심기가 불편해 쿨하게 '좋아요' 누르지만 실은 두 번도 보지 않고 재빠르게 스크롤을 내려버릴 때가 있지요. 그 뿐인가요. 몇 번을 다시 태어난다 해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천재적인 재능과 기술이 응집된 웅장한 스케일의 건축물 앞에서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어 버리는 피드도 있습니다. 멀리 있는 것만 내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지요. 카드 한도를 넘어버릴듯한 명품 쇼핑으로 플렉스를 한다든지, 식당이 아니라 박물관에 온듯한 분위기의 미슐랭 정찬처럼 문만 열고 나가면 마주할 돈의 맛잔치가 수두룩 합니다. 


있어빌리티를 몸소 실천하는 분들도 그처럼 부러운 사건들이 조간신문 배달되듯 매일 벌어지거나, 한달에 한번 주기적으로 빠져나가는 카드 청구서처럼 오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평소에는 알뜰하게, 하지만 즐겨야 할 때는 주저함 없이, 그리고 다시 가열차게 일하며 모으는 생활. 그런 계획 하에 민폐없이 즐기는 거라면 오히려 인생의 맛과 멋을 아는 것이니 손바닥에 열이 나도록 박수를 보내며 칭찬해야 마땅한 일이지요.


날을 기념해 단위가 다르게 터뜨려야 할 때는 분명 필요합니다. 그런만큼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소한 삶에서는 약간의 발상 전환으로 조미료처럼 맛을 더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큰 것만 좇아가면 일상을 하찮게 볼 위험이 있고, 일상에만 집중하면 큰 꿈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있어빌리티에서 시작했어도 능력에 포커스를 맞추면 퍼스널 브랜딩을 이뤄내는 계기가 됩니다. 소박한 일상에서도 잠시잠간 엉뚱한 상상력을 가져 본다면 나는 시간 여행자가 되어 매력만점의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 결과를 두고 즐긴다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든 오롯이 자신만의 것으로 채워가겠지요. 


아이들은 코르도바에서 역사의 거대한 시계를 움직인 웅대한 건축물도 바라 보지만, 조금 벗어난 골목길 한 귀퉁이에서 별로 흥미끌게 없는 그저 평범한 분수대도 응시합니다. 기둥 앞에서 자신도 기둥이 되어 멀거니 서 있기도 하지만, 아무도 없는 광장에서 천방지축 떠들석하게 뛰놀기도 합니다. 한 부모에게서 나온 자녀들이지만 저마다의 페이스pace를 따라 가는 중입니다. 바라보는 아빠는 다음에 어디로 가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줄까 생각에 잠깁니다. 코르도바의 좁은 길에서 흥얼거리는 플라멩코의 선율이 귓등을 간지럽히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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