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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ul 16. 2023

인생이라는 내비게이션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장마철 햇볕 쨍한 날씨를 기대하듯 아주 오래간만에 자발적으로 마감기한도 없이 브런치에 들어와 글을 쓴다.


코로나 이후로 보복성 관광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의 조합이 많은 이들의 입김을 통해 오르내리다 보니 현실화가 된 것인지, 정말 단 하루의 쉬는 날도 없이 계속 캐리어를 굴리고 다니며 동가식 서가숙, 오늘은 스페인 세비야에서 다음 날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잠을 청하고, 고소한 빵을 구워내고, 신선한 샐러드에 올리브 오일을 흥건히 붓고, 달달한 멜론을 썰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들이키며, 일정을 살피고, 동선을 점검하며, 시간대 별로 놓치는 건 없는지 꼼꼼히 챙겨본다.


비슷한 일정을 다니지만, 행사를 진행하다 보면 처음 가보는 식당이며 호텔이 나올 때가 있다. 기사의 실력을 믿는 것과는 별도로, 나도 가이드로써 거리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파악해야 하기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7인치 휴대폰 속 화면 하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달려갈 때가 있다. 가는 내내 의심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조여드는 시간 속에 협심증에 기절할 것 같은 압박 속에서도, 일단 출발한 이상 도착 장소에 분명 다다른다.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매일매일이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상. 불안과 근심이 가득하지만 결국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언가를 해내고, 이루어 내고야 마는 오늘, 이번 한 주, 한 달, 그리고 지금까지의 인생.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덜 걱정하고 근심한다면, 불필요한 일에 내 기력을 소모하는 일은 좀 더 줄어들 것이다.


끝은 누구도 모른다. 점검은 필요하지만 속단하고 주저앉을 일은 아니다. 


타인의 평가가 나름 중요할지는 모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가치의 중량에 따라 참고만 할 뿐이다.


처음 와 보는 포르투갈의 포르투 호텔에서 봄볕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생각을 정리해 본다.

호텔 리셉션에서 아침부터 피아노를 연주해도 된다 하니 순진한 어린애마냥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내일 아침 그랜드 피아노의 덮개를 올리고 제멋에 겨워할 내가 벌써부터 보인다.

아무려면 어떤가. 아까 저녁 식사 때에는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 를 치다말다, 고장난 CD 처럼 계속 같은 부분만 틀리고 다시 치고 틀리고 또 다시 치더만.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삶은 점차 먼 미래보다도 오늘만 바라보고 사는 인생으로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

하루를 충실히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의 조건은 차고도 넘친다.


'나'라는 지도에서 '인생'이라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달리는 주행길. 오늘도 무사운전하길.

더불어 나와 같은 차에 타고 가는 이들에게도 안전하고도 즐거운 여정이 되기를. 

¡Buen viaje! (부엔 비아헤, Have a nice trip!)

 

배경사진: 스페인 갈리시아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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