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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Sep 03. 2022

삶은 순탄치 않다, 원래.

나를 붙잡은 노래

중2 교회 수련회 프로그램 중 주일학교 선생님들께서 나와 찬송가를 부르셨다.

단순한 선율 속 가사가 얼마나 힘이 있던지, 듣는 즉시 끌렸고, 곧 내 인생의 찬송가가 되었다.


1절 가사를 잠시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을 늘 편하다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 속에 보고 듣고 부르고 연주하는 것만 족히 수 만 번은 되었을 곡이다.

눈을 감고도 악보가 떠오르고, 피아노 건반에 손가락이 따라가며, 

1절부터 4절까지 한국어와 영어가 동시에 나올 정도로 몸에 완전히 체화된 노래.

멜로디와 가사가 그저 좋아 따라 부르던 노래의 배경을 알게 된 건 대학생 무렵이었다.



 

1800년대 후반, 미국 시카고에는 변호사이자 부동산 투자가로 잘 나가던 남성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호레이쇼 스패포드로, 그는 사업에서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성공을 달리던 사람이었다.

더없이 헌신적인 아내 안나와 금쪽같은 공주님을 넷이나 두었다. 


세상 부러울 것 없던 그는 어느 날,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투자했던 재산을 잃었다.

투자했던 건물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으니 망연자실 그 자체. 

그러나 언제까지나 실의에 빠져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여 그는 큰 결심으로 하고 가족에게 위로차 유럽여행을 계획한다.

그가 돕는 무디 선교사의 집회도 참석하고,

낭만의 상징인 파리와 신사의 도시 런던에서 크리스마스도 보내며, 

대서양 횡단 크루즈로 평생에 남을 추억을 남기고자 했다.


11월 15일, 출항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일로 남편은 부득이 가족을 먼저 보낸다.

그리움에 눈에 밟히겠으나 약속했으니, 네 딸과 엄마는 모처럼 편안한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배 내부의 근사한 성탄 장식과 울려 퍼지는 캐럴에 마음은 들떠 얼른 아빠를 만나길 바랬으리라.


그러나 뉴욕에서 떠난 배는 일주일 후인 11월 22일 새벽 2시, 

스패포드 가족의 배는 마주 오던 영국편 배와 그만 충돌하고 만다. 

300여 명의 승객은 순식간에 대혼란에 빠졌고, 

일대의 아수라장에서 안나는 초등학생인 큰 딸 애니와 둘째 매기를 잃는다.


배는 충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대로 침몰했고, 

엄마의 손끝을 안간힘을 쓰며 붙잡던 네 살배기 베시는 결국 

힘이 다해 차디 찬 대서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급기야 품 안에 있던 두 살도 채 안 된 막내딸마저 잃고 만다.


스패포드 여사는 간신히 구조되어 프랑스가 아닌 영국 카디프에 도착해 남편에게 전보를 보낸다.


Saved alone! What shall I do?
홀로 구조됨! 뭘 해야 하나요? 


호레이쇼는 그 전보를 받자마자 급히 영국으로 간다.

배를 타고 가는 내내 그의 마음은 절망뿐이었으리라. 

선장은 가던 도중 호레이쇼를 불러 그에게 사고지점을 가리켰다.


재산도 잃고, 생명보다 더 귀한 가족까지 잃는 참혹한 시련.

어떤 종교의 힘으로도, 정신수양과 명상훈련으로도 감당이 안 될 일. 

차라리 죽기를 바랐을 절망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세상 그 어떤 말과 이치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평안함을 접한다.


그 자리에서 계시를 받는 듯 주저 없이 글을 적었다.

한 편의 시와도 같은 절절함이 묻어나는 그의 고백에 

훗날 필립 블리스가 멜로디를 얹었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 탄탄히 기반 잡힌 직장 위에 가정도 잘 꾸려간다 하는데,

내 현실은 그들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듯하다. 예상과 기대를 가차 없이 외면당한다.

이런 경험을 얼마나 더 거쳐야 하는지 처음이자 한 번만 사는 현재의 생으로는 알 길이 없다.


삶이란 절대로 순탄치 않다. 

어렸을 때 별 탈 없이 지나온 건 부모가 모든 걸 대신해 자신의 어깨에 짊어졌기 때문이다.

등에 업힌 어린아이가 언제 땅에 발을 디뎌 보았을까.

세월 덕에 어른이 되어 늦게나마 비로소 깨우친다.


스패포드 일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힘든 시간, 그래도 잘 버텼다.

어렸을 때부터 따라 부른 노래가 있어서. 

그리고 같이 부르며 마음을 잡아줄 지금의 당신이 있어서.



photo by scott murdoch, stock up





오늘 소개한 찬송가 중 제일 좋아하는 영상 두 편을 소개합니다:

 

가장 편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반복해서 듣고 싶게 하며

들을 때마다 마음을 한없이 따뜻하게 품어주는 아카펠라 버전입니다.




모노톤의 스산한 음색이 영상 속 황폐한 숲과 안개가 되어 심란한 마음을 헤집고 다닐 때 

차가움에 아릿했던 심정이 어느새 평안으로 바뀌며 따스하게 스며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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