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차 아이 셋 아빠의 현실 책육아
10년 이상을 어린이, 유아, 초등 저학년 책만을 읽어왔습니다. 고백하건대 읽고 싶어 읽은 게 아닌 육아를 위해, 피곤해도 밥 세끼 꼬박 챙겨 먹듯 그렇게 읽었네요. 제가 챙겨 와서 "자, 오늘은 이 책을 읽자!"가 아닌, 아이가 본인이 좋아하는 책들을 가져와 들이미니, 어지간한 핑계 아니고선 거절할 수가 없어요.
어제 읽은 책은 오늘 또 읽고, 아침에 읽어준 책을 점심 먹고 나면 또 가져오는 게 아이더군요. 아빠가 읽다가 졸려하면 엄마한테 가져가고, 엄마가 피곤하다 하면 다시 아빠에게 가져오는. 시계추 마냥 부지런히 똑딱거리며 오가는 모습에 웃기면서도 짜안해집니다. 제가 책이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랑받는다는 사실이 더없이 기쁠 겁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세 자녀 사이가 각각 3살, 5살 터울이다 보니 3살 위 형이 읽은 책을 동생이 받아 읽고, 다시 큰 오빠와 8살 차이 나는 막내딸이 대물림해 읽는 중입니다. 대부분이 중고책이라 평균 15년은 족히 넘을 듯합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 한국, 슬로바키아, 스페인.
저마다 태어난 장소며 시간도, 먹던 음식도, 그간 본 만화영화며 영화도 다 달라요. 이런 아이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건 부모인 저와 아내, 그리고 읽어준 책과 들려준 음악입니다.
이삿짐 컨테이너가 아닌 비행기로 왔다 갔다 하며 가져올 짐 속에 책은 부피와 무게 어느 것으로든 가장 고민이 되는 물건이었습니다. 경비상 항공 대신 몇 달씩 걸리는 선박으로 가져와야 했고, 그나마 책장에 정리하면 한 두줄이면 끝이 났습니다.
몇 권 안 되는 책을 큰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무릎 위에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아니, 듣고 또 들었다는 게 보다 정확하겠네요. 부모로서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지만, 유치원도 가지 않은 아이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방금 전 읽은 책을 가져다 놓으라면 어느새 다시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조르곤 했습니다.
그렇게 읽어주다가 어느 순간엔가 첫째는 한글을 깨쳤습니다. ㅡ세상 유례없는 과학적인 글자를 만드신 세종대왕님 만세! 둘째는 그런 형의 영향으로 쉽게 따라갔습니다. 오히려 막내딸이 오래 걸리더군요. 아이마다 책을 대하는 태도도 전부 달랐습니다. 특히 막내의 경우엔 책보다는 아빠나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 자체에 더 의미를 두는 듯했습니다. 두 오빠들은 책도 책이지만, 남자라 그런지 로봇이나 레고 등 장난감을 더 선호했고요.
부부로 지낸 시간만큼이나 아이들 책을 오래 읽어 왔습니다. 유아, 초등 도서이다 보니 스스로 읽는 힘을 가지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한 단어, 한 문장 힘을 주며 읽어줘야 했습니다. 똑같은 책을 수십, 수백 번을 읽어주다 보면, 속에선 그냥 녹음해서 틀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의지도 실천도 스페인 연간 강우량 수준이라 언제나 생각에서 그치고 말았어요. 남겨 놓았다면 아마 아동책 낭독 팟캐스트로 연재하던 중 저작권 문제로 벌금만 잔뜩 내고 말았을 거라며 스스로 (되지도 않는) 위안을 삼곤 합니다.
유아책들은 문장을 손가락으로 집어 읽어가며 아이에게 이해했는지를 물어보고, 그림을 가리키며 등장인물을 찾아보고, 어떤 장면을 말하는 건지 묘사하며, 아이라면 어땠을지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글자책의 경우엔 아이 손가락을 잡고 같이 써보거나 그려보고요.
아이는 무엇을 하든 부모와 함께 하는 거라면 무조건적으로 다 좋아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번 같은 페이지, 같은 단어, 같은 그림에서 항상 숨 넘어가도록 좋아했습니다. 아니면,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다 초기화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네요. 솔직히 어른의 입장에선 '아,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며 간절한 바람이 들었거든요. 나중에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혹 아빠의 이 글을 읽는다면, "얘들아 정말 미안하다!" (feat. 고xx 교육감 후보 연설, 2014)
초등 저학년 책으로 넘어가자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좀 더 살펴봤습니다. 우리말 소리의 고유한 특성 (특히 의성어와 의태어)과 제시된 단어의 유의어, 반의어 등도 한 번 더 생각해 보며 재미를 붙여 갔습니다. 호흡이 길어진 문장 속에 주술 호응 관계도 살펴보고, 재미난 문장이 나오면 영어나 스페인어로는 뭐라고 할지도 퀴즈로 내면서 책 읽는 시간을 좀 더 활동적으로 사용했어요. 아직은 문어체보다 구어체가 더 자주 등장하고, 주인공의 대화도 쉬운 말이 많기 때문에 국어책으로 토막토막 외국어 학습용으로 활용해 볼 수도 있지요.
나이가 올라감에 따라 아무래도 책의 구성과 내용도 기승전결을 갖춘 하나의 서사가 되기 때문에 읽어주는 저도 더 흥미를 갖고 저자의 의도, 생각, 작가만의 고유 문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해요. 동일 작가의 여러 다른 책을 듣던 아이도 어느 때가 되면 순간 '어, 이거 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느낌이랑 비슷해요!' 라며 패턴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아이와 같이 만화영화나 짤막한 단편 만화영상을 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같이 보지는 못하죠. 처음에는 그래도 마음먹고 같이 과일을 앞에 두고 먹으며 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애는 보게 놔두고, 아빠는 다른 일을 할 때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한 시간 반짜리 아이들 만화영화를 한 번은 같이 봐도, 두 번, 세 번 보는 건 사실 어지간히 재미있는 게 아닌 이상 불가능하잖아요.
하지만 책은 한 번에 한 시간 반씩 읽지 않습니다. 못 한다고 봐야죠. 대신, 십 분, 이십 분 편한 대로 끊어 읽을 수 있습니다. 읽을 때는 예외 없이 엄마 또는 아빠가 같이 하고요. 그게 누적되면 자연스레 아이도 부모도 책 속 인물들의 생각, 행동, 기분 등을 고스란히 기억하게 됩니다.
어디서든 툭 치기만 해도 자동으로 "이병 000!" 이라며 복창하는 신병처럼 주인공은 평소엔 숨겨져 있다가도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데자뷔 déjà vu를 느끼듯 '어, 이거 어느 책에서 누가 하던 건데' 하며 연상합니다. 이런 기시감은 아이에게 긍정과 부정의 효과를 둘 다 안겨주기 쉽습니다.
이럴 때 방향을 잘 잡아주는 게 부모의 역할입니다. 무서움을 느낀다면 같이 읽은 책에서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서로 얘기하며 풀어보면, 아이에게 두려움은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집니다. 아이가 잘못을 하고도 깨우치질 못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면, 단말마의 호통보다는 책 속 이야기를 비유 삼아 적용시켜 보면 어떨까요. 아이는 스스로 깨우치고 바로 잡아갑니다. 기특함은 덤으로 따라 옵니다.
처음에야 당연 시간이 걸리지만 아이도 부모도 편안하게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안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서로에게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주거나 아예 안 주며 대화로 풀어가게 되니, 아이와 같이 읽는 책의 긍정적인 효과란 단순히 점수와 관련된 학습 이상의 효과가 있습니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여행이라 합니다. 그게 없으면 방랑이고 방황이겠지요. 마찬가지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도 시기가 있습니다. 중3인 큰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없습니다. 초6 둘째도 마찬가지입니다. 막내딸과 마지막 이어달리기는 가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달리기보다 좋은 생각이라면, 자녀와의 독서를 시합이 아닌 동행하며 산책하는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하루 또는 한 주의 루틴으로 자리 잡아 이어가는 것이겠지요. (말로는 뭔들 못하겠어요. 너무 이상적인 얘기라 저도 실천하기엔 요원한 듯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동 도서는 거의 예외 없이 역경을 헤쳐나간 긍정적인 사고관과 일상에 적용할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짧은 분량과 저마다 다른 이야기임에도 동일하게 깨닫는 게 있습니다. 그것이 반복되면 하나의 생각 정리 훈련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 훈련은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정신을 바로 잡아줍니다.
코로나 이후 한창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습니다. 창밖에선 따스한 가을 햇살임에도 정신적으론 태풍이 지나가는 거친 파도 속입니다. 심란한 광풍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뒤집어 넘어집니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읽어주는 따뜻한 이야기는 그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전래동화도 재미삼아 읽어주긴 하지만, 아이도 저도 창작동화를 선호합니다. 그런 책과 십 년 넘게 벗삼으며 얻은 가장 큰 결실은 아래와 같습니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적정선에서 단순화하여 보게 합니다. 복잡함만이 능사는 아닐 테니까요. 오히려 복잡함 세상을 적정선의 단순함으로 압축하는 게 더 능력일 겁니다. 성경의 주인공 예수도 현학적 언어로 제자를 남긴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누구라도 쉽게 알아들을 말씀이었기에 지금까지 영향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하늘엔 별이 떠 있고, 새벽이 지나면 해가 떠오르듯, 단 하나라도 긍정적인 면을 보는 관점을 갖게 만드는 힘이 동화책엔 있습니다. 더불어 그로 인한 감사의 자세가 가랑비에 옷 젖듯 차차 스며들게 합니다. 지나친 긍정 중독으로 눈을 가리는 게 아닌, 갈수록 힘들고 불안한 일상에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아이와 함께 읽는 동화책에서 얻습니다.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고 황장엽 님의 동화책 사랑은 유명합니다. 권력의 핵심 인사였던 그가 왜 다름 아닌 동화책을 탐독했을지에 대해선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잠시도 가만 놔두지 않는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아이들의 책은 잠시나마 본인을 진정한 케렌시아 Querencia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의 뜻을 가진 스페인어)의 공간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일 밤 9시 팀라이트에서 준비한 인사이트 나이트 북 큐레이션 줌강연도 그래서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책을 읽어온 세 아이의 아빠가 이번엔 강연 작가님들이 읽어줄 책을 들을 시간이거든요. 9월의 마지막 토요일 밤을 늘어지며 보내고 후회하거나, 헛헛함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요. 마음을 한껏 풍요롭게 채워주고 일상의 영감을 더해 줄 책과 더불어 힐링하는 시간, 궁극적으로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아이들과 나눌거란 생각에 더욱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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