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으로 배우는 인생
나는 피아노 전공자가 아니다. 그저 취미이긴 한데 나 스스로 빠져든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왜 빠져드는가 생각해 보면 손가락이 가는 대로 바로 소리의 반응이 있기 때문이다.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힘점과 작용점의 원리처럼 피아노는 그 즉시로 음마다의 고유한 파장이
치는 이의 가슴을 높낮이와 강약으로 끊임없이 두드리기 때문에 자석 앞의 쇳가루처럼 고루 끌리게 된다.
단순히 가볍게 즐기는 걸 넘어서서 푹 빠지는 이상 잘 친다 못 친다는 구분은 무의미하다.
'잘 친다'하여 콩쿠르를 나갈 것도 아니요,
'못 친다'해도 그저 지체 없이 '응, 그러네' 하면 그만이다.
남과 겨루는 게 아니라 내가 즐겁고, 그 즐거움을 같이 나누려는 자리에 경쟁은 불필요하다.
경험상, 피아노는 악보만 잘 볼 줄 안다면, 치는 실력은 단 몇 주 몇 달만에 확 늘거나 줄 것이 없다.
피아노는 하루만 안 쳐도 본인이 알고, 이틀을 빠지면 비평가가 알고, 사흘을 건너뛰면 청중이 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의 경우엔 그러겠지만, 내 경우엔 비평가와 청중이 없으니 실력은 내가 듣고 판단할 따름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연습량이 과감하게 투입되지 않는 이상,
여간해서는 휴대폰 액정에 덕지덕지 묻은 지문만큼의 차이도 느끼기 힘들다.
언제나 제자리걸음에, 쳇바퀴를 돌리고, 그마저도 머릿속 지우개가 있는 것 마저 지워간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손가락은 매번 같은 마디에서 틀리고, 오선지를 넘어간 음표의 줄을 세다 음을 놓친다.
연습을 300% 하면 무대에서 90%가 나옵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위와 같이 말했다. 실력은 평소의 연습을 따라오지 못한다.
요행을 바라는 건 애당초 자격미달자나 하는 말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초심자의 행운'은 별로 와닿지가 않는다.
오히려 '가혹한 시험'은 -바라지 않았지만- 여럿 겪으면서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크게 달라지지 않는 피아노를 매일 치며 연습하는 건
열 손가락 어느 것 하나 놀려두는 것 없이 건반을 오가며
나만의 곡이자 작품을 만드려는 평범한 일상의 재발견이다.
악보와 건반은 흑과 백밖에 없는 무채색의 냉정한 현실이지만,
손가락 마디에 힘을 주어 두드리는 순간, 무지개 빛 다채로움이 수를 놓는다.
피아노의 건반 위로 오늘도 열 손가락이 분주히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